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4~5에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시기 일주일 전에 친구 나사로의 집에서 식사 하실 때, 마리아가 나와 예수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붓고 자신은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가롯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것을 허비하고 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게 하기 위해 한 행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행동 보고 다른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다르게 보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셨고, 가롯유다는 "자신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의 생각을 앞세워 상황을 판단할 때, 내 기분이 좋으면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 기분이 나쁘면 모든 일을 나쁘게 판단하고 불평불만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주님의 시선으로 우리의 일을 바라보고 판단해야만 기쁘게 되고,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시선으로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바라보아서 감사로 해석하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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