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만남의 연속성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4. 12. 6. 17:56

 

요한복음 3:9~10에 "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유대인 중에 부자요 권력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만남입니까? 그런데 이 만남에서 니고데모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니고데모의 사람을 만나는 태도가, "자기 중심적"이고 "일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태도로 예수님을 만났으니, 예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변화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불신자들에 비해 부드럽고 공감하고 수용적인 만남의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평소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소 자기 중심적이고 일방적인 만남을 하시는 분이라면, 예수님과도 니고데모처럼 잘못된 만남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만남 속에 열매가 없기 때문에 교회를 다녀도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정채봉 시인의 에세이 "만남"에는 다섯 가지 만남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만난 것이 후회 되는 [생선] 같은 만남, 의미 없는 [지우개] 같은 만남, 쓸모없으면 버리는 [건전지] 같은 만남, 금방 시들어 버리는 [꽃]과 같은 만남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만남은 상대의 곁에 머물다가 필요를 채워 주는 [손수건]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순종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만남을 연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도 손수건 같은 만남을 하게 되고, 그 결과 만나는 사람이 늘어나고 열매 맺는 만남을 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자신의 만남의 습관을 돌아보고 수용적이고 변화되는 손수건 같은 만남을 통해, 만남이 기회들을 더 늘려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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