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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논문] 자유주의 신학의 인식론적 전제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2

주전담백 主前淡白 2011. 7. 8. 11:26

 

 

 

 

 

1. 폴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

 

1차세계대전(1914-1919)은19세기자유주의신학(:Liberal Theology)과 관념론적인 철학자들에게 재앙과 같은 일이었다. 전쟁의 참상으로 인해, 그동안 가져왔던 낙관적인 인간론과 진보적 세계관이 포기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선함과 과학의 발전을 통해 지상 유토피아(Utopia)를 건설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편승해,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들고, 칼 바르트(Karl Barth)를 중심으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등의 학자들의 신정통주의 신학(Neo-Orthodoxy Theology)이 탄생하게 되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초월적인 하나님은 부정하고 내재적인 하나님만을 강조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만 인정하고 신성은 부인했다. 이에 대해 신정통주의 신학은 자유주의신학의 비관적인 인간론과 구원론을 비판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기독론을 부활시켜, 그로 인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회복을 꾀했다. 그리고 신정통주의 신학과같은시기에실존주의철학(Existentialism)의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자적 시각에서 기독교를 재해석하려는 죄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과 같은 신학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들과 흐름을 같이 하면서 실존적 상황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하려고 했던 신학자가 바로 폴 틸리히 인 것이다.

 

 

1.1. 상황 (Context)

 

1.1.1. 실존주의 철학과 폴 틸리히

폴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독일의 브란덴부르크지방의 스타르체델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루터교의 목사였으며 그는 주로 쉔플리스 뉴왁과 퀙닉스 빌크뉴왁이라는 중세풍의 도시에서 자랐다. 이런 환경은 그의 마음에 낭만적, 신비스러운 특성으로 남아 과거에 대한 예리한 감각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길러 주었다. 1904년-1909년 사이에 그는 베를린, 튀빙겐, 할레의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수학하고 1912년 셸링의 연구로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는 그 후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거기에서 1923년-1929년까지 철학교수로 있었던 하이데거를 통하여 실존주의를 접하게 된다.

틸리히는 실존주의 철학으로 기독교의 신학을 해명하려고 했다. 그 결과 틸리히가 밝히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철학적인 존재론적 추리의 결론으로서의 하나님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 소외의 해결을 위한 새 존재로 이해함으로 역사적인 예수에는 별 의미를 두고 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틸리히의 시도가 현대인의 철학적 고민 속에서 신학적 해답을 주려고 시도한 변증적 동기라는 점은 인정하겠으나, 결과적으로 그가 현대인에게 소개한 기독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믿었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실존주의의 옷을 입힌 한갓 철학적 관념론에 그치고 만 것이다.

틸리히는 결국,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정통주의 신학을 거부한 결과, 토마스 알타이저(Thomas J. J. Altizer)를 대표로 하는 사신신학(Theology of Death of God)을 낳는 산파(産婆)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사신신학의 대표자인 알타이저가 바로 틸리히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알타이저는 틸리히의 신학적 업적을 “20세기의 신학자들 중에서 오늘의 사고방식으로 현대 신학을 수립한 유일한 신학자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틸리히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 1968년 10월 알타이저가 틸리히가 가르치고 있던 시카고대학교(Chicago University) 신학대학의 초청을 받아, 그 때 한창이던 ‘사신신학’을 강의했다. 그 강의를 듣고 알타이저의 극단적인 사상에 놀란 틸리히는 알타이저를 불러, 어떻게 그런 무신론(Atheism)적 결론에 이르게 되었느냐고 묻자, 알타이저는 “당신이 가르친 신학 때문이었습니다(You fathered me).”라고 대답 했다고 한다. 틸리히가 알타이저의 강의를 듣고 놀란 이유는, 틸리히는 무신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루터교(The Lutheran Church) 목사의 아들로 자랐고, 루터파 신학자로서 결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이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한 구원(Salvation by Grace Through Faith)’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틸리히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신론자가 아닌 틸리히가 사신신학의 산파역할을 하게 된 것은, 특별계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 상황에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1.1.2. 상황과 기독교

기독교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초대교부였던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 같은 이는 “아덴이 예루살렘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상황을 고려하는 것 자체를 죄악 시, 대립 시 했다. 반면에 B.C. 2-3세기에 존재했던 알렉산드리아학파(Schola Alexandrina)는 상황신학의 모델 케이스가 될 정도로 상황을 신학에 많이 고려하였다. 상황은 기독교 내에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폴 틸리히(Paul J. Tillich: 1886-1965)의 신학을 통해 그 중요성을 자리잡아가기 시작하더니, 해방신학, 민중신학과 같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고려한 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교적 측면에서도 크게 강조되기 시작했는데, 1972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의 신학교육기금(Theological Education Fund)에서 ‘상황 속의 사역’(Ministry in Context)이란 보고서를 내 놓게 되었고, 그 후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어 상황을 고려한 선교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황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히버트(Paul Hiebert)는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로 ‘상황과 기독교를 대립적으로 보는 경우’인데, 기독교는 모든 인간 상황으로부터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기독교와 상황을 구별해야 하는데, 이것에 실패함으로써 기독교가 전파될 때 서양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견해는 기독교는 상황과 관계없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는 경우’인데, 기독교가 상황과 구별된 것이라 해도 상황 안에서 표현되므로 상황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와 상징, 형식으로부터 분리된 기독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상황 안에서 재탄생해야 한다는 것이 이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는 ‘기독교가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보는 경우’인데, 상황이란 기독교의 계시가 구체화 된 것이므로 기독교의 계시를 통해 판단하고 바꾸기 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견해들 중, 틸리히의 견해는 두 번째,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는 경우’이다.

 

1.1.3. 상황을 전제로 한 신학방법론

틸리히는 기독교 진리를 삶의 상황과 연결시켜 재해석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틸리히는 20세기 최대의 철학적 신학자, 문화 신학자의 자리를 얻게 되었다. 틸리히가 현대인의 철학적 고민 속에서 신학적 해답을 주려고 한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현대인에게 소개한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산 신앙이 아니라, 관념적인 하나님을 믿는 죽은 신앙인 것이다.

이렇게 틸리히의 신학이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되게 된 이유는 ‘두 주인을 꼭 같이 존중하고 섬기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진리’와 ‘상황’이라는 두 가지 대상을 만족시키려 한 결과, 결국 기독교 진리가 상황에 의해 재해석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틸리히는 그의 대표작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서론에서 신학의 기능과 정통신학의 문제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신학체계는 다음과 같은 교회의 두 가지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독교 메시지의 진리를 진술하는 일과 이 진리를 모든 새로운 세대를 위해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 유럽 정통주의 신학(Theological Orthodoxy)과 미국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과거의 상황으로부터 말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과 접촉할 수 없다.

틸리히는 ‘기독교 진리’와 ‘상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유럽의 정통신학과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이 '변화하지 않는 진리'(Kerygma)를 너무 강조하여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신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루터가 신학 교리를 형성할 때 그의 유명론적인 지식과 멜랑히톤의 인본주의적인 지식을 사용하였음을 인용하면서 상황은 신학작업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칼 바르트가 상황의 빛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수정한 것은 긍정적인 업적이지만 여전히 정통신학에 매여 있었던 케리그마 신학자였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틸리히가 말하는 ‘상황’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상황은 우리가 처해있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현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틸리히의 상황이란 ‘해석된’ 상황이며, ‘총체적인’ 상황을 뜻한다. 해석된 상황이란, 객관적으로 제시된 상황이 아니라 개인이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경험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총체적 상황이라는 뜻은 철학뿐만 아니라 시, 드라마, 소설, 치료심리학, 사회학 등 우리가 속한 시대의 전체에 대한 상황을 말한다. 그래서 폴 틸리히를 한편으로는 ‘문화 신학자’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실존적으로 해석된 상황과 총체적 상황에 대한 질문에 대해 교회는 대답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틸리히의 주장이다.

틸리히가 기독교 진리와 상황을 연결시켜 세상에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한 신학방법론은 ‘상관관계의 방법(The Method of Correlation)’이다. 상관관계의 방법에 대해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조직신학은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해 전개된다. 조직신학은 인간의 상황을 분석하여 실존적인 물음을 제시하고, 기독교의 메시지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상징이 이 물음에 대한 대답임을 논증한다.

틸리히는 ‘상관관계의 방법’에 의거해 철학과 신학을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종합했다. 다시 말해 철학은 인간이 실존적 상황 속에서 물어야 할 물음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신학은 우리로 하여금 실존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준비케 한다는 것이다. 틸리히는 이런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한 신학자로 칼빈을 지목한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 1권 1장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을 연관시킬 때, 인간 자체의 교리나 하나님 자신의 교리로 설명하고 있지 않고, 실존적 차원에서의 인간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영광의 상관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칼빈은 그의 신학체계 첫 문장에서 상관관계의 방법의 본질을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틸리히는 이 상관관계의 방법을 바탕으로 신학체계의 구조를 수립하고 있다. 그의 신학체계는 아래와 같다.

나의 신학체계는 제5부로 구성되어 있다. 몇 가지 이유로 볼 때, 신론보다 인식론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의 인식의 합리성을 분석하고, 이성의 유한성, 자기소외, 모호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들을 분석한 후에 이에 대한 대답이 계시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1부는 인간의 본질적 본성과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물음들을 분석한 후에, 이에 대한 대답이 하나님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제2부는 인간의 실존적인 자기 소외와 이런 상황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 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답이 그리스도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제3부는 인간의 삶과 삶의 모호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답이 성령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역사적 실존을 분석하고, 역사의 모호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들을 분석한 후에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하나님 나라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의 ‘조직신학’은 모두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성과 계시’, ‘존재와 하나님’, ‘실존과 그리스도’, ‘생명과 성령’,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의 다섯 가지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는 계시와 상황을 상관 관계적으로 연결시킨 그의 신학방법론을 정확하게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관관계의 방법을 적용해 다섯 가지의 질문에 대해, 기독교적인 답변을 내리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틸리히는 1권 전반부에서 ‘이성과 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틸리히는 이성을 존재적 이성과 기술적 이성으로 나눈다. 존재적 이성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이성이해로, 이성을 세계 구성의 원리, 운형의 원리인 로고스(Logos)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적 이성은 영국의 경험론의 등장 이후로 생긴 이성의 종류로, 세계를 분석하고 통제하여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과학적인 인간의 인식능력을 뜻한다고 말한다. 원래는 존재론적 이성 밖에 없었으나, 근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기술적 이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종교를 미신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존재적 이성과 기술적 이성은 함께 사용해야 적절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고 틸리히는 지적한다. 틸리히의 이성에 대한 견해는 주로 존재론적 이성에 대한 사유로 집중된다. 존재론적 이성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계시와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틸리히는 존재론적 이성은 시공간에 나타날 때 유한해져서 ‘현실적 이성’이 된다고 말한다. 틸리히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정신과 실재의 구조로서의 이성의 존재와 실존과 삶의 과정을 통해서 현실적이 것이 된다. 여기서 존재는 유한한 것이고, 실존은 자기 모순적인 것이며, 삶은 모호한 것이다. 현실적인 이성은 실재의 이러한 특징들에 참여한 이성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이성은 유한한 범주와 자기 파괴적인 갈등과 모호성에 종속되어 있는 이성이며 또한 이러한 종속으로 인해서 모호하지 않은 것, 갈등을 넘어서 있는 것, 범주에 대한 예속을 초월해 있는 것을 요청하고 있는 이성이다.

틸리히는 존재적 이성이 실존적인 시공간 속에서 현실적 이성이 된다는 것은 자기모순과 모호함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모순과 모호함이란 실존적 조건들에 예속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긴장과 갈등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긴장과 갈등으로 분열 왜곡된 현실적 이성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방법이 바로 계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시에 대한 틸리히의 이해는 어떠한가? 틸리히의 계시에 대한 이해는 아래와 같다.

계시는 감추어져 있는 어떤 것이 그 베일을 특별하고 비범한 방식으로 벗는 특별하고도 비범한 현현이다. 여기서 감추어져 있음은 자주 ‘신비’라는 말로 일컬어져 왔는데 이 말 또한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의 넓은 의미는 고등수학의 신비와 성공의 신비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이야기들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반면에 이 말의 좁은 의미는 본질적으로 신비한 것, 곧 만일 그것이 그의 신비한 성격을 상실하면 그 자신의 본질을 상실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지시하고 있다.

틸리히는 계시를 ‘신비의 드러남’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 정보의 드러남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곳에 있는 존재의 궁극적 관심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신비의 드러남을 통해 현실적 이성은 치유되고 구원 받게 된다는 것이 틸리히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틸리히가 말하는 계시와 기독교의 특별계시는 같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래에 틸리히의 글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계시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도 아니고 심지어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도 아니다. 계시는 종교적인 영역 밖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종교 속에는 계시가 아닌 것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계시는 종교와 비종교를 똑같이 심판한다. 또한 계시는 지금까지 발생했던 모든 계시들의 역사도 아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계시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오직 계시적인 사건과의 실존적인 관계의 토대 위에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인류의 모든 말씀들이 계시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통교회가 특별계시만을 계시로 인정하는 것에서 확장된 견해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틸리히의 계시관은 실존과 관련되어야만 진정한 계시가 되기 때문에 기독교의 특별계시만이 진정한 계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틸리히는 실존, 상황 의존적 신학자임이 명백해진 것이다.

다음으로,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정의하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틸리히는 하나님에 대해 사람들에게 답변하기 위해 철학에서 사용하는 존재론적인 질문 ‘왜 무엇이 존재하는가?’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의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영원을 그리워하며 무로 돌아가게 되는 불안정한 존재가 있고, 둘째로 그것에 속하지 않는 존재 자체인 궁극적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궁극적 존재, 존재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틸리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신’은인간의유한성이안고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즉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에 대한 이름이다.(Heis the name for that which concerns man ultimately).

틸리히는 신이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의 대상, 존재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주장한다거나 신에 대해 궁극적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궁극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존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틸리히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불안정한 존재인 우리를 위협하는 비존재에게서 저항할 힘을 주어서 치유하고 구원하는 역할을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시기 때문에 불안정한 존재들이 지니는 인격을 지닐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으로 표현한 것은 인간이 인격적인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그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틸리히는 하나님을 존재 자체라고 하지만 결국 물질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 또한 그의 신학에 희생되어 불가능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정의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틸리히는 불안정한 존재 중 하나인 인간이 비존재들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실존적 상황을 질문으로 던지면서 그에 대한 해답으로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고 있다. 먼저 틸리히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틸리히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한다. 아래의 틸리히의 글을 읽어보자.

기독론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의 이름을 우선적으로 가이사라 빌립보 이야기의 빛 속에서 해석하는 일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성과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그것은 AD.1년에서 30년 사이에 나사렛에서 살았던 어떤 사람의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칭호의 결합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만 한다.

틸리히는 예수는 팔레스타인에 태어난 인간 예언자를 말하고, 그리스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예수와 그리스도가 비존재의 위협 속에서 고난당하는 실존적인 인간들에 의해 인간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될 때, 예수 그리스도는 비로소 메시아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틸리히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기보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로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틸리히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스도는 일생동안 불완전한 존재들이 겪는 소외와 위협을 겪지 않고 하나님과 연합하신 실존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인간이 겪는 불신앙, 오만, 정욕의 위협들을 다 겪으셨으나 그것에 의해 소외되지 않으시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그렇게 하나님과 연합된 완전한 실존이자, 소외의 위협 속에서도 소외되지 않은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이고, 팔레스타인에 나타난 예수가 그리스도로 인식되고 그분을 실존들이 고백하게 되어질 때 기독교는 출발되고 구원은 이뤄진다고 틸리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틸리히의 견해는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와 다르게 인간의 육신에 임한 하나님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와 맥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틸리히의 구원관은 확실하다. 틸리히는 루터파 신학자로서 은혜를 통한 구원, 즉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생기고,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아래의 틸리히의 글을 읽어보자.

은혜는 우리가 가장 큰 고뇌와 불안 속에 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외침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 합니다. ‘너를 용납하신다. 너를 용납하신다는 것은 너보다 위대한 자가 너를 용납하신다는 말이다. 너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아직은 그의 이름을 묻지 말라. 어쩌면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아무것도 하려고 애쓰지 마라. 머지않아 더 많은 것을 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우리는 은혜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은혜는 죄를 극복했으며 화해는 분리된 심연에 다리를 놓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에는 종교적 전제도, 도덕적, 이성적 전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용납의 경험인 은혜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중보자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틸리히는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틸리히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속죄주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틸리히는 속죄를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소외의 상태 속에서 새 존재에 의해서 사로잡히게 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효과”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죄의 해소가 속죄가 아니라,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와 같은 새로운 존재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그리스도는 비존재의 위협에도 오염되거나 소외되지 않은 완전한 새로운 존재일 뿐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속죄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케 하는 매개체로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성경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개인적 사유에서 나온 철학적 결과물일 뿐인 것이다.

다음으로,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정의하는 성령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틸리히는 성령을 “영적현존(성령)은 인간의 영을 모호하지 않은 생명의 초월적인 결합 안으로 상승시켜 하나님과 재결합의 직접적인 확실성을 주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틸리히는 모든 생명현상이 모호성에 감춰져 있다고 말하면서, 그 모호성을 극복하고 온전한 생명으로 승화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틸리히는 생명을 단순히 호흡하는 존재만을 말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나타난 모든 존재들로 확장시키고 있는데, 바위, 산, 강, 바다 등은 무기적 차원의 생명으로, 식물, 동물 등은 유기적 차원의 생명, 그리고 인간은 역사적 차원의 생명으로 본다. 이 생명에는 모호성이 존재하는데 틸리히가 말하는 모호성이란 단순히 불명확하고 애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생명 안 존재하는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신적인 것과 마성적인 것, 생명과 죽음 등의 공존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호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모호성은 영적 현존, 즉 성령의 임재 속에서 극복되고 승화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성령의 특징, 말씀을 깨닫게 하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역할과는 거리가 먼 이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가 교회 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일어난다고 말한다. 틸리히의 견해에 따르면 영적 공동체는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현존인 성령의 임재를 통해 모호성이 극복된 곳 또한 영적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틸리히는 영적 공동체를 교회를 넘어 타종교, 문화, 조직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범신론적인 견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정의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틸리히는 먼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 갖는 역사의 의미를 살핀 다음, 하나님 나라는 그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모호성을 극복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역사의 종말이 곧 하나님 나라라고 답하고 있다. 틸리히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내재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인격적으로 생명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나라로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내재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성취의 초월적 요소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1.2.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 비판

앞의 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틸리히는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하여 철학적인 질문들을 신학적으로 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으로 정의된 하나님은 존재 자체로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분이 아닌 물질로 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실존적 소외와 위협을 겪지 않은 실존의 완성으로 이해하여 구속주가 아닌 모범으로 이해하고 있고, 영지주의적인 그리스도관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성령은 말씀을 깨닫게 하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분이 아닌 생명현상의 모호성을 극복케 하는 존재로 이해하고 있고 성령의 임재는 교회 밖에서도 이뤄진다고 주장하면서 범신론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틸리히의 신학이 변질되게 된 것은 특별계시를 무시한 채 상황을 기독교의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1.2.1. 비(非) 기독교∙탈(脫) 기독교화의 위험성

상황이 기독교의 인식론적 전제가 될 때, 기독교는 비 기독교화, 탈 기독교화 되게 된다.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아 기독교 아닌 기독교, 기독교에서 벗어난 기독교가 되고 만 경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바로 시대적 상황을 전제로 신학을 재편한 1950년대 남미의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과 1970년대 한국의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신학’이란 남미대륙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신학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이른바 ‘제3세계’라고 불리는 여러 국가들은, 국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세력으로 부각되었다. 그들은 식민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실질적이고 전체적인 해방을 추구하면서, 기존 강대국 중심의 질서에 대해 근본적인 재편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와 같은 경향은 특히 외국의 경제적 침략과 정치적 간섭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혁명적 엘리트들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제3세계의 사회정의, 가난, 인권 등의 정치 경제적 문제를 복음에 어떻게 상관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해방신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해방신학의 문제점은 현실적 부정의를 철폐하고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자는 실천사상(Praxis)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아, 전통신학을 재해석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신학의 문제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로 전통신학이 현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통신학은 배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점이고 둘째로, 성경은 보조적 역할만 하지 결정적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신학자들은 성경이 아닌 막스주의적 사회분석방법론을 활용해 사회를 분석한 후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 신학’은 해방신학이 70년대 초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생긴 것이다. 한국교회가 점차 중산층화 되면서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보수신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태동된 신학인 것이다. 민중신학은 1960년대 이 후 진행된 근대화 작업으로 야기된 산업화, 도시화로 변화된 상황 속에서 교회의 선교적 과제를 안고 씨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한국의 상황 신학이다. 민중 신학의 문제점은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성경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상황을 동일선상, 혹은 상황을 우위에 놓고 해석하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성경의 해석을 정치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예수를 사회운동가로, 기독교를 가난한 대중들의 사회운동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결국 신학을 신학으로써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황과 목적에 맞는 이데올로기로 변용시켜 사용한 것이다.

해방신학, 민중신학과 같이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아, 상황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고, 전통신학을 재해석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 기독교에서 벗어난 기독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틸리히의 신학사상에는 비 기독교화, 탈(脫) 기독교화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틸리히의 신론에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통신학과 완전히 관계없는 교리인 것이다. 틸리히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적인 하나님도 아니고, 우리와 사귐이 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도 아닌 비 기독교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틸리히가 고안한 존재론에 기초해 ‘존재 자체’라는 표현을 빌어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범신론 사상과 같은, 탈 기독교적인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1.2.2. 혼합주의(Syncretism)의 위험성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을 때 일어나는 두 번째 위험성은, 기독교가 토착 종교사상들과 혼합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기독교의 혼합주의화이다.

한국 기독교는 ‘유교화된 기독교’, ‘기복적 기독교’, ‘샤머니즘적 기독교’의 혼합주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윤성범 교수 등의 ‘삼위일체와 단군신화의 삼일신존’의 혼합사상, 변선환 교수 등의 기독교 밖의 타종교와의 대화 등 또한 한국 기독교의 혼합주의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변선환 교수는 ‘새로운 우주관, 인간론, 종말론을 겨레 앞에 제시하는 게 기독교 근대화의 시급한 과제’라고 말하면서 특히 한국 기독교는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을 오염시키고 인간을 파괴한 서구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된다고 원광대 학술강연회에서 밝힌 바도 있다. 변교수의 혼합주의적인 사상의 위험성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리 개신교만이 기독교의 참신앙이라고 고집하고 타종교를 비신앙이라고 규정해 버린다면, 기독교는 고립되고 말 것이다. 칼 바르트는 ‘예수의 이름이 없는 곳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했는데, 과연 오늘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예수의 이름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 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진언종과 기독교는 삼위일체의 교리 등 유사성이 아주 많다.

한국 기독교의 혼합주의화는 기독교가 상황을 성경과 동일선상에 놓고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틸리히의 신학에서도 혼합주의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틸리히가 1960년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 여행에서 일본 불교를 접하게 되었는데, 틸리히는 일본 불교의 신비주의와 기독교의 신비주의의 관련성 인식하고는 자신의 조직신학을 다시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나 그의 당시 나이가 74세였던 관계로 포기했었다고 한다. 이처럼 상황중심적인 그의 신학적 사고는 새로운 상황을 만나 약간의 공통점만 발견하게 되면 거리낌 없이 융합하려는 혼합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결과 기독교를 오염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1.2.3.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의 위험성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는 모더니즘을 탈피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로 진입했다. 절대적 기준을 무시하고 모두가 기준이 된다는 상대주의적 개념이 인정되는 이 상황을 고려해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타 종교와 진지한 대화를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종교다원주의신학이 싹트게 되었다. 힉(John Hick)의 성육신의 신화, 파니카(R. Panikkar)의 보편적 기독론, 니터(Paul Knitter)의 관계적 유일회성 등이 종교다원주의신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힉은 1980년에 발표한 ‘God Has Many Names’를 통해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힉은 원래 개혁교회의 복음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신학자였다. 그런데 그가 사는 버밍햄 근처의 이슬람교, 시크교, 힌두교 및 유대교 공동체 속에서 그들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점차 그들에게 다가가게 되었고, 그는 여전히 예수를 그의 주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상황 속에서 그의 신학은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의 재편된 신학의 단면을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기독교는 역사적 체험의 내용과 사상, 영성에 있어서 각기 독특한 형태를 지닌 종교적 삶의 다양한 흐름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하나이자 유일한 것으로서가 아닌, 여러 가지 것 중의 하나로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수용한다.

힉은 세계의 종교가 다양하지만 궁극적인 실재는 하나라고 보았다. 단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르게 구현되었을 뿐이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구원은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파니카는 출생부터가 남달랐다. 스페인의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가톨릭 사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란 파니카는 모든 종교 안의 신비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을 아래의 글을 통해 살펴보자.

정상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길들이 사라진다면 정상 그 자체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정상은 어떤 의미에서 그에 이르는 경사진 길들의 결과일 뿐이다. 이름을 떠나서 실재가 별도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이 이러한 실재(궁극적 신비)가 많은 이름들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실재는 많은 이름들이고, 각각의 이름은 각각 새로운 측면들이다.

위의 글처럼 파니카는 전통종교들이 자신의 종교가 모든 종교를 대표하는 것을 독점하는 듯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결정적 규범성에 대한 전통적 이해에 도전했다. 파니카에 의하면 신의 구원의 길은 예수라는 인물 속에서도 계시되고 있고 타종교의 여러 위대한 성인들을 통해서도 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보편적인 기독론인 것이다.

니터는 예수 그리스도 구원사역의 유일회성을 거부한 신학자이다. 예수의 역사는 수많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의 역사 중 하나일 뿐이지 그 역사만이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의 역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연구해 보면 예수의 메시지의 초점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즉 신 중심적 메시지였는데, 초대교회가 이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한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는 사도행전 4장 2절이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고백적 언어일 뿐이라고 한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압도된 신자들이 고백했던 고백적 언어일 뿐이지 그것을 절대화해서 보편적 진리로 확대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 종교의 경전 속에 절대성을 나타내는 표현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기초로 해서 보편적 진리로 확대하는 것은 종교적 언어의 표현 양식을 모르는데서 기인된 잘못된 귀결이라는 것이다.

위 세 명의 종교다원주의신학자의 공통점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현 시대 상황에 편승해 타종교와의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상황을 비중 있게 다루게 될 때 기독교는 상대주의화 되어 지고 기독교 신학은 타 종교의 사상과 연관되어 재편되게 되며, 결국 다원주의로 흐르게 되고,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틸리히의 기독론을 살펴보면 종교다원주의적 요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틸리히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나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구세주가 아니라, 인간이지만 인격적 존재가 겪는 소외나 왜곡을 겪지 않으신 새로운 존재이고 우리의 모범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틸리히의 기독론에 대해 타바드(G. H. Tavard)는 이렇게 비판했다.

힌두교인이나 불교도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물탄 맛 잃은 기독론이다. 그들은 예수 자신만이 그리스도라는 사실만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틸리히의 이론 중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형룡 박사는 “틸리히의 방법을 부처나 공자를 묵상하는데 적용하여 동일한 구원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한 틸리히로 인하여 많은 후대 신학자들, 목회자들, 성도들은 기독론과 구원론에 적잖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1.3. 상황 의존신앙과 특별계시 의존신앙

우리는 앞의 글에서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할 때 나타나는 위험성 들을 살펴보았다. 첫째로 해방신학, 민중신학과 같은 비(非) 기독교화, 탈(脫) 기독교화의 위험성이 있고, 둘째로 기복신앙, 샤머니즘 같은 토착종교와의 융합의 위험성이 있을 수 있으며, 셋째로 타 종교와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종교다원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틸리히의 신학을 개혁신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1.3.1. 특별계시 의존신앙의 필요성

박형룡 박사는 틸리히의 신학을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해설한 기괴한 이론”이라고 비평했다. 틸리히의 신학은 성경의 주요 사상들과 용어들을 취해 자기중심적인 철학적 개념들과 표현들로 풀이해 놓은 비성경적 신학이고, 자유주의 중에서도 과격한 자유주의 신학이므로 그를 미국으로 초청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도 틸리히의 신학을 비평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형룡 박사는 틸리히가 강조한 상황에 대해서도 원칙이 아닌 실존적인 실재를 너무 강조한 그릇된 행위라고 평가했다. 원칙이 없이 실재를 강조하면 평가의 기준을 상실하게 되고, 평가의 기준이 상실될 때 사회는 도덕적으로 봐서도 무질서 하게 된다는 것이 박형룡 박사의 주장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의 교훈에서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상황을 위해 이따금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거슬러 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상황을 기준으로 하여 생기는 여러 가지 신학적,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성경을 절대기준으로 삼는 것이라고 박형룡 박사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서철원 교수는 철학과 신학의 긴밀함을 통해 실존의 문제들에 대해 답을 제시하려는 것은 좋았으나, 하나님을 하이덱거의 존재철학에 기반하여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존재의 지반, 존재의 자체로 본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동일하게 실존의 조건에 종속된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큰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틸은 틸리히를 “자신의 자충족적 방법으로 기독교와 개혁신학을 재해석 하려한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방법으로 성경적 사고를 삼켜 새로운 체계를 산출해 버렸다고 틸리히의 신학을 비평하면서, 틸리히를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빠져 현대인에게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복음의 내용을 포기한 신학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틸리히는 자연인이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잘 분석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는 그가 제시하는 질문에 답하는 필요만을 갖는다고 생각했다고 반틸은 지적한다. 이러한 틸리히의 신학적 접근방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말씀이 의원되어 상황을 진단하고 다스리게 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1.3.2. 상황 의존신앙의 결과물 W.C.C.

그러나 애석하게도 21세기는 점점 상황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아 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현대교회운동이 에큐메니칼 교회일치운동인 WCC운동인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창립되어, 현재 120개국의 349개 교단에 속한 5억6천만의 회원들을 두고 있는 초대형 단체이다. 한국교회에서는 대한 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기독교 대한 감리회가 가입되어 있다. W.C.C.운동의 핵심은 사회적 책임, 개발과 발전, 정치, 사회적 해방운동, 정의, 평화, 창조의 보존을 추구하는 사회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르크스주의적 해방신학, 민중신학을 수용하여 인종차별, 남녀불평등, 인권운동, 산업선교, 정치적, 경제적 지배와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해 왔다.

W.C.C.의 문제점들 중 가장 큰 문제점은 포스트모더니즘 상황 속에서 상대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1961년 3차 뉴델리 대회에서 부터 타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5년 뱅쿠버 총회에서는 타 종교 지도자 15명이 참석했고, 그 중 5명이 주제강연을 했으며 타종교와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리고 1991년 7차 캔버라 총회에서는 전형경의 초혼제를 비롯해서 온갖 영들을 불러들이는 굿을 하였다. 원래 W.C.C.도 타종교를 ‘죽은 신앙’이라 불렀는데 1970년대부터 ‘살아있는 신앙’(Living Faith)이라 부르다가 결국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양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W.C.C.계열의 신학자들의 주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니터는 아예 그리스도 밖에 구원의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면서 기독교는 구원에 이르는 많은 길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둘째로,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셋째로, 한국 감리교신학대학 교수 변선환은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태도이며, 구원의 길은 여럿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W.C.C.의 문제점은 그리스도를 떠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것이다. 최근 W.C.C.의 문건을 보면 성도의 교제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보지 않고 말씀과의 만남으로 보고 있다.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교회는 자신들이 말씀과 만남으로써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면 자신들의 성실한 답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교제이다. 그것은 성도들의 교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W.C.C.의 기독론적 이해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W.C.C.는 우리가 받은 성령이 그리스도께서 인성 가운데 받은 성령과 동일하다는 측면에서만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인간이나 성령 받은 그리스도나 다를 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W.C.C.의 교회 일치는 그리스도가 빠진 교회일치가 되는 것이고, 이는 결국 기독교를 포기한 기독교 일치운동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세 번째로 W.C.C.운동이 가지는 큰 문제점은 성경을 비판하는 태도이다. W.C.C.에서는 노골적으로 ‘우리는 성경을 비판하며 심판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이 통합의 힘이 되기도 하지만 교리적 문제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게 한 원인이 되기 때문에 비판받고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지 그 자체만이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는 도구일 뿐이지, 무오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신정통주의의 실존주의적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문병호 교수는 2010년 열린 ‘미래목회포럼’에서 발표를 맺는 글에서 W.C.C.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개혁교회는 역사상 하나의 분파가 아니라 오직 성경의 반석 위에 서 있는 유일한 교회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성경적 현실주의(Biblical Realism)라는 이름으로 진리를 정황(상황)에 종속시킬 수 없다. 어찌 개혁교회의 진리를 로마 가톨릭의 진리의 계층질서(Hierachy of Truths)에 편입하겠는가? 어찌 진주를 돼지에게 줄 것인가? 어찌 극상품 포도나무를 주셨는데 들포도를 구하고자 하는가? 성경적 에큐메니즘, 초대교회 이후 교리사상 전개된 진정한 에큐메니즘은 성경의 참 진리를 수립하고자 추구되었다. 교리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단지 모이기만을 추구하는 W.C.C.는 성경의 진리를 떠나 있으며 교회의 정통 교리를 벗어나 있다. W.C.C.의 그럼에도 불구하고(Quamvis)의 신학은 자체로 헛되다. 성경은 헛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 여긴다.

문병호 교수의 지적처럼 교회는 성경이라는 전제를 떠나서는 일치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런데 W.C.C.는 상황에 성경을 종속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보다 상황을 우선시 하는 W.C.C. 10차 총회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게 된다고 한다. 만일 이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한국 기독교는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는 W.C.C.의 신학에 오염되고 말 것이다.

 

1.3.3. 박윤선과 틸리히

박윤선 박사는 1938년 표준성경주석 ‘고린도후서’를 집필하기 시작해, 1979년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를 내 놓음으로써 40년간의 노력을 통해 한국교회에 성경주석을 선물했다. 박윤선 박사가 쉬지 않고 40년간을 주석편찬에 매진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교회에 있어서 바른 말씀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박윤선 박사는 한권, 한권 주석을 해 나갈 때 마다 성경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대항하여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고 변증하는 간략한 글을 서문에 남겼다. 그 이유 또한 상황에 밀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성경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성경은 무오한 것이며 교회 뿐 아니라 인류 사회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이요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박윤선 박사는 ‘개혁주의 성경 해석 원칙’에서 성경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복종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 박윤선 박사는 성경해석의 최후 심판자는 성경 자체이고 개혁주의는 성경계시의 필연성, 완전성, 충족성, 명백성을 믿으며, 성경은 인간의 자의대로 억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철저히 복종해 온 결과, 세 개의 신학교를 직․간접적으로 세워 가르쳤고, 수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배출했으며, 한국 보수 신학자들 중 제일 먼저 박사학위 논문을 위한 연구대상이 되는 영예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많은 성도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의 최고의 목회자요, 신학자요, 성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윤선 박사와 틸리히의 생애를 비교해 볼 때 어떤 인상을 받게 되는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지만, 박윤선 박사는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가 아닌 오직 성경에 인식론적 전제를 둔 신학을 했고, 틸리히는 권위적인 루터파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자연철학자 셀링의 영향, 지울 수 없었던 군목시절의 충격적인 절망감으로 인해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둔 신학을 했다. 그 결과, 틸리히 자신도 의도하지 않았던 사신신학이 나오게 되었고, 틸리히를 미국으로 초대한 니버에게까지 비판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단편적으로 두 신학자의 인생만 비교해 보아도 무엇을 우리 신앙의 인식론적 전제로 두어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각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틸리히가 너무나 냉혹한 시절을 보냈기에 그렇지 않느냐고 동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윤선 박사 또한 일제시대, 신사참배강요, 한국전쟁, 한국장로교회 분열 등의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박윤선 박사는 오히려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 또한 성경을 유일한 기준이요,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작은 시대적 상황 앞에 흔들리지 않고, 성경을 절대 진리요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로 삼을 때, 박윤선 박사와 같이 인정받는 신앙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1.4.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를 마치며

틸리히는 정통신학이 지닌 한계, 즉 현실과 동떨어진 모순된 신앙양태를 개선하고자 노력한 신학자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개선의 수준을 넘어 기존의 신학적 질서와 체계를 붕괴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그 이유는 쉽게 변하는 상황을 자신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기준은 변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땅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한국사회 1970년대 가족정책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가 진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둥이 가정(아이를 셋 이상 나은 가정)이 진리가 되었다. 이처럼 세상에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할 수도 없다. 특별계시의 권위를 무시한 채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라는 현실적 상황에 편승한 W.C.C. 운동 또한 상황에 의존해 기독교의 본질을 흐려 놓는 운동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단 말인가? 아니다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특별계시인 것이다. 변함이 없는 특별계시야 말로 기독교의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세상도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정형화 된 제도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상황을 전제로 삼으려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순수성을 훼손시키려는 사단의 계략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이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생활에 반대되게 움직인다 하여도 절대 특별계시의 그늘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 신정통주의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이 특별계시에 의해 유지되어 온 기독교의 순수성을 훼손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후배 신학자들은 그것은 인식하지 못하고 더 급진적으로 특별계시를 부정하는 신학에 매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