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성경, 그리고 성화
-갈라디아서 3장 15-22절
1. 도입
이 시대의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를 시력과 관련시켜 생각해 보면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 불신자들은 어떤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영적으로는 [소경]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어떤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약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 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약시라고 폄하하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을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세상 것에 너무 눈을 밝히다 보니 정작 눈이 나빠지고 만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영적으로 건강한 눈을 소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빛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영적인 여과장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영적인 여과장치란 무엇일까? 그 대상이 바로 우리가 오늘 묵상해 볼 대상이다.
2. 본문
1)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15절)
15절 말씀에 ‘사람의 언약이라 할 지라도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탄생하면서부터 만물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과 선악과를 먹지 않겠다는 약속을 맺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 이 약속은 인간측에서 실수를 하여 폐기되고 만다. 그 걸과 인간들은 농사를 지어야만하고, 아기를 낳을 때 아파야 하며, 무엇보다도 반드시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측에서 잘못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원인제공을 하신 것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약속이 인간에 의해 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측에서 절대로 깰 수 없는 언약인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은혜언약]을 우리와 맺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
그렇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절대로 파기되거나 어기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오늘 날 하나님과의 언약이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책이 무엇인가? 바로 성경말씀이다. 이 성경말씀은 한구절 한구절 모두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졌고 일점 일획도 문제가 없다. 이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으며, 성령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말씀에 의지해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법률가를 전도하고자 오랜 세월 기도했던 목사님께서 그 법률가를 만나서 집회에 한번만 나올 것을 권했다. 그 법률가는 마지못해 승낙했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회에 참석했던 법률가가 말씀 끝에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었다. 너무 놀랍기도 하고 자기 설교를 듣고 변화된 것 같아 우쭐대던 목사님께서 법률가에게 물었다. “제 설교에 은혜 많이 받으셨나 봅니다.”라고 하니까, 법률가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저는 목사님 설교보다, 목사님 설교 중에 말씀하신 성경구절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아무리 거창한 말로 포장된 설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빠지면, 김빠진 콜라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좀 어눌하고 부족한 설교라 할지라도 적절하고 명확한 성경구절과 함께 전달되어질 때에는 바위를 자를 정도로 위력적인 말씀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성경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고,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당신은 믿는가? 믿고 행하는가? 행한 후 능력을 경험했는가?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진지하게 말씀의 능력에 대해 생각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과정이 전혀 없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2) 율법의 참 의미와 성화 (19절)
19절 말씀에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율법의 기능은 죄를 발견케 하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인식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율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어기라고 있는 것이 바른 해석일 지도 모르겠다. 율법을 완전히 지킬 사람도 없을뿐더러, 율법을 어기면서 인간의 나약함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율법은 총 613개로 되어 있다. 이 많은 구약의 율법들은 19절 하반부에서 밝히고 있듯이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 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약속하신 자손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즉 율법의 완성자 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율법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하고 어떻게 제사해야 죄가 사해지고, 무슨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런 구약율법들은 더 이상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율법이 무가치 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죄의 악한 습관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이나 그 시대 문화와 관련된 일부 율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율법은 여전히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 주고, 우리를 하나님처럼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약시]로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이 흘려주신 보혈의 공로만을 강조하다 보니, 율법을 아주 무가치 하고 구시대적인 유물로 치부하고 율법에서 무조건 자유하려고만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말씀 속에서 죄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도 “그것을 반듯이 지켜야 한다는 것은 율법주의적인 발상이야”라고 정죄하면서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 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고, 우리를 예수님처럼 되게 하는 [성화]의 단계에 이르게 하는 안내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얻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구원 얻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식탁에 음식만 쳐다보고 앉아 음식 냄새에 만족하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천국에는 들어갔으나 천국잔치에는 참여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다섯처녀나 한달란트 받은 종의 비유처럼 천국에서의 상급과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느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요, 하늘의 상급을 쌓아가는 길인 것이다. 통장은 있으나 잔고가 없는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집은 있으나 살림은 없는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데......참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3. 결론
링컨이 받은 유산은 낡은 성경 한권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 다음으로 많은 사람을 자유로 인도하는 길에 인도자가 되어 흑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 낡은 성경 한권, 무엇이 그리 대단하길래..... 아무리 좋은 전자제품이 있어도 동력을 제공하는 플러그를 꽂아야지 작동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무리 영적으로 위대한 인물들로 만들어 놓으셨더라도, 무한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접속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플러그를 꽂는 것,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전자제품을 작동시키는 큰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성경도 얇은 종이가 모여진 책에 불과한 것 같지만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에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성경이라는 것을 대부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안 읽히고 있는 책도 성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만약 당신의 성경이 깨끗하다면 당신의 마음은 더러워져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성경은 가만히 있으면 그저 책일 뿐이다. 그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을 때 유의할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성경을 읽는 자세를 단정히 하기를 바란다. 마음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자세가 결정되고 자세가 어떠하느냐에 따라 능률이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공부나 운동에서 충분히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의 성경 읽는 자세는 어떠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무릎은 꿇지 않더라도 바른 자세로 성경을 대하는 것이 초석일 것이다.
그리고, 신약의 4복음서를 시작으로 해서 점점 구약으로 넘어가길 바란다. 처음부터 은혜를 받으려 하거나 모두 이해하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서당공부를 생각해 보라. 아이들이 그 어려운 천자문을 이해하면서 다 깨달으려고 읽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한번 읽고 두반 읽고 세 번 읽으니 그 뜻이 이해가 되고 암기가 되는 것이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초 스피드 시대를 살다보니 한번에 이해되지 않고 도움되지 않는 일에 대해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계속, 진지하게 읽어나가다 보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세상 그 어떤 책 보다 우리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읽어 가면서 은혜 받은 구절에는 표시를 하기도 하고, 궁금한 점들은 모아서 주일날에 교역자들에게 물어가면서 읽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성경을 읽어나가다 보면, 처음에는 별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읽지 않는 사람과 조금씩 조금씩 차이가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높은 산에서 영적인 세상을 굽어 볼 날이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율법은 완성된 것이지 폐기된 것이 아니다. 그 율법이 녹아진 것이 성경이고 우리는 성경을 지킴으로 예수님의 모습에 가까워 지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가? 믿는다면 믿음으로 받고 삶으로 실천하길 바란다. 성령의 인도함이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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