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형통한 자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6. 3. 13. 17:02

 

창세기 39:2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셉은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님들의 "시기"를 받아, "종"으로 팔려왔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형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어로 형통은 짜라흐(צָלַח)인데 "성공하다", "잘 되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돌진하다", "통과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돌진하고 통과할 때는 힘이 들고 고난이 따르게 돼 있습니다. 그 힘듦과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 형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요셉이 형통한 자라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형통한 자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리가 되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가정 총리가 되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 형통한 자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과 힘든 일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돌진하여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자가 형통한 자인 것입니다.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힘든 일이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면 여러분이 형통한 자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 인내하시며 그 길을 걸어가셔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좋은 결과를 얻어, 형통한 자의 모습을 주변에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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