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끝에는 예수님을 찾아온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메시아로서의 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예수님 앞에, 사적인 어머니와 형제들이 찻아 온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은 어머니와 형제들을 맞이하지 않고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와 자매요 어머니 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예수님은 어머니와 형제도 포기하고 메시아의 삶을 사셨고, 우리도 부모 형제를 버리고 예수님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부모 형제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혈연(血緣)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혈연이 거의 무의미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친구, 직장동료, 동호회 회원들이 더 가까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까운 관계를 만드는 원천적인 요소는 [혈연]이 아니라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사회는 가족 구성원과 소통하면서 부모의 뜻에 순종하고, 어른의 뜻에 순종하고, 형, 누나, 언니의 뜻에 순종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혈연지간의 유대는 강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가족, 친지보다 이익을 주고받는 친구, 직장동료, 동호회 회원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세워 놓고 서로 순종하기 때문에 혈연지간 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부모, 형제라도 하나님의 뜻에 원칙을 두고 서로 순종하지 않으면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하신 것이지, 가족을 버리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의 하나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원칙을 두고 서로가 양보하고 순종할 때, 우리는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관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지 못하고 서로가 양보하지 않을 때 교회는 동호회보다 못한 공동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순종으로 가족 같은 공동체를 만드는 주세움교회가 됩시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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