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메시지와 메신저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3. 10. 14. 07:30

마라톤의 유래를 아십니까? 기원전 490년 그리스 마라톤 근처의 전쟁터에서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그리스의 승전보를 알리려 아테네까지 달려간 병사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 바로 마라톤대회입니다. 당시 1만 명의 아테네군과 10만 명의 페르시아군은 동북방에서 약 40km 떨어진 마라톤 평원에서 대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요. 이 전투에서 아테네군은 격전 끝에 병력 10만 대군에 달하는 페르시아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수십 킬로미터를 뛰어간 페이디피데스는 결국 아테네에 도착했고, 수많은 시민 앞에서 기뻐하라, 우리가 이겼노라!”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이 역사적인 달리기를 끝내고 페이디피데스는 쓰러져 죽었고 그가 달린 거리는 마라톤의 선례가 되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승리의 소식을 무슨 근거로 믿은 것일까요? 메시지가 믿을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달려와 메시지를 남기고 죽은 [메신저] 페이디피데스 때문에 믿게 된 것입니다. 메시지는 메신저 없이는 전달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8에는 세례요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례요한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3:7에는 세례 받으러 나온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독설을 퍼부었지만, 그들은 세례요한을 죽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자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아가 오셨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고, 유대인들에게 퍼부은 독설은 모독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신뢰하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메신저 세례요한 때문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먼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돌꿀만을 먹고 살았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옛날에는 메시지의 근거나 정확성보다, 메신저의 신뢰도에 따라 상대방의 말을 듣고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리 근거를 제시해도 메신저의 신뢰가 떨어진 세상이기에 쉽게 믿지 않아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확실하지만 메신저 된 우리가 신뢰를 떨어뜨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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