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시아(Querencia)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 ‘바라다’라는 뜻의 동사 ‘querer’(케레르)에서 나왔는데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케렌시아는 특정장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스페인 투우장에서 소는 투우사와 싸우는 중간 중간에 케렌시아라는 장소에 머물며 휴식을 취합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는 나만의 케렌시아가 필요합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에게 케렌시아는 집 차고였기 때문에 창업을 할 수 있었고, 발명가 에디슨의 케렌시아는 어머니의 격려였기 때문에 1000개가 넘는 특허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술을 케렌시아로 삼은 사람들은 알콜중독에 이를 확률이 높고, 명상을 케렌시아로 삼은 사람들은 마귀의 유혹에 잘못된 정신세계에 빠져들 확률이 높습니다. 이처럼 케렌시아는 필요하지만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케렌시아가 생산적 도구가 되기도 하고, 파괴적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편 57:1에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 도망을 나오면서 두 번의 부끄러운 일을 행하게 됩니다. 첫째는 놉 땅의 제사장을 찾아가 거짓말로 빵과 칼을 얻게 됩니다. 둘째는 블레셋땅으로 피하였는데 자신을 알아본 블레셋 장수들 앞에서 미친척 하여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다윗은 자신의 케렌시아인 아둘람굴에 숨게 됩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광야와 굴은 죽음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아무 소망없는 그곳에서 다윗은 회복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곳에서 하나님을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 가족과 동료들을 보내주시어, 완벽한 회복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혼자만의 장소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비밀스러운 장소라면 그곳은 케렌시아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장소에서 하나님을 부르면 그곳은 어디든 케렌시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케렌시아를 만들어, 회복되어 더 멋진 일상을 살아내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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