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속한 사람
(the heavenly Man)
1. 저 자 : 윈(雲) 형제
2. 출판사 : 홍성사
1. 책소개
중국은 일찍이 우리보다 선교사를 먼저 받아들였으나 1949년 공산정부가 세워진 후 1958년까지 모든 교회의 문을 닫아 걸어 버렸다. 1970년에 중국을 방문한 미국 기독교 대표단도 중국에는 한명의 그리스도인도 남아 있지 않다라고 보고 했다. 하지만, 그 힘든 곳에 숨어서 '가정교회'란 형태로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복음을 지키고,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대표에 해당하는 사람이 바로 윈형제 인 것이다. 그를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당한 자 이기 때문이다.
본명 리우전잉(劉陳英). 1958년 중국 허난성 난양 현의 한 농촌에서 태어나 1974년 부친의 기적적인 암 치유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늘의 사람'(Heavenly Man)은 그가 중국 정부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30회 이상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얻은 이름이다. 정부의 기독교 정책과 타협하지 않고 중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던 그는, 삼자애국운동에 가입하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1984년 처음으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힘든 투옥의 시기를 겪는다. 감옥 안에서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금식하기를 결심하고 7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한다. 1991년, 역시 같은 이유로 2차 투옥되었으나, 출소 후 중국 가정교회 연합운동을 일으켜 1996년 10월 '시님 연합'을 창립하였다가 1997년 3월에 다시 체포된다. 두 달 후에 기적적으로 탈옥한 그는 세계를 향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의지하여 그 해 9월 독일로 탈출한다. 현재 독일에 근거를 두고 전 세계를 순회하며 중국 교회의 선교 비전인 '백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족으로 아내 덜링과 두 남매가 있다.
이 책은 399페이지의 장서이다. 하지만 읽어 본 사람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갈망하는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만 바라 볼 때,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응답해 주시고, 기적과 환상도 보여 주시는 것들을 우리는 바라고 있다. 그리고, 고난의 그 순간이 고난이 아닌, 성령의 임재와 예수와 교제하는 순간임을 고백하는 윈형제의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었으면 하는 마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윈 형제와 다른 것이 있다. 너무나도 안락한 생활과 많은 기회들이 그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의 안락함과 기회들을 뒤로하고 윈 형제와 같이 주님만 바라보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데 전심전력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2. 내용소개
1) 출생과 성장
윈 형제는 1958년 중국 허난 성 남부 난양 현 리우라오좡이라는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1940년대 서양 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받았다. 하지만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선교사들은 추방당하고 목사들은 투옥되게 되면서 복음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윈의 아버지인 남편이 심한 천식이 폐암에서 위까지 전이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돈을 많이 써서 집안 형편까지 어려워져서 너무나도 힘든 어느 날, 꿈속에서 주님은 윈의 어머니를 만나 주셨고, 그 즉시 가족들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예수님,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예수님,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를 밤새도록 반복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이 임해서 일주일이 채 안되어 완쾌된 것이다.
그 일 이후로 윈의 가족들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느꼈다. 그 첫 번째로, 자신의 친지들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죽은 윈의 아버지의 문상으로 여기고 모여 든 사람들은 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들으며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윈의 어머니는 그 마을 최초의 설교자가 되었고, 중국 가정교회에 큰 업적은 남기는 사람이 되었다.
2) 성경을 주세요.
어머니를 통해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지혜를 다 배운 윈은 성경을 읽고 싶은 열망을 느꼈다. 어머니의 소개로 문화혁명 전에 목사로 일했던 노 목사를 찾아가 성경을 한번만이라도 보게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노 목사는 "성경은 하늘의 책이란다. 네가 그것을 원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란 말에 윈은 1개월 이상했다. 하지만 성경은 주어지지 않았고, 윈은 다시 그 노 목사를 찾아갔다. 그러자 노목사는 "정 그렇다면 무릎꿇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금식하며 울부짖어야 한다."라고 권면했다. 그 권면에 의지해 윈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굶고 저녁에 쌀밥 한 그릇만 먹으며 100일을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그에게 환상이 보였는데, 노인이 떡을 싼 붉은 봉지를 열어 지금 바로 먹으라며 떡을 줘서 먹었는데 그것이 성경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새벽에 두 사람이 붉은 봉지를 주었고, 그 봉지 안에는 그토록 바라던 성경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노 목사가 3개월 쯤 전에 하나님이, 자신이 옛날에 숨겨놓은 성경을 한 청년에게 주라고 하며 윈의 집을 보여 주셨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신도 두 사람을 시켜 성경을 전해주게 한 것이었다.
3) 성경을 외워 설교하는 전도자
윈은 성경을 밤낮으로 읽었고, 급기야 성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사이에, 꿈속에서 환상을 보았는데 '윈, 내가 너를 나의 증인으로 서쪽과 남쪽으로 보내겠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에 순종하여 윈은 서쪽의 가오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 마을에서도 복음을 듣기 위해 사흘동안 금식했다는 것이다. 마을에 도착해 30-40명 되는 사람들 앞에서 윈은 마태복음 28장 전체를 암송하고 성령에 감동하여 즉석에서 성경노래를 작곡해 불렀다. 그때 그곳에 성령께서 임재하셨고, 수십 명이 주님께 마음을 열게 되었다.
4) 준비된 여인과의 결혼
윈은 자기 마을에서 몇 마일 떨어진 '옌장'이란 마을의 '덜링'이란 여자와 선을 보게 되었다. 덜링의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으로 덜링을 반드시 기독교 지도자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했는데, 그 지역에 총각지도자는 윈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윈은 자신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복음을 위해 고난받을 각오가 되어 있냐고 물었을 때, 덜링은 서슴치 않고 함께 주님을 섬기자고 했다. 그런데, 결혼식 후 혼인신고를 하는 날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혼인신고를 할 때 윈이 공안에 수배자 명단에 있는 것을 안 그는 체포되었다. 이렇게 힘든 결혼생활이 시작되게 된 것이었다.
5) 삼자(三自)교회와 가정교회
1980년 중국정부는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획기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모든 종교(카톨릭, 기독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에 종교의 자유를 주는 대신에 정부의 규정 안에서 할 것을 주장하는 [삼자애국운동]이라는 것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 윈은 이 제도가 좋다고 보고 자신이 위원장 자리를 맡아 교회를 부흥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기독교인이 윈은 신학교육도 받지 않았고, 불법적인 활동을 했으므로 자신이 위원장에 올라야 한다며 윈을 공격했다. 그러자 그는 그에게 호통을 치고는 정치와 하나님 나라가 결코 섞일 수 없음을 명확히 깨달았다.
6) 탈출과 금식, '1차 투옥'(1983)의 나날들
그후 가정교회 소속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던 윈은 1983년 산시성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잡히게 된다. 온갖 수모와 고문을 당했지만 공안원들이 한눈을 판 사이에 탈출하게 되었다. 이 때 갑자기 묶었던 밧줄이 헐거워져 끊어졌고, 2.4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을 향해 뛰는데 갑자가 누군가 몸을 번쩍 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 담을 넘은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 갔을 때, 만난 사람들의 말이 "우리는 형제님이 풀려나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983년 12월 '애심촌'이란 마을에서 집회를 마친 다음 윈은 체포 당해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때 다른 그리스도인의 정보를 알기 위해 그를 추궁하자 윈은
"나는 하늘의 사람입니다. 주소는 복음 바을입니다.!"
라고 외치며 끝까지 가롯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후 중국 그리스도인들은 윈을 '하늘의 사람'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후 온갖 고문을 당하고 난양 감옥에 도착한 후 자백할 것을 종용하자 그는 74일의 믿을 수 없는 금식에 들어가게 된다. 그 사이에 죄수들은 그를 괴롭히고 오물을 뭍혔지만 오히려 죄수들이 옴에 걸리게 되고, 몸무게는 30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았다. 금식 74일째 되던 날 가족들이 찾아왔고, 가족이 사온 크레커와 포도쥬스로 성찬을 행했다. 그리고, 자기를 괴롭히는 죄수들에게 불가사의 한 힘으로 일어나 "주님이 여러분에게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며 그들을 복음으로 이끌었다.
그 후 윈의 가족이 한 아이의 병을 낮게 하였고, 그 가족의 사촌이 감옥의 간수였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윈은 약간의 고생을 덜 수 있었고, 황언광이란 사형수에게 복음을 전해 회개하게 하고 천국가게 했다. 그리고, 4년의 형을 선고받고 [신양강제노동수용소]에서 형을 채우고 행동의 제약을 안은 채 출옥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7) 천안문 사건과 성경학교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중국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공산당 당원들까지도 예수를 믿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와 동시에 집회마다 성령의 역사가 임해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회심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교회지도자들은 그들을 훈련시켜야겠다는 강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1989년 4월 산기슭 동굴 안에 [성경학교]를 열어 그리스도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기 시작했다.
8) 두 번째 투옥(1991)과 가정교회 연합(1996)
1차 투옥 후 의욕적으로 사역하던 윈은 아내의 경고도 잊은 채 욕심을 내다가 1991년 채포되어 [다안강제노동수용소]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시기를 고난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교만에 대한 반성과 사역에 대한 재충전으로 여긴 윈은 감옥 안에서 '감방장'으로 임명되고, 안마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다가 전문적으로 안마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가지게 되어 더 의욕적으로 감옥 안에서 전도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2년만에 조기석방 되었고, [사무엘 선지자 훈련센터]를 세워 지도자 훈련에 힘쓰게 된다. 그리고, 여러 외국교회가 원조의 조건으로 제공한 신학에 의해 12조각 난 가정교회들을 하나로 묶어 1996년 10월 '시님 연합'이란 가정교회 연합을 탄생시키게 된다.
9) 세 번째 투옥(1997)과 극적인 탈출
1997년 허난 성 정저우 시에서 열린 교회지도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공안에게 잡혀 3차 투옥을 당한다. 이 대 도망을 가려고 뛰어내리다가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는데, 그 부러진 다리에 집중적인 구타가 행해져 다리를 거의 못쓰게 되었다.
39세라는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불구가 되어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형제의 탈출 권고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픈 다리를 끌고 탈출을 감행했다. 1997년 5월 5일 아침 8시, 간수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에 주님은 탈출하라고 명령하셨다. 다리를 질질 끌며 복도를 지나갔지만 그가 지나갈 때마다 문은 열려 있었고, 간수들은 그 때마다 고개를 돌려 다른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주님은 윈의 다리를 고쳐 주셨고, 불구였던 윈은 정상인 처럼 걸어 유유히 간수들 사이를 지나 조금 열려 있던 정문으로 탈출해 택시를 타고 도망을 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도주행로를 폭우로 지워 주셨다. 그리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던 형제를 만나 그가 제공한 은신처에서 머물다가 다른사람의 여권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독일에서 아무 말 없이 통과시켜 주어 독일까지 무사히 탈출하게 되었다.
10) 간증사역과 가족과의 만남
이후 윈은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중국교회의 현실과 무너진 서방교회의 회복을 위해 강연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가족을 미얀마에서 데려 오기 위해 노력하다가 다시 미얀마 감옥에 갖혀 중국으로 송환될 위기에도 처했으나 독일정부의 노력으로 무사히 독일에 먼저 와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간증집회를 다니던 중 미국의 어느 기독교 언론에서 윈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는 기사를 써서 고난을 당하게 된다. 그 때 윈은 주위 사람을 통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중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구타와 투옥으로 박해를 받지만, 서양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말에 박해를 받습니다."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들었다.
이 후, 윈은 '백 투 예루살렘'이란 중국 가정교회의 비전 성취를 위해 여러 강연과 중국교회 후원 모금에 노력하고 있고, 주님이 부르시는 어느 곳이던 갈 준비가 되어 있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3. 서평
지난 주 화요일에 남은 짐을 교회의 내 방으로 옮겨 놓기 위해, 진해로 향하던 나는 화성에서 선교훈련 중에 있었던 '김광식 선교사님'을 뵈었다. 그 때, 선교사님은 이 책을 소개 해 주었고, 진해에서 글 없는 책을 구입하면서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들어와 사게 되었다. 책이 너무 은혜로워 단숨에 다 읽었다는 선교사님의 말에 '페이지가 얼마 안되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399페이지의 장서였다. 하지만, 나 또한 단숨에 그 책을 다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목말라 하지만 경험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나님께 역사해 달라고 간구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신할 도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현대의 그리스도인 아닌가? 기도하기보다 친분을 통해 이야기 하기 좋아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 보다 은행장 앞에 무릎 꿇고 돈을 융통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은혜를 체험한 윈이야 말로 가장 고난 받은 사람이면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하나의 부풀림이나 과대포장도 없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의심하기 좋아하는 유럽 그리스도인들에게 단련된 탓에 수용쩌 형제의 추천문이나 탈출 장면에 대한 여러명의 보강 내용에서 진심임을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러 간증서적을 읽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고백한 부분을 볼 때면, '자신의 관점에서 써서 이렇게 해석되기도 하겠지.'라고 폄하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역사 앞에 난 도저히, 그 어떤 폄하의 발언도 입 밖은커녕, 마음 속으로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머리말에 씌여져 있는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에 대한 권리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가지고 거룩한 실험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실험은 언제나 성공한다."
윈은 자신의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은 가혹하리 만큼의 방법을 동원해 원을 실험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실험은 성공했고, 윈은 어느 순간엔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난 2005년도 신대원 개학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첫날 저녁, 난 1시간이 넘도록 그 어떤 기도의 소리도 외칠 수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책의 내용과 개학부흥회의 은혜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성령의 충만함 속에 머물러 있다. 주님이 김광식 선교사님을 통해 이 책을 소개해 주시고, 단숨에 읽게 하시며, 바로 개학부흥회로 이어지게 하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실까? 윈 형제처럼 될 수 있을까? 나도 거룩한 실험에 동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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