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울 수 있는 사람

주전담백 主前淡白 2019. 3. 1. 14:41



아이들이 많은 곳을 들라면 [산부인과][고아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곳의 상황은 상반되어 있습니다. 산부인과에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반면에 고아원은 울음소리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냐 없느냐 때문입니다. 산부인과의 아이들은 울면 간호사나 부모가 달려와 기저귀도 갈아 주고, 젓도 주면서 자신의 필요를 채워 주지만, 고아원의 아이들은 울어도 자신을 위해 달려와 줄 부모나 보호자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울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야 31:16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울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울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울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의 울음소리를 내가 이미 들었고 그 울음으로 인해 내가 너희를 포로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기 때문에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꿔 이야기 하면 마음껏 울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범죄함 속에 있지만 너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너희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너희들의 고통과 울음을 다 듣고 하나님의 때에 그 울음을 그치게 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오늘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울 수 있습니다. 혼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울 수도 있고,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이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떠올리며 혼자서 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울음은 그 사람을 침체에 빠뜨리고 우울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생활도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우는 사람은 정반대의 결과를 맺게 됩니다. 나의 눈물을 받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 앞에서 우는 울음은, 위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해지고 문제를 이기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울음을 받아줄 분 중에서 최고의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누구보다 축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울고 있습니까? 그 특권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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