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문] 참된 복음

주전담백 主前淡白 2005. 5. 28. 06:23

 

 

 

 

 

참된 복음

본문 : 갈라디아서 1:1-10

1. 머리말

 이른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 주님의 전에 나온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부터 새벽에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 [참된 복음]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교회에 보낸 서신 서 중, 3번째 서신서로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는 현재 터키 영토 내에 있고, 해발 900m의 고원지대로, 바울이 두차례나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을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유대주의자들이 잠입해서 예수님이 새운 사도들의 권위를 부정하고, 율법과 할례를 통해 구원 얻는 다는 거짓된 복음으로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혼란을 겪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에 참된 복음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노예가 아닌 은혜안에서 자유자임을 선포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이 갈라디아서입니다.

 오늘부터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 은연 중에 변질되어 가고 있는 우리들이 지닌 복음을 진단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매주 출석하고 십일조도 하고 봉사도 하고 기도와 말씀묵상도 하지만 도무지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도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참된 복음을 소유한 우리가 왜 자꾸 흔들리고, 실패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의 사도된 바울
 사도란 어떤 사람 일까요?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apostolos)'에서 유래하는데, 이 말은 '보냄을 받은 자' '대리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일반적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의 행적을 경험하고 그 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사도라고 하고, 예수님이 세우신 12제자를 사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님과 동행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이 세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직의 의심하는 목소리가 끊임 없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1절에서 여러 문장을 사용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께서 자신에게 직접 복음 증거를 위임하셨기 때문에 자신은 사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자의 시작은 예수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점을 항상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절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을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값 없이 천국 가게 되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며 그 기쁨과 감사에 힘입어 살아가는 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가정에서 혼자 있는 은밀한 공간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가게 되었다는 감사의 마음을 항상 간직해야 만 합니다.

3. 변질된 복음

 지금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는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말에 속아 복음의 참 뜻을 잃어 버려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 되심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복음이 아닌, 율법과 할례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유대주의자들의 말에 속아 넘어 가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바울은 꾸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우리는 그냥 넘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변질된 복음으로 전도하고 성도를 가르치고 교회를 운영해 나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복음만 전하고, 말씀과 기도로 성도를 양육하며 참되고 헌신된 교제와 구제로 성도와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데, 세상의 방법과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해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습관이 성도들에게 고스란이 전이되어, 말씀으로 영혼을 살찌우고,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참된 복음이 아닌, 권력과 친분과 재물로 영혼을 살찌우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습관에 젓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기도하기 전에 인간적인 방법들을 궁리하고  온갖 노력을 해 보다가 안되니까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4. 사람에게 좋게 하랴?

 바울은 참된 복음에서 떠나 세상의 방법과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10절 말씀에 "내가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요즘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썩었다.'라고 비판합니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곳이 아니다라고 단정지어 버립니다. 그 말에 우리는 쉽게 동조하며 싸잡아 교회를 비난하는데 동참하게 되어집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세상은 지금껏 교회를 비난만 해 왔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칭찬한 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그들의 비난에 속아 그들에게 비난 받지 않기 위해, 그 비난의 원인들만 제거하려고 동분서주하게 되어 집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 점점 물들어 가기 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교회가 칭찬 받을 만 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비난 때문에 교회를 고치고 비난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복음 앞에 우리의 모습이 바른지 그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결국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 처럼 세상의 방식과 기준에 맞는 거짓된 복음으로 교회를 오염 시키고 말 것입니다.

5. 맺음말

 오늘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의 말씀 속에서 세가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부름 받았음을 강조하며 그 점을 잊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다짐하고 있음을 우리는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종이 되라고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할 때에는 참된 복음으로 살 것을 다짐하지만 막상 현실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무너지기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 되지 않는 일이 없음을 명심합시다. 조급하게 서두를 것을 요구하는 마귀의 속임수에 속지 맙시다.

 언제나 참된 복음,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고,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기쁨과 감사 속에서, 이 세상의 일에 연연하지 않으며,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과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러할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