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은 독립된 체계를 가지고 있는 한 언어 내에서의 변종을 말합니다. 방언에는 [사회 방언]과 [지역 방언]이 있습니다. [사회 방언]은 연령이나 종교 등의 사회적인 이유로 나뉘는 방언을 뜻하고, [지역 방언]은 사는 지역에 따라 나뉘는 방언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여섯 지역 방언권으로 묶일 수 있는데 동남(경상도)방언, 동북(함경도)방언, 서남(전라도)방언, 서북(평안도)방언, 중부(경기, 충청, 강원)방언, 제주방언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방언을 나누는 기준을 첫째는 어휘, 둘째는 음운(소리의 길이(서부방언), 말의 세기(동부방언)), 셋째는 문법분야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대중 매체와 표준어 교육 등의 영향으로 지역의 특색을 담은 전통 사투리와 방언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언에는 표준어에는 없는 감정과 의미를 뜻하는 단어가 많기 때문에 방언을 보존하는 것은 문화 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독교에도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 강림 때의 방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언은 타국인들 사이에 모국어로 말하고 모국어로 들리는 신기한 언어로, 한시적으로 존재했던 방언이고, 오늘날 듣는 사람은커녕 말하는 자신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주의적인 방언과는 다른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는 더 이상 방언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에 존재하는 사회적 방언이 있는데 그것은 [덕을 세우는 선한 말]입니다.(엡4:29) 하나님의 백성, 천국시민 된 저와 여러분들이 쓰지 말아야 할 언어는 욕, 정죄, 비판과 같은 [더러운 말]입니다. 이 더러운 말은 세상 사람들의 사회 방언인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사회 방언은 사랑, 용서, 신뢰, 칭찬과 같은 [덕을 세우는 말]인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지역 방언입니다. 수십 년 간 신앙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세상의 더러운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십니까? 오늘부터 하나님의 백성다운 덕을 세우는 말을 연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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