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하나님의 위로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4. 7. 19. 19:54

 

창세기 21:1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부장적인 남편이어서 사라를 많이 배려하지 않았고, 상의없이 아들 이삭을 바치려고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두번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하여 왕에게 끌려가도록 방치하여 사라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사람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하나님이 이삭을 임신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을 때 웃었던 이유가 하나님의 약속을 못 믿어 비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쇠함(창18:12)으로 인한 고갈됨으로, 자조 섞인 웃음을 짓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가부장적인 남편 밑에서 다 고갈된 사라였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사라를 위로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낳아 웃음 지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속 "돌보셨고"는 히브리어로 "파카드"(פָּקַד)입니다.이 파카드는 출애굽기4:31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시다", 사무엘상 2:21에서 한나를 "돌보시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정리해 보면, 하나님은 자리를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고갈됨 속에서 돌보시고,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시며, 말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돌봐 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정에서 형제나 자녀들의 위로 보다 아버지와 남편의 위로가 힘이 있듯이, 교회에서도 성도들의 위로보다 하나님의 위로가 더 힘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내 자리를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여, 사람들은 몰라줘도 하나님의 위로와 돌보심을 받아서, 세상이 알 수 없는 위로 속에 견디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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