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초기에 대표적인 교회를 들라면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로 베드로의 전도로 2만 명까지 모였던 대형교회였고,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교제와 나눔이 넘쳐났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에는 두 번의 큰 싸움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 교제와 나눔에 불만을 품고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불만을 제기한 것이고, 두 번째 싸움은 이방인 선교의 결과를 놓고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할례와 율법이라는 무리한 요구를 들고 나와서 였습니다. 물론 잘 해결되긴 했지만 그 결과 힘을 모아 복음을 증거하고 확장되어져야할 교회는 제대로 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힘이 줄어드는 [상쇄(相殺)]되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는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안디옥에 간 기독교인들이 세웠던 안디옥교회는,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였고 이방인 중심의 교회였기 때문에 기득권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서 사역한 바나바도 초대교회에서 소문난 인격자였고 바울도 3년간의 아라비아 사막에서의 기도를 통해 겸손해진 터라 서로 양보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내라는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의 의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움직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성도들의 힘이 하나로 뭉쳐져서 극대화 되는 [상생(相生)]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안식처가 아니라 불편하고 들어가기 싫은 곳이 되는 이유가 각자가 노력하지만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에 결과는 “0”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도 성령의 뜻에 순종하여, 한 마음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교회는 “1+(-1)=0”이 되는 [상쇄(相殺)]되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우리 모두 [상생(相生)]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성령의 뜻에 순종하며 한마음을 품고 하나가 됩시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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