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더운 여름날, 친구가 된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신나게 놀다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 만나 또 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내일이 뭐지?’라고 생각하며 돌아갔습니다. 내일이 되었는데도 하루살이나 나타나지 않자 메뚜기는 다른 친구인 개구리와 신나게 놀았습니다. 가을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자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러 간다며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메뚜기는 ‘내년이 뭐지?’ 하며 돌아갔고, 개구리는 그 메뚜기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루살이는 한해살이 메뚜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한해살이인 메뚜기는 다년생인 개구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도서 3:11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모두 옳고 적당하고 아름답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인간은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 이해되지 않아도, 나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사모하는 사람은, 옳고 적당하며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영생을 약속받았으면서도,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시 메뚜기 보다는 며칠 더 살지 모릅니다. 개구리보다 몇 년 더 살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몇 년 후에는 똑같이 한 줌의 흙으로 끝나버릴 육체의 생명에만 집착해 가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결국은 허무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신도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이해되는 것만 보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삶을 맡겨드려서, 이생의 축복과 영생의 복락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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