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巨大談論, metadiscourse)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상위의", 더 높은 수준의", "포괄적 단계의" 정도의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접두사인 meta와 ‘담론’이라는 어휘의 유래가 된 라틴어의 discursus(뛰어다니다)가 결합해 만들어진 단어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뜻합니다. 거대담론이 무조건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소한 이야기나 묘사에 사로잡혀 싸우고 남 탓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거대담론은 넓은 시각에서 문제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갖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별히 사탄의 공격에 노출되어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거대담론은 고난과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문제에서 빠져 나오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욥기 1:21에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거대담론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일반적인 거대담론]으로, 인간은 원래부터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태어났다는 거대담론입니다. 이 거대담론에 주목하면, 지금 당장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여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일상생활의 장애를 겪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적인 거대담론]으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현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라는 거대담론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거대담론에 주목한 욥은, 그 많은 재산과 열명의 자녀를 잃었지만 누군가와 싸우거나, 남 탓 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고난과 문제에서 잘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대담론이 우리에게 주는 도움인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과거보다 더 많은 정신적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더 연구하고 배우고 조심해도 정신적인 문제의 종류와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현대의 정신적 문제의 근원은 미시적(微視的) 상황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과거에 우리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였으나 이겨내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미시적인 상황에 사로잡히지 마시고, 거대담론을 통해 문제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최고와 최선 (0) | 2025.01.31 |
---|---|
[칼럼] 장기 프로젝트 (0) | 2025.01.24 |
[칼럼] 어떻게 일해야 할까? (0) | 2025.01.24 |
[칼럼] 성도의 근본 (0) | 2025.01.24 |
[칼럼] 짐이 아닌 짐꾼 (0) | 2025.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