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영상] 부활이 주는 희망 (벧전 1:3~4)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4. 4. 5. 17:53

https://youtu.be/QjK5KvXn0aQ

 

<본문 : 베드로전서 1:3~4>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내용>

 

1. 산소망 예수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성도들에게는 산소망, 희망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이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실존적인 우리들에게 현실적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나요? 예수님의 부활이 내가 희망하는 즐거움, 평안, 행복을 줄 수 있나요? 저는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살펴보기 이전에, 세상에서 기대하는 희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2. 세속적 희망의 허망함

[고대사회] 속 인간의 핵심가치는 희망이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그런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면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지게 되었지만, [중세사회]는 신분제를 고착화 시켜 희망을 빼앗아가는 서양의 영지주의와 동양의 윤회사상이 인간의 생각을 지배했습니다. 인간이 영지주의와 윤회사상을 넘어 본격적으로 희망을 꿈꾸게 된 것은 [근대사회] “프랑스대혁명”(1789) 이후였습니다. “프랑스대혁명으로 신분제가 무너졌고, 이 때 나오게 된 철학사조가 긍정과 부정이 만나 이성적인 토론을 거치면 가장 좋은 합의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독일 철학자 헤겔의 [정반합]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선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긍정과 부정이 싸워 합의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이익을 합의점으로 놓고 싶어 하는 일들이 늘어갔고 그 결과 1,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게 되었고 세속적 희망에 대한 기대감과 현실화는 산산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는 맹목적 추종에 의한 현실성 없는 희망과 희망을 잃어버린 권태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3. 부활이 참된 희망인 이유

예수님의 부활이 참된 희망인 이유는 첫 번째로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계획에서 나온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계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유한한 물질세계에 희망을 걸어 결국 절망하여 권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희망이 아닌,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인 천국을 희망하여 절망 없는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고난을 부정하거나 없앨 수 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다가 들통이 나는 세속적 희망과는 다르게, 고난은 있지만 이기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불완전한 희망을 추구하다가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자포자기의 권태에 빠지고 맙니다. 세속적 희망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으로, 천국을 사모하며, 현실의 고난까지 이기게 만드는 부활의 희망을 품어,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