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1. 들어가는 말
1)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게 된 다음 우리에게 가장 치열해야 할 점이라면 그것은 바로 죄와 싸우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명예, 권력, 돈, 외모, 웰빙, 교회출석, 교회봉사 등은 양보해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사람을 자신들의 지옥 동무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반드시 죄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죄에 매여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죄는 이길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많은 크리스찬들은 죄를 이겨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죄를 완전히 이길 수는 없어.” “약간의 죄는 지을 수 밖에 없어.” “죄를 지어도 회개기도만 하면 용서 해 주실거야”라는 합리화의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국교회의 강단에서 sin이라는 단어는 사라졌을 뿐 아니라 금기시 되는 단어가 되고 말았고, 한국교회도 미국교회를 본받아 죄를 지적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보다는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설교, 축복에 대한 설교로 포장되어버린 실정입니다.
3) 참된 신앙생활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방법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귀의 함정, 죄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적당히 교회 출석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면서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인생에 예수님의 은혜의 역사들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사는 것이 주는 진정한 자유와 만족, 기쁨을 상실한 체 규율과 인간관계에 얽매여 고통스러운 신앙생활을 하다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시간 저와 함께 죄를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상적이고 대략적인 것 말고, 아주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를 통해 수련회 이후부터 이 방법을 사용하여 죄를 대적하셔서 정결한 그릇되시고,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 은혜를 마음껏 받아 누려서, 이 땅에서도 진정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1) 직접적인 방법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라!”
죄를 이기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인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런 시로 노래했습니다. “만일 이 땅에 돈이 필요했다면, 하나님은 경제 전문가를 이 땅에 보내 주셨을 것이다. 만일 이 땅에 지식이 필요했다면, 하나님은 이 땅에 학자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만일 이 땅에 즐거움이 필요했다면, 하나님은 이 땅에 연예인을 보내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야 말로 이 땅의 죄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요, 능력이요, 구원이시지만, 예수님의 전공은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받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직전 사탄을 이기는 것으로부터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마태복음 4장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사탄의 유혹을 받고, 위기를 만났을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처럼, 마음 속으로, 아니면 소리를 내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을 대적하고 죄의 유혹을 대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이기는 시작이 거기에서부터 일어날 것입니다.
2) 단계적인 방법 “죄와 싸워야 한다!”
죄를 이기는 두 번째 방법은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싸운다고 생각하면, 우리들은 권투선수들이나 운동선수들의 one time의 fight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한번 싸워서 이기면 승리, 지면 패배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평소 고의적이고 자주 짓는 죄를 이겨 보려고 노력하다가 지게 되면 “내가 그렇지 뭐. 이길 수 없어”라고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죄와 싸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 와서야 예수님의 권세로 죄와 싸우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싸우다”는 단어가 “fight”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에 보면 “죄와 싸우다”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싸우다”는 단어가 영어로 “fight”가 아닙니다. NIV,NET에서는 “Struggle”, KJV, Living, NAS에서는 “Striving”으로 뜻은 “투쟁하다. 분투하다. 노력하다”입니다. 이 말의 뜻은 죄와의 싸움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더라도 계속 싸워 투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와 싸워 보셨습니까? 그런데 번번이 져서 이제는 싸울 용기조차 잃어버리셨습니까? 성경은 한번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이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계속 싸우고 싸우다 보면 반드시 이기게 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이기겠다 다짐했다가 또 죄를 짓더라도 계속 싸워 나갈 때 우리는 단계적으로 죄를 이기게 되고, 결국 죄 없는 순수한 존재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근본적인 방법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플로이드 맥클랑 목사님이 쓴 “어떻게 죄를 이길 것인가?”라는 책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를 우리 노력으로 완전히 이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 속에서 죄를 완전히 없애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마치 요즘같이 음란하고 타락한 시대에 아이들을 바르게 키울 수 있는 것이, 단속하고 금지하는 것 보다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고 아이들 스스로 판단해서 부모에게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죄를 멀리하게 하는 방법과 같은 방법이겠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투쟁만으로 죄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나태하거나 약해진 틈을 타서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것이고 그 때 우리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죄를 원천봉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평소 성경말씀과 예수님이 주신 은혜로 깨달은 예수님의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WWJD, “What would Jesus do?”를 항상 떠올리면서 생활할 때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를 다스리고, 죄에서 자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전투적인 방법 “말씀을 사용해야 한다.”
끝으로 나와 관련된 죄가 아닌, 주변에서 일어나는 죄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귀신 들린 사람, 시험에 빠진 사람, 죄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죄에서 꺼내줄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말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말씀으로 대적하셨듯이 우리들도 말씀을 읽고, 암송하여 선포와 권면의 도구로 사용할 때 타인의 죄까지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평소 말씀을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한국 사람은 영어로 무언가를 들으면 감동받기보다 이해하려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말이 들리면 감동받기보다 이해하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 태도로 성경을 대하다 보니, 성경말씀을 이해하려고만 하고 가까이하고 감동받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에서 가까워서의 영어단어는 “near”로 거리상으로 가깝게 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 쉽게 읽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일단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들고 다니고, 졸더라도, 이해가 안되더라도 정해진 분량을 매일 눈으로라도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고, 성경 읽기를 즐기게 됩니다. 그 이후에 성경을 이해하게 되고 암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말씀을 이용하여 전투적으로 사탄을 대적하므로, 내 죄, 내게 역사하는 사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죄와 주변 사람들에게 역사하는 사탄까지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맺음말
1)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님
베드로전서 2:9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란, 실질적인 이 땅의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라기 보다, 죄에서 자유하신 왕 되신 예수님을 본받고, 하나님과 교통하신 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죄에서 승리하고 하나님께 아뢰어 응답받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우리를 삼으셨다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탄을 이긴 왕이고, 하나님을 매일 만날 수 있는 제사장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습관적인 죄에 자신을 합리화시켜 아무 재미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가슴 아파 하시겠습니까? 부디 오늘 강의를 통해, 예수님의 전공인 죄를 이기는 방법을 사용하셔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면서,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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