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현재] 신대원 생활, 교회사역과 결혼

주전담백 主前淡白 2006. 6. 29. 11:48

 

 

 

1. 즐거운 사역, 공포의 헬라.히브리어

 부푼 꿈을 안고 신대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이력서를 내어 부천에 있는 혜광교회에서 사역도 하게 되었구요. 사역은 정말 저에게 기회나 다름 없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유초등부와 찬양단을 처음에 맡았었는데, 이미 진해동부교회에서 다 했던 일이라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문서 작업이나 행사 계획 등도 이미 해 본 일이라 너무나도 쉽고 즐거웠고, 인정받아서 기쁘게 사역했습니다. 성도님들도 너무 좋아하시고, 잘 대해 주시고, 목사님도 인격적이셔서 사역에 대한 부담은 없었고 오히려 즐겁게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1-2월 달에 있었던 "원어계절학기"가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국어교육과 출신인데도 언어나 문법에 약한 저에게 헬라어 히브리어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극복하기 힘든 존재였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시험과 단어암기, 이해하기 힘든 문법 등은 신대원에 대한 기대를 꺾어놓기에 충분했습니다. 더욱이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고, 유명대학 출신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신대원 교수님들의 모습에 신대원에 대한 환상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신대원 생활이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기에 이를 악물고 할 수 있는데 까지 노력했습니다. 처음 하는 사역, 처음 하는 신대원 공부, 두가지를 다 하려니 정말 미치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계절학기를 마치고 헬라어 히브리어를 통과 했습니다.

2. 예상치 못한 기회와 성공

 이젠 교회사역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그렇게 제가 가진 노하우로 충분했던 사역에 예상 외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우리교회 주일학교는 학년제였는데, 세미나 이후 무학년제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진해동부교회에서 무학년제 운영의 문제점과 실패를 경험한 나로써는 그렇게 달갑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사람들의 결정을 존중하면서 무학년제 운영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조직을 개편하고 교사를 조직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시험대로 다가 온 것이 2월에 있었던 [겨울 캠프]였습니다. 당시 유초등부는 35명, 겨울캠프의 목표는 '배가'였습니다. 그런데 겨울캠프를 지나고 우리는 80명이라는 출석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이것은 기존 학생들에, 새롭게 헌신한 목양교사들이 열심히 전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답답한 지하식당을 벗어나 본당을 내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구요. 이렇게 한번의 성공을 이루자 교회에서 나에 대한 신뢰를 커져만 갔습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 신뢰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았습니다. 주일학교는 점점 늘어갔고, 여름에 이르러는 120명 재적에 100명이 출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신뢰의 분위기를 이어, 처음으로 폐교를 개조한 캠프장을 빌려 [여름캠프]를 치뤘고,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05년 12월 까지 150명의 재적에 120명의 출석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월 부터 [청년대학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사역이 과중되어 다 잘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처음에는 토요일 저녁 7시에 모였는데, 7명 정도가 출석했었습니다. 대부분 교회 중직자 자녀들이었고, 간혹 새신자가 왔었지만 거의 정착하지 못했으며 기존 교인 자녀들 중 80%가 출석하지 않는, 버려진 기관이었습니다. 어디서 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처음 가진 생각은 청년들과 신뢰를 형성해야 겠다는 생각과 리더를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놀러도 다녔습니다. 그리고 조를 만들기 위해 조장을 세워야 겠다는 생각에 [제자반]을 운영 했습니다. 이렇게 상반기를 보내고, 대학청년부의 시험대로 자리잡은 것이 바로 여름 수련회 였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대규모 수련회 참석하고 일박으로 , MT가는 것이 전부였답니다. 그런데, 05년에는 보람도 있고 단합도 되고 실패의 경험도 씻어내기 위해 전남 곡성 구름다리 교회에 여름성경학교, 농사일, 독거노인 가정 봉사 등을 위한 [봉사수련회]를 계획해서 떠났습니다. 13명이 참석했는데 결과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그 교회도 너무 좋아하고 청년들도 죽도록 일만 하고 왔는데도 또 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3. 그간의 눈물과 고생에 대한 선물

 그리고, 저에게는 일생에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8월 13일날 결혼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저는  결혼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목사안수 주면 안되냐고 따지고 다녔던 사람입니다. 가족을 정당하게 부양할 수 없는 목회현실 속에서 결혼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길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를 결혼으로 인도한 것은 성령님이 아니라 우리 교회 김진숙 사모님이셨습니다. 사모님은 혼자 교회에서 지내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여기저기 선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 때마다 저의 펑퍼짐하고 늙수그레한 외모에 일은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 저의 진면목(?)을 본 사람은 저를 다르게 보았나 봅니다. 청년부에 강유미라는 전혀 몰랐던 자매와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진숙 사모님께서 강유미 아냐고 물으셔서 모른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소렌토 몰고 다니고 말광량이 같은 28살 먹은 자매가 한명 있었습니다. 얼굴도 이쁘고, 차도 큰거 몰고 다니는 거 보니 사모 스타일을 아니겠구나하고 속으로 엑스자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월 5일에 청년부 회원들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 때 영화 보고 점심 먹고 나니, 우연찮게 유미자매와 저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도 대려다 줄 겸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면서 이야기를 했죠. 나의 비전 삶의 계획들을 이야기 했더니 유미자매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선입견을 보았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과거에는 돈 잘 버는 남자 만난서 호텔에서 살면서 호강하고 싶었는데 작년에 수련회에서 은혜 받고 난 이후에는 의미 있는 일을 살고 싶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 때 다시 보게 되었고, 알고 봤더니 차도 자기 차가 아니라 아버지 차였고, 핸드폰도 3년은 쓴 것 같이 낡아 있는 것을 보면서 제가 잘못 알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5월 달 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6월에 양가 상견례를 하고 8월에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알게 된지 불과 5개월 만의 일이죠 ^,.^; 하지만, 신뢰할 만은 분의 소개가 있었고, 두 사람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비전이 다르지 않다는 점 때문에 결혼을 늦출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사역을 다 마치고 일주일 후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바로 교회 사역하고 월요일에 시골에 다녀온 후 저는 학교로 집사람은 인천으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주 주말에, 그것도 사역을 마친 저녁에 볼 수 밖에 없는 주말부부였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신혼을 보내었고, 12월 말에는 하나님이 선물로 아이를 주셔서 행복한 마음으로 06년 10월에 태어날 아들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4. 축복으로 넘처난 05년, 훈련으로 시작된 06년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05년 상반기는 축복 그 자체였습니다. 하반기도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되었습니다. 주일학교는 조금씩 점점 부흥해 갔고 선생님들과 목사님의 만족도도 더해만 갔습니다. 급기야 12월 말에는 우리교회 주일학교 부흥한 주일학교로 선정되어 노회에서 사례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청년부도 토요모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예배를 주일로 옮겼고, 인원이 조금씩 늘어갔으며, 작은 행사들을 치뤄 내면서 실패의 경험을 씻고 성공의 경험을 늘려갔습니다.
 하지만 2006년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학교공부는 이제 익숙해졌습니다만 사역의 현장에 악재들이 닥쳤습니다. 먼저 초등학교가 토요일에 한달에 한번 쉬던 것에서 격주로 쉬게 되어 토요 전도가 큰 타격을 입었고, 노는 토요일에 출석율이 급감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름행사도 거창하게 계획했지만 교회의 재정사정 악화로 취소되거나 간단히 치루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유초등부는 30명을 중고등부로 올려 보내고도 100여명 정도가 출석하고 있고, 청년대학부도 이제는 4개조, 20여명이 출석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압박으로 여름행사가 간소화 되었지만 돈으로 하나님 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 하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해서, 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앞으로 있을 현재의 이야기들은 공지사항의 '선지동산'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짧은 글을 가지고 저의 32년 생활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겠지만 Turnning Point는 모두 집은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도 주님 안에서 더욱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역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지켜봐 주시고 기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