칼럼

[칼럼] 용서의 이유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5. 9. 5. 19:28

 

마태복음 18:22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용서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형제"만 용서한다고 전제하고 있고, "용서의 횟수"를 일곱 번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용서는 용서가 아니라 벼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용서에 대상이나 한계를 정해 놓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이토록 나에게 손해를 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용서해 줘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용서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아피에미"(ἀφίημι)인데 "풀어주다"라는 뜻으로,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주기도문에 나와 있듯이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시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가 좋게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나의 상처와 잘못을 과거에 묻는 것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형제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와 아픔들을 소환하여 계속 싸우지 마시고 과거에 뭍어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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