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축복의 통로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5. 5. 30. 19:01

 

여호수아 21:3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정복이후 12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면서 레위인들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고, 48개 성읍에 흩어져 살라고 명령했습니다. 레위인들을 흩어져 살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들을 보고 배우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축복의 비결은 농사와 목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을 때 하나님께 회개하고, 감사할 일이 있을 때 감사하며, 헌신할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레위인들의 삶을 본받아야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레위인들을 유대인들 속에서 살게 한 것입니다.

 

불교와 비슷한 자이나교나 티벳불교는 신도수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철저하게 구별되고 존경받는 사제 집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제 집단은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갖고 있지만 더 행복해 보이고 축복을 누리는 것들을 신도들이 볼 때, 자신들의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지만 자신들의 믿는 신에게 축복을 받으려면 저 사제들을 본받아야 된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아직도 융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점점 앞선 사람들이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신실한 사제집단이 있는 타 종교가 기독교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레위인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목사뿐 아니라 가정의 부모, 교회의 직분자들 입니다. 모범을 보인다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 나를 닮고 축복을 받게 한다면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힘들지만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헌신하심으로, 많은 사람을 옳은대로 인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