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여러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행적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2절에는 요셉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되었고, 가족들을 가뭄에서 구원했으며, 이집트의 모든 돈, 땅, 권력이 바로왕에게 모여지게 한 최고의 사명을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2절에서 요셉이 감당한 믿음의 사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죽거든 이집트 땅에 장사하되,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 반드시 자신의 뼈를 가지고 가서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사명이 되는 것일까요?
저희 집 막내아들 세한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3월부터 제가 직접 한글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하기 싫어하고 힘들어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한글공부를 시켜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이집에서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는데 다른 아이들은 다 100점을 맞았는데 세한이만 0점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하라고 할 때는 하지 않다가 모두들 하고 해야 될 것 같으니까 스스로 한글공부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마지막 사명도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뭄에서 구한 영웅의 유언이니 후손들에게 계속 전달되고 중요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죽어서 감당한 “뼈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젊을 때, 능력 있을 때, 많은 일을 할 때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그 정도는 해야만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소개하는 요셉의 모습은 죽어 뼈가 되어서라도 자신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복을 받는다는 믿음을 심어 준 것을 최고의 사명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직분과 사명을, 크고 작음, 화려하고 초라함에에 상관없이 감당하고 있습니까? 뼈가 되어서라도 사명 감당할 마음을 갖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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