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라
1.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라.
아모스 5장 14절 말씀입니다. 토요일(4/6) Q.T. 본문이었지요. 요즘 들어 계속 무서운 말씀만 묵상하게 됩니다. 화요일에는 "죄로 인해 벌을 돌이키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시고, 수요일에는 "너희(믿는 자)만 알았나니, 너희의 배신, 모든 죄악을 보응(징계)하리라", 목요일에는 "우리가 고난을 하나님께 받아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금요일에는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라"말씀하시면서, 21절부터는 내 절기를 미워한 너희의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예배를 남겨둔 저에게 말이지요.
이것이 웬 날벼락일까요? 그렇게 사랑으로만 다가왔던 하나님께서,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일주일 내내 하시다니...... 그 만큼 제가 죄악가운데 있거나, 세상의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겁주시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일주일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경고의 메시지가 우선 저에게 절실히 필요했고, 이 세상을 향해서도 같이 나눠야 할 내용인 것 같아서 나누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2. 노골적으로.....
현대의 모든 문화적 현상을 [노골(露骨)]이란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골"이란 "자기의 감정이나 욕망 따위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일"을 말하는 명사입니다. 원시시대 때부터 19세기까지는 "독재와 억압의 시대"여서 일부 지배층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의사를 누구나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골]이란 단어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서면서는 "책임과 권리가 공존하는 시대"여서 적당히 숨기면서 표현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포스트 모더니즘(상대주의)"은 "책임은 없고 권리만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절대적인 힘이나 진리가 사라지고, 모두가 옳은 사회가 되었고, 책임지지 못할 말과 행동을 숨김없이 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성과 욕망에 아주 솔직하고 적극적이며, 숨기지 않습니다.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거침없이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의 거짓말과 게으름은 지혜로운 것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정직과 성실보다 돈과 안락함이 인기순위 1위에 오른 지 이미 오래 전입니다. 여성들은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부로 결혼을 원시적인 인습으로 치부하고, 가정과 자녀에게서 벗어나 마음껏 성형을 하고, 남편이 아닌 애인을 만나며, 언제든지 이혼을 할 준비를 하고 결혼을 합니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를 본 받아, 참고 견디는 것 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 본능적으로 매진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10대 강도, 강간, 성매매, 학교조직폭력 등을 죄의식 없이 즐깁니다. 방송, 신문, 정치, 교육 모든 전반의 화두가 '정직, 성실, 이웃사랑, 정의' 등과 같은 하나님의 진리에서, '돈'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신년 인사가 "건강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 되라"는 인사에서 "올해도 돈 많이 벌어라"는 인사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이에 편승한 영화, 음악, TV 등의 문화는 더 노골적인, 더 원색적인, 더 파격적인 현상을 소개하고, 대중은 이를 따라 갑니다.
21세기는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생각하기 보다, "Just feeling"이란 광고 카피처럼 '사단'이라는 '감성공장'에서 주는 감성이 지시하는 데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저명하고 학식 있고, 인정받는 집단이나 국가가 "하나님은 죽었다!" 내지, "신은 없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은 직장 선택에 제약, 사회활동, 사회이익으로부터의 제약을 받는 시대가 오는 것만 남았습니다. 아니 직업선택의 제약은 이미 시작되었죠.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지적하는 마지막 날이 되는 것이지요. 이제 진정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3. 겨자씨 만한 믿음도, 단 한 명의 의인도 없는 시대
제가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렇습니다. 너무 부정적이었군요. 세상은 언제나 위의 내용과 같이 타락했고, 부정했었으니 그렇게 신경쓸 것이 못되지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들입니다. 나와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 하나님이 심판과 축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지요.
원시로부터 20세기까지 세상은, 오늘날과 같이 전체의 노골적인 타락은 아닐 지라도, 일부 귀족층의 타락은 오늘날과 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타락의 와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과 같이 여기는 믿음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들어 세상의 씨를 보존하셨고,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시면서 믿음의 줄기를 이어 가셨으며,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전 세계의 타락과 로마의 타락가운데 [카타콤의 신실한 자녀들]이 로마 귀족과 결혼함을 통해 세계 대 제국 '로마'가 복음화 되게 되었고, 로마교회가 타락해갈 무렵에 [루터와 칼뱅]을 통해 순수 신앙을 구별하셨습니다. 독일과 유럽이 자유주의신학으로 물들어 갈 때에도 여러 정통,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을 가진 [신학자들과 목회자, 성도]들을 통해 말씀의 순수성과 믿음의 자녀는 계속 유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21세기 교회는 다른 것 같습니다.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자유주의 신학'이 보편화되어, 서구에서는 이미 "성육신, 동정녀 탄생, 인간의 속죄, 오병이어, 예수의 부활" 등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합법화하여 [동성애자 교회]가 생기고 있고, 교회에서 '마약'을 판매합니다. 서양교회는 그렇다 치고 우리 한국교회는 어떠합니까? [강단]의 말씀의 90%는 성경이 아닌 사회이슈와 성도들의 고민상담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서전을 쓰듯 과거의 업적을 늘어놓아 자신을 우상화합니다. 목회자나 교회에서 [앞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은밀한 곳에서 자신만의 범죄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면서 주일이면 버젓이 사람과 교회 앞에 서서 교회를 이끌어 나갑니다. 선교, 사회봉사, 문화행사 등의 [교회행사]들은 '하나님을 위해'라는 좋은 껍데기 속에, '자기자랑, 금전적 이익, 자기 즐거움'으로 채워 넣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시작된 [C.C.M.과 여러 찬양집회]들은 가사의 묵상을 통한 다짐과 실천은 쏙 빠지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위선적인 고백 하에 책임지지 못할, 실천하지 못할 말들만 늘어놓고, 멜로디와 사운드, 사람들의 인정과 부러움에 심취되어 세상 콘서트랑 다를 바가 없어졌습니다. 교회 내에서 공공연하게 [서로를 비방]하고, 약점을 들추는 일이 허다합니다. 목사는 집사를 욕하고 집사는 목사를 욕하면서 탄핵하는 세상입니다. 성도들 간에도 [그룹이 나눠져서] 전문직 성도들, 같은 나이의 성도들, 같은 수준의 부를 지닌 성도들만 몰려다닙니다. 그 외에의 성도들은 교회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다시 사회로 나아갑니다.
이제 성도들도 세상과 다를 바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주일]이라도 직장 일, 결혼식, 집안 일로 인해 교회를 결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목회자들도 그런 일로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용인해 줍니다. [직장을 선택]하거나 학교를 진학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생각한다는 껍데기 속에 '안락한 생활, 많은 돈, 사람의 인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습니다. 주일에는 성도,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이었다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사기치고 큰소리 내며 싸우는 '장사꾼', 1000원이라도 더 벌려고 선심 쓰듯 거짓말하는 '세일즈맨', 세상사람들과 같이 적당히, 적당히 근무하고 뇌물 주고, 뇌물 받는 '회사원' '공무원', 공부보다 노는 것, 돈 벌어 멎진 애인을 만나는 것, 취업을 위해 교회 1년을 기꺼이 쉬어주는 '대학생', 교회생활이 조금 소홀해 지더라도 안정되고 돈 많이 벌고 인정받는 직업을 찾는 '취업 준비생' 등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보십니다. 세상이야 어찌 되었건 이러한 우리는 보고 계십니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한탄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과연 대한민국에 진정한 믿음의 의인이 있을까요?
4. 하나님이 없다고 하기 전에
위에 열거한 이야기들이 너무 부정적인 면만을 보았다고 저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대해 우리는 어떨까요?
99%면 된다고 말하는 마귀의 술책에서 [100%의 정결]을 자신하는지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매일 매일 범하는 숨겨준 [자범죄]에 대해 자유로운 지에 대해..... 마귀는, 교회 가는 것, 하나님의 일 하는 것까지는 양보하더라도 우리가 [정결한 그릇이 되는 것] 만은 절대 용인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그 정도는 누구나 하는 거니까 괜찮아.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가겠니?'라고 속삭이고 있고, 우리는 거기에 속아 넘어 갑니다. 혼자 은밀한 곳에 있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완전한지, 정결한지.......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모스의 경고'를 저는 가슴 깊이 새기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지체를 미워하고 세상에 찌든 몸으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계실는지 모를 일립니다. 이제 주님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랑비에 옷 젓는지 모른다.'는 속담처럼 점점 세상에 젖어 만 가는 나의 육신을 지구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떠오르는 '하나님의 태양'에 말려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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