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소논문] 존스토트의 총체적 복음사역

주전담백 主前淡白 2010. 7. 10. 12:23

 

 

 

1. 머리말

 

 

21세기를 맞이하여 한국교회는 성장정체라는 어두운 늪의 수렁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그 회복의 열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이웃을 품에 안는 자세를 회복하는 것”일 것이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교회와 신자들은 자기들에게 허락된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교회당의 담장 안에서 자기들끼리만 누리고 즐겨왔는지 모른다. 우리들에게 거저 주어진 은총의 복음 안에 담겨진 복들이 교회당 밖의 이웃들에게는 아무런 복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되기까지도 했던 상황들은 우리들의 오류를 -그리스도의 복음의 오류가 아니라- 고발해 주는 대목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사역과 자비사역을 총체적 복음사역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진보적 성향의 교회들과 같이 단순히 사회봉사활동이 아닌, 최종목적에 복음증거를 두고 활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수교단들이 복음 증거의 수단으로 자비사역을 활용하는 방법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자비사역의 독립적인 목적을 유지하면서, 최종적으로 복음증거를 위해 애쓰는 총체적 복음사역이야말로 한국교회를 건강하고 더욱 더 부흥하게 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총체적 복음사역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개신교 목회자, 신학자들 중에서, 존 스토트의 총체적 복음 사역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존 스토트는 1921년 4월 27일 영국에서 태어나 캠브리지 신학부를 졸업하고, 1945년 목사로 안수 받은 후 런던 랭햄 플레이스(Langham Place)에 있는 올 소울스 교회(All Souls Church)의 목사보(1945-50), 교구목사(1950-75), 교구장목사(1975년부터)로 봉사하면서 강력하고 혁신적인 목회방침으로 효과적인 도시목회를 이끌었다. 영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적 복음주의 지도자로서 로잔언약(1974)의 입안에도 참가했으며, 지금까지 활발한 강연 및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존 스토트는 탁월한 설교자이자 복음전도자이며 학자인 동시에 우리에게 바른 신앙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저술가이기도 하다. 존 스토트의 폭넓은 관심은 그의 여러 저서에서 잘 드러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이며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기독교의 기본진리」는 무비판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 참된 진리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책으로, 신학생뿐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은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꼽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핵심인 '십자가'를 다각적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그 외「현대 기독교 선교」와 그가 편집인으로 있는 Bible Speaks Today Series의 신약 주석들이 대표작이며, 30여권이 넘는 저서들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물론 평신도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존 스토트의 위대한 업적 중에서, 특별히 총체적 복음사역의 관점에서 그의 총체적 복음사역적인 삶과 신학, 활동 그리고 설교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를 통해 총체적 복음사역자가 발견해야 할 원리와 나아가야할 길과 최종 목표 등을 알아 보고자 한다. 오늘 소고(小考)를 통해, 총체적 복음사역의 원리와 실제적인 방법을 발견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 본 문

 

 

2-1. 존 스토트의 총체적 복음사역적인 삶

 

2-1-1. 가정적 배경

 

존 스토트의 아버지 아놀드 스토트는 과학적 세속주의자였다. 그는 강한 사회적 양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많은 고상한 전문직 종사자들을 당시의 프리메이슨 협회에 끌어들인, 자선행위에 전념하는 프리메이슨(freemason)이었다. 그는 사람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든 없든 누구나 의료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국민건강보험의 초기 후원자였다. 낮에는 병원과 진찰실에서 진찰에 몰두했으며, 저녁식사 후에는 열심히 연구했고, 그 후에는 의료기록과 문서를 정리하는 일을 했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이 사회참여적 의식을 키워준 것이다. 그러나 아놀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앙의 유산을 존에게 물려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존의 어머니 에밀리 캐롤라인은 루터교 신자로 자랐다. 그는 어린시절의 경건함을 그대로 간직했다. 그래서, 그녀는 존 스토트의 두 누나와 존에게 교회에 가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존 스토트는 십대 중반까지 신앙생활을 충실히 했다.

 

2-1-2.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

 

존스토트는 명문사립학교인 럭비(Rugby School)시절, 1938년 만 17세의 나이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된다. 존 스토트를 회심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당시 40세로 엘리트 청소년 전도에 열정이 있었던 배쉬라는 성서유니온 간사였다. 존 스토트는 1938년 2월 13일 럭비를 방문한 배쉬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그리 돋보이지 않았으며 늠름한 기독교의 사절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할 때 나는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 본문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라는 빌라도의 질문이었다. 내가 예수께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님이 할 일을 다 하셨고, 내가 할 일은 묵묵히 따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쉬는 조용히 하지만 강력하게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며, 어느 누구도 중립적인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빌라도를 따라 연약한 모습을 예수님을 거부하든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그분을 받아들이고 따르든가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월 14일 존 스토트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되어진다. 그가 남긴 일기 속에서 그 상황을 생생하게 살펴 볼 수 있다.

 

“2월 14일 월요일, 어제는 정말로 중대한 날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브리저의 모임에 갔다(이것 역시 어제 일이다). 그 때 배쉬는 넓은 문, 넓은 길과 멸망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곧은 문, 좁은 길과 생명에 대해 매우 아름답게 말해다. 그 다음에 그는 나를 차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했다. 우리는 대단한 대화를 했다. 나는 그에게 나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말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주변에 계셨으며, 나는 그분에게 완전한 통제권을 드리는 대신 나를 인도해 달라고 청했다. 보라! 그분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으며, 지금 그분은 나의 집에 들어와 계신다. 그분은 그 집을 깨끗하게 하셨으며, 이제 그 안에서 다스리신다. 사단이 와서 문에서 두드리면 내가 ‘죄의 쾌락’에 굴복하여 나가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문으로 가실 것이며, 사단은 그분을 보고 도망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시라면 죄는 내 발 밑에서 죽어 있다.

 

배쉬는 젊은 시절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해 방황했던 존 스토트를 하나님의 신실한 종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었다. 이 배쉬와 존 스토트의 만남과 관계를 통해, 영적으로 분별력과 지도력을 갖춘 성숙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너무도 귀한 축복이며, 영적인 잠재력과 비전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양육하는 것이 너무도 귀한 사역임을 보게 된다.

 

2-1-3. 신앙의 확립

 

존 스토트는 1939년 캠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존 스토트는 입학하자마자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첫 학기에 그가 접촉한 사람 중 두명이 회심했고, 열명 정도의 작은 모임에서 그는 매우 큰 기여를 했다. 그는 복음전도와 어린 그리스도인을 돕는 일에 숙련된 일꾼이었다. 그리고 그는 강력한 훈련을 받은 기도의 사람이었으며, 제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제시간에 일어나 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해 모임을 일찍 떠나곤 했다. 그는 시계가 9시 30분을 가리키자마자 활발하게 토론을 벌이다말고 갑자기 나가 버렸다. 그는 결코 자신이 돕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을 내어 그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우정을 나눌 뿐이었다. 이런 경건의 습관과 삶의 태도는 평생 지속되었다. 이를 통해 존 스토트의 타고난 초인적 자질과 엄격한 성실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신앙이 이 때 굳건히 확립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1-4. 올 소울즈 교회에서의 활동들

 

1939년에 발발한 2차 대전 참여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면서 까지 존 스토트는 1945년 목사안수를 받고 주님의 종으로 첫발을 내 딛게 된다. 그리고, 1945년부터 1950년 까지 올 소울즈 교회 부목사 생활을 거친 후, 존 스토트는 1950년, 29세의 나이에 올 소울즈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는 담임목사가 된 직후 “다섯가지 사항에 대한 선언문”을 교회 회보에 실었는데, 그것은 첫째 기도의 우선됨, 둘째 강해설교, 셋째 정기적인 전도, 넷째 탐구자들과 회심자들에 대한 주의 깊은 양육, 다섯째 돕는 자들과 지도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이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솔선수범의 본을 보이게 된다. 당시 부목사로 재직한 리처드 고리(Richard Gorrie)는 이렇게 회상한다.

 

“존 스토트는 전도 집회에서 만난 노숙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식사를 주고 자신의 침대를 사용하도록 했으며 자기는 서재에서 캠프침대를 펴고 잤다. 그의 관리인은 그가 궁핌한 사람들을 위해 자주 이렇게 했다고 말했다.”

 

존 스토트는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단독적인 전략을 쓰지 않고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통합해 사용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존 스토트는 첫 번째로 한달에 한번씩 간호사, 의사,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인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올 소울즈 비거주자 교구민들을 위해 점심시간을 활용해 교구 내 다섯 개 주요 백화점을 대상으로 점심시간 예배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1950년대 말 올 소울즈 클럽하우스를 열어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복음전도와 양육과 훈련을 결합시킨 손님초청예배를 만들어 복음전도에 최선을 다했다.


2-1-5 존 스토트의 삶과 총체적 복음사역

 

존 스토트의 삶 속에는 총체적 복음사역자로서의 준비과정이 녹아져 있다. 어머니와 배쉬에게서 물려받은 굳건한 신앙의 유산과 아버지에게 영향 받은 사회 참여적 태도가 그의 총체적 복음사역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올 소울즈교회에서 단순한 설교를 통한 복음선포가 아닌, 자비사역을 동반한 총체적인 활동을 통해, 총체적 복음사역의 현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1974년 로잔대회를 통해 전 세계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낸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총체적 복음사역자는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과 함께 오랜 숙고와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2-2. 존 스토트의 총체적 복음사역적인 활동

 

2-2-1. 복음주의 선교대회 강사로 활동한 존 스토트

 

존 스토트는 영국 런던의 올 소울즈교회를 넘어, 영국 복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는 케임브리지, 런던, 옥스퍼트, 더햄 등지를 돌며 대학 선교대회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1956년부터는 미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돌며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활동했다.

 

2-2-2. 복음주의를 주도한 존 스토트

 

존 스토트는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에도 참여하게 된다. 1968년에 웁살라에서 개최되었던 제4차 W.C.C. 모임에 참석했던 존 스토트는 그 모임 속에서 육신적인 가난이나 기아에 대해 염려와 외침은 들렸으나, 복음화되지 못한 수백만의 영적 기아에 대해 염려하고 주를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도성을 향해 우셨던 우리 주님의 눈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우리가 선교를 봉사적 관심 속에서 바라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 중심적인 존재가 되어야 그 다음에 세상을 향한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74년 7월 16-25일까지 스위스의 로잔에서 개최된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일명 로잔대회가 150여개국 135개 개신교 교단, 2470여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모여 “세계에 그리스도의 음성을”이란 주제를 가지고 개최되었는데 이 때 존 스토트 목사가 주도적인 영향과 함께 성명서를 작성했다. ① 존 스토트는 사회 정치적 해방은 구원이 아니며, 사회 참여는 복음 전도가 아니라는 지적이며, ② 구원이란 일차적으로 죄로부터의 개인적인 해방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이어야 함을 강조했고, ③ 세상의 모든 악으로부터의 구원은 아직 미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W.C.C.의 치우친 선교관은 성경의 복음적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주장임을 명백해 드려낸 것이다. 또한 존 스토트는 “과연 하나님께서 지금 모든 종류의 억압들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해방시키시려 하시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즉 성경의 구원역사가 그의 자녀들에게 육체적 경제적 차원 등에서의 평안과 안식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때로는 정치적 경제적 압제와 고통 중에 모무르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때도 있음을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2-3. 존스토트의 총체적 복음사역에 대한 신학

 

2-3-1.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복음전도적 책임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일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복음전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다른 그리스도인들, 특히 에큐메니컬 운동권 내에 있는 이들은 사회, 정치적 책임에 치중하여 복음전도를 단념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 중 일부는 복음전도를 사회적 책임이라는 견지에서 정의하려고까지 했다. 이것은 처음부터 슬프고도 헛된 논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적 책임과 복음 전도적 책임은 상호 분리될 수 없으며, 그러기에 우리는 1974년 개최된 로잔세계 복음화 대회에서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한동안 잃어버렸던 사회의식을 되찾는 점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사회적 태도는 오직 두가지이다. 하나는 도피이고, 또 하나는 참여이다. 전자는 거부하는 마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며, 후자는 동정하는 마음으로 세상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가 행하신 것처럼 잃어버린 외로운 세상에 나아가 그 세상을 섬기라고 부르시는 그 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분처럼 살고 사랑하며 증거하고 섬기며 고난 받고 죽을 수 있기를 다짐하는 것이 선교가 의미하는 바이다.

WCC를 중심으로 한 진보주의 진영과 그 반대선상에 놓인 보수진영간의 선교관 및 선교사역의 의견 불일치로부터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선교학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스토트는 “총체적(‘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다.’는 철학적 개념인 ‘전체론’에서 나온 말)이라는 말은 아마도 기독교 선교에 적응하기에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통찰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선교란 복음전도와 사회활동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행위임을 강조하며 그것들을 분리시키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또한 구속주로서 그 분이 만든 모든 인간의 ‘전체적인 복지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시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 구속과 창조, 은혜와 본성, 하늘과 땅, 칭의와 정의, 믿음과 행위를 건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서로 대립시키는 경향이 있다. 성경은 이것들을 분명히 구별하지만, 그것들을 서로 관련시키며 우리에게 이것들 사이에서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긴장을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소위 예수의 대제사장의 기도 중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와 예수의 부활 후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이 지니는 모범적인 선교관이 그것이다. 위의 예수의 섬김 사역의 특성을 온전히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예수의 성육신의 원리가 정당하게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인자가 온 것은....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존 스토트의 선교관은 복음주의적 전제들을 함축하면서도 그 실천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총제적이다. 즉 그의 성경적 선교관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세계 속에 보내어 하게 하시는 모든 일을 포괄하는 말이다”에서 찾을 수 있다.

 

2-3-2.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복음전도적 책임의 상호관계

 

존 스토트의 이러한 선교정의를 기초로 총체적 복음사역을 생각해 보면, 우선 총체적 복음사역은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알게 된다.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관계를 기존에는 어떻게 설정해 왔는가? 기존의 이해는 우선 사회활동을 전도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전도자의 회심자 획득이 최고의 목적이며 사회활동은 그 목적을 위한 유용한 예비조건 내지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가장 심한 경우는 사회사업을 알약 위에 바른 설탕정도로 간주하며 가장 좋은 경우에는 복음에 결핍될 수 있는 신빙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본다 이 두가지 모두 우리의 박애활동 배후에 외식의 악취가 풍기는 것 같다.

전도와 사회활동의 관계는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 한다. 양자는 서로 동반자로서 서로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독립적이다. 양자는 각기 올바른 위치에 독립적으로 서 있으면서도 상호협력적이다. 양자는 각각이 하나의 목적이 되며 동시에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양자가 동반자적이지만 복음전도가 일차적으로 우선성을 갖는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 중에 복음에 대한 무지와 거부로 야기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보다 더 심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해방이 영원한 구원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우리가어떻게 진지하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복음전도의 사명에서 도피하여 치유나 교육, 사회사업과 같은 선행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은 옳은 것이며 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최종적이고도 보편적인 사명, 각 복음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 사명은 병자를 고치는 일이나 사회를 개혁하는 일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행동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그것과 복음전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사회적 행동은 복음전도와 동일한 것도 아니고, 복음 전도의 구성요소도 아니며, 복음전도를 위한 수단도 아니다. 복음전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행동은 그 자체를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 둘은 모두 사랑의 섬김이며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다이코니아의 일부분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밝자취를 따르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이 서로 별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완전히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은 나란히 함께 간다. 각각 다른 하나를 따라하려고 꾸미지 않으며 또 다른 하나를 자신의 역할을 위해 이용하려 하지도 않는다.

 

2-4. 존 스토트의 총체적 복음사역적인 설교

2-4-1 사도행전 8:4-40 “빌립의 복음전도”

 

존 스토트의 강해설교집을 보면, 그의 총체적 복음사역적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로 사도행전 8:4-40에 나타나는 빌립의 전도를 통해, 복음전도자가 지녀야할 융통성있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존 스토트는 빌립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빌립이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인종과 사회적 계층과 종교면에서 서로 달랐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 인종으로서 반은 유대인이고 반은 이방인이었으며, 아시아사람이었다. 한편 에디오피아인은 비록 태생으로나 혹은 개종함에 의해서나 유대인이긴 했지만 아프리카 흑인이었다. 사회 계층 면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아마도 평민들이었음에 반해 에디오피아인들은 왕실에 고용된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 다음에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를 숭배했지만 예언자들은 거부했다. 최근 들어 그들은 마술사 시몬과 그의 마술적 능력에 홀려 있었다. 다른 한편, 그 에딩피아인은 아마도 회심자로서 유대교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는 예루살렘 순례여행길에 올랐고 또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부한 바로 그 예언서들 중 하나를 읽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불안정하고 속아 넘어가기 쉬운 사람들이었던 것에 반해, 그 에디오피아 사람은 신중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공적선포의 방법으로 다가갔고, 에디오피아인에게는 개인적 증거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위 강해를 통해 존 스토트는 사람의 성향을 고려하여, 복음 전하는 방법을 융통성 있게 활용하는 그자가 총체적 복음사역자가 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2-4-2 사도행전 27:33-38 “음식을 먹으라는 권유”

 

사도행전 27장에서 사도바울은 풍랑을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선원들을 안심시키며 음식을 먹도록 권면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나타난 사도바울의 행위를 통합적 그리스도인, 즉 총체적 복음사역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강해의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여기에서 영성과 건전한 분별력, 믿음과 행위를 결합시킨 통합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을 사랑하게 만드는 그의 성품의 측면들이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었으며 산전수전 다 겪은 다루기 힘든 이교도 무리 앞에서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건했다고 해서 배가 겨울에 항해나는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거나, 사곧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거나, 또는 굶주린 선원들과 승객들은 살아 남기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한다거나, 아니면 (후에) 해변에서 불이 계속 타게 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모아야 한다거나 하는 일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성령의 사람이었으며, 또한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존 스토트는 배에서 음식을 권하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통해 통합적 복음사역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로, 자비사역은 댓가를 바래서는 안된다는 의식이 그의 해석에 깔려 있다. 배의 안전과 위험 극복을 위해 권면하고 음식을 권하는 것은 상식적인 행동에서 나온 것이지 복음 증거의 도구로 쓴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인 것이다. 그리고, 자비사역을 행하면서도 감사기도 후 배에 탄 사람의 수를 276명을 확인하고 나누었다고 하는 그의 주장은 복음사역적 관점을 잃지 않고 있는 사도바울의 모습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존 스토트는 사도바울이 적어도 5,600km를 배로 여행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이 가진 배경지식과 성령의 영감을 잘 활용해 성급하게 복음사역에만 치중하지 않고, 자비사역적인 행위를 통해 최종적 복음사역을 이룩해낸 위대한 사역자로 평가하고 있다.

 

 

3. 맺음말

 

오늘날 교회들은 주님 오실 때 까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들을 세우고 있다. 보수교단은 더 성도들을 독려해 복음을 전하게 하여 교회를 부흥 또는 유지시키려 하고, 진보교단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사회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구책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방향감각을 상실한다면, 대한민국의 교회, 세계의 교회들은 얼마가지 않아 위기를 마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총체적 복음사역”은 정체의 위기를 맞은 교회들이 유념해야할 사역의 모습임에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로잔언약의 한 글을 소개 하고자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 받은 백성을 세상으로 보내셨다. 이 소명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이 세상 깊숙이 파고드는 희생적인 침투를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의 “울타리”를 헐고 불신 사회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서 전도는 최우선적인 것이다. 세계 복음화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목적의 바로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설교하는 교회는 스스로 십자가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교회가 만일 복음을 배반하거나 하나님께 대한 산 믿음이 없거나, 혹은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거나, 사업추진과 재정을 포함한 모든 일에 있어서 철저한 정직성이 결여될 때 교횐느 오히려 전도의 장애물이 되어 버린다. 교회는 하나의 기관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문화적, 사회적 또는 정체제나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 되어서는 안 된다.(로잔언약 6. 교회와 전도)

 

이와 관련해 존 스토트가 보여주었던 총체적 복음사역적인 삶과 사역, 신학, 실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총체적 복음사역적인 삶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굳건한 믿음의 바탕 위에, 융통성 있는 자세를 가지고, 다각도의 복음전도의 수단들을 동원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이론인 것 같으나, 이대로 실천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을 이 이론대로 실천해 온 존 스토트의 삶은 어떤 이론보다 우리에게 큰 감동과 영향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존 스토트 목사는 2007년 86세를 기점으로 공식적인 사역에서 은퇴했다. 올 2007년 7월 영국의 케직사경회(영국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전국적인 말씀 수련회)에서 설교하는 것을 끝으로 은퇴하고 평생 독신을 산 그는 이제 런던 남부에 있는 성공회 은퇴사역자 공동체로 들어갔다. 영국교회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쓸쓸히 말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시대 마지막 복음의 경주자를 자처하는 한국교회가 총체적 복음사역적인 자세로 교회사역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교회와 같은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부디 존스토트의 간단명료한 이론을 가슴에 새기고 그 것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역자들이 한국 땅에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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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광열, 이웃을 품에 안고 거듭나는 한국 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2002),

 

John Stott,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편집부 역, (IVP, 1997),

 

,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정옥배 역, (IVP, 1993),

 

, 현대기독교선교, 김명혁 역, (성광문화사. 1981),

 

, 존스토트의 복음 전도. 김성녀 역, (IVP, 2005),

 

, 땅끝까지 이르러. 정옥배 역, (IVP, 1997),

 

Timothy Dudley-Smith, 존 스토트. 정옥배, 김성녀 역, (IVP, 1999),

 

http://blog.daum.net/hankim0902/1900283 선교한국 한철호 박사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