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문] 너희도 가려느냐?

주전담백 主前淡白 2006. 5. 24. 06:32

 

 

 

너희도 가려느냐?

 

 

▪본문 : 요한복음 6장 41-71


1. 도입 : 죽어서 나오세요.


우리가 속한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교단은, 해방 후, 일본 국가 종교인 [신사]를 섬기지 않았던 목사님과 신도들도 모여서 만든 교단입니다. 당시 일제 말기, 1930년 경에, 일본은 [중국본토침략]과 [태평양전쟁]을 감행합니다. 그래서, 내부의 불순한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선에 조선인 학교를 문닫게 하고, 일본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게 하며,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여 일본 천왕을 섬기는 신사에 가서 절하게 하고, 예배 드리기 전에, 천왕에게 먼저 절하고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이 때, 기독교인들은 양분되게 되는데, 이런 행사를 종교행사로만 보고, 허용하자는 부류와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절대로 안된다고 반대하는 부류로 나눠지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일본정부의 조직적인 협박과 회유에 사람들이 넘어가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수만 남게 되어 집니다. 그 사람들이 모인 교단이 바로 우리 장로교 고신교단인 것입니다.

우리교단의 어른 중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돌아가신 주기철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진해 웅동출생으로 평양신학교를 나오시고,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목회사역을 하시다가 일본경찰에 잡혀가게 됩니다. 일본경찰의 모진 협박과 고문에도 넘어가지 않던 목사님께 큰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의 부인과 둘째아들이 보는 앞에서 고문을 당하시게 된 것입니다. 일본 경찰은 목사님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반대편으로 민 다음, 다시 돌아올 때마다 몽둥이로 치는 형식의 고문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심한 고문 후 기절하시게 되는데, 다시 깨어보니 아내와 둘째아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아내가 “제발, 경찰 말 듣고 집으로 갑시다”라고 말 할 줄 알았는데 “목사님, 순교하지 않고서는 이 감옥 담을 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때 주기철 목사님은 아내가 집으로 가자고 말했으면 그렇게 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그 결의에 찬 말에 “알았소. 하지만 어머니가 보고 싶구려. 미음도 먹고 싶고....”라고 마음 약한 말씀을 하시고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1944년 4월 21일 금요일 밤 9시에 4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내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붙잡으소서"하시고 웃으며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우리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했습니다. 가족보다도 자신의 목숨보다도 사랑했습니다. 머리 한번 숙이는 것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은 주기철 목사님 같은 사람들이 아닌, 신사참배를 종교행사로 가벼이 보고, 우상 앞에 절했던 많은 배신자들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무리들 가운데서, 당당히 예수님을 사랑하는 말을 하는 한 사람이 나오게 됩니다. 이 내용을 통해, 나는 배신자인지, 순교자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2. 전개

1) 본문연구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에서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을 시작으로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살펴본, 6장 전반부의 [오병이어]사건과 6장 16절에 나오는 [물 위를 걸으시는 사건] 등, 인간으로는 행할 수 없는 많은 이적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육체적 욕망을 채워줄 선지자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2절에서 40절 까지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 자신을 썩을 양식, 육체의 양식, 표적을 베푸는 자로만 보지 말고, 생명의 떡, 구원자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전혀 근거 없는 말도 아니고, 그들이 생전에 경험치 못할 일도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41절 이하 말씀을 통해 확인 해 볼 수 있습니다.

42절에 유대인들이 수근거려 말하기를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항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52절에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화를 내며 반문합니다. 지금 이 유대인들은, 1차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지금 비유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것을 탓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들의 태도입니다. 아들이 병이 든 왕의 신하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없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하였지만-아들이 죽기 전에 가버나움에 가셔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 아들을 살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던지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필요가 다 채워진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로만 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혀 이해하려고 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계속 비유로 설명하시지만, 이들은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있은 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겉에는 예수님을 특별히 따랐던 제자들만이 남게 됩니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70여명의 제자들이 따랐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들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 또한 이상하게 변합니다. 이들도,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자,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렵다고 61절에서 수근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66절에 보면 많은 자들이 물러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67절 말씀을 통해, 이제 남은 자들은 12제자와 몇몇 제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겐 군중심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곁에서 점점 떠나가고 있는 판국이라 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함께 떠나기 마련입니다. 이 때에, 한 제자가 당당히 일어나 외칩니다. 68절 말씀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용기있는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가 배신하고 떠나가는 판국에, 홀로 일어나 예수님을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할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베드로의 놀라운 신앙고백과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들을 통해, 베드로를 으뜸가는 제자로 세우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에게 더이상 바랄 것이 없어지자, 떠나버리는 그런 사람입니까? 끝까지 예수님의 곁에 남아 있는 베드로와 같은 사람 입니까?


2) 받은 은혜

   (1) 배신이 일반화된 현대인들

요즘은 배신이 일반화 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배신’과 ‘기회’라는 단어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신이란 “믿음직스러운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기회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상황이나 여건이 딱 맞는 시간이나 상황”을 말합니다. 배신과 기회의 차이점은, 배신은 상황과 여건이 옳지 못한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기회는 모든 상황과 여건이 문제가 없을 때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주위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준 사람을 버리면서 까지 선택하는 것을 기회라는 말로 합리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 10만원만 더 주면, 과감히 직장을 옮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직장 동료란 말은 의미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지금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보다 한가지 이상 더 나은 조건이 나타나면 양다리를 걸치거나 과감히 딴 사랑을 찾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배신이 일반화 된 시대에, 주기철 목사님과 베드로는 좀 낯선 사람, 좀 나쁘게 표현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우리 마음 어딘가에 있는 선한 양심은 이렇게 숭고한 이상과 목표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사람을 더 존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 교회에 침투한 배신의 조짐들

교회는,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영적인 가치가 있는 것 만을 주로 줍니다. 물론, 세상의 즐거움도 교회에서 누릴 수 있지만, 그런 것은 교회에서 보다는 세상 속에서 더 많이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계속, 세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만남, 식사, 운동, 이성교제, 여행 등만 찾는다면, 조금씩 교회생활은 실증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나오는 많은 유대인들과 제자들처럼, 자신들의 기대했던 것이 교회에서 다 채워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다른 교회로 옮기거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세상으로 다시금 발걸음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예수님과의 영적 교제가 그리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애써 누르고, 마귀가 시키는데로 세상 속에서, 이 땅의 낙만을 누리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배신하지 않으려면?

이런 인생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인생입니까? 이런 인생을 얻기 위해 교회에 나오고 계십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여러분이 결단하지 못하는 것,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예수님을 위해 베드로 처럼 일어나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 같은, 베드로 같은 결단력 있는 모습은 쉽게 나오지 않는 행동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순교 당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한 고통 속에서 순교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 속에서 순교 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즉, 순교 당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소에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군인들이 수도 없이 훈련하는 까닭은 실제로 전쟁이 일어 났을 때,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평소에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평소에 우리의 머리 속에, 주님의 말씀을 가득이 채워 넣기 위해 성경을 읽고 외워야 합니다. 평소에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고 그 기적을 채험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된 자에게는 세상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이 점점 줄어들고, 주님을 향한 기대와 열망이 커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유대인들과 같이 배신하는 인생입니까?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죽기까지 따르는 인생입니까?


3. 맺음말

15세기 초 프랑스의 한 시골 여인 잔다르크는 적군으로부터 조국을 구해낸 구국의 여성으로 불립니다. 그녀가 지녔던 신성한 칼, 성결한 깃발, 그리고 사명에 대한 신념으로 인해 그녀는 목전의 적군을 전멸시켰습니다. 그녀는 왕, 정치가, 대통령도 해낼 수 없었던 불타는 열심으로 온 프랑스 군대를 전율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한번은 그녀가 자신의 참모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군대가 저 성벽을 넘도록 지휘할 작정입니다." 그러자 "한 사람도 당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오"라고 그 장군이 말했습니다. 다시 잔다르크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따라오는지 보려고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헌신을 했기에 잔다르크는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된 것입니다.

그녀는 영국군의 침입으로부터 프랑스를 성공적으로 구했지만 영국군의 손에 잡히는 운명이 되었습다. 결국 19세의 그녀가 화형을 당하는 그 순간에 그녀에게 마지막 생존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조국을 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유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화형을 당하기로 선택하였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남자는 자기의 신념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모든 여자도 자기의 신념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때때로 사람들은 거의 아무 것도 믿지 않거나 아예 아무 것도 믿지를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거의 혹은 전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해 생명을 내어준다. 인생이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생을 살며 그렇게 그 생은 지나간다. 그러나 신념 없는 생은 죽음보다 더 비참한 것이며, 젊어서 죽는 것보다 더더욱 비참하다."

잔다르크는 자신을 초월하는 목적을 지녔기 때문에 생존에 매달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니까? 아무 목적 없이, 인생을 마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분이라는 것을 믿으신다면, 그 믿음에 걸맞는 인생의 목적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적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여러분들을, 우리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