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3.23.~1980.3.18.)은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느끼는 고독과 분리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합일 동기]라는 것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합일 동기]란 다른 사람의 성격 특성, 태도, 사고방식 등을 받아들여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자 하는 욕구로, 인간관계 뿐 아니라 이념, 철학, 사물, 존재의 근원을 이해하고 자신과 하나가 되려는 욕구까지 확대되는 동기입니다. 이를 통해 태어나기 전의 합일 상태로 돌아가 고독감과 불안을 극복하고 안정과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합일 동기를 근원적 에너지는 사랑인데, 사랑을 통한 합일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2:2에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연합“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쉼비바조(συμβιβαζω)입니다. ”모이다“라는 단어는 회당(시나고게)의 어원인 시나고(συνάγω)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나고는 ”단순히 모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면, 쉼비바조는 ”함께 걸음을 내딛다“는 뜻으로 ”동행“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를 종합하여 골로새서 2:2을 다시 해석해 보면, 사랑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걸을 때,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예수님을 더 이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움직이고, 공통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아예 모이지 않으려 하고, 큰 성과가 없어도 혼자서 편하게 하는 길을 택하고 맙니다. 하지만 성도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속 약자인 교회와 성도는 적은 힘이라도 모아서 함께 해야 주님의 뜻을 이루고, 복음을 확장시키며,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모임인 ‘시나고’가 아닌, 함께 걸어 목표를 이루는 ‘쉼비바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핵심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사랑하고 양보할 때 동행하게 되고, 더 크고 나은 목표를 이루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칼럼] 용서의 이유 (0) | 2025.09.05 |
|---|---|
| [칼럼] 실수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0) | 2025.09.05 |
| [칼럼] 완전해지는 삶 (0) | 2025.08.29 |
| [칼럼] 거절을 응답으로 (0) | 2025.08.29 |
| [칼럼] 구별됨과 남다름 (0) | 2025.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