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국문요약
I. 서론 …………………………………………………………………‥ 1
1. 문제제기 ‥…………………………………………………… 1
2. 연구방법 및 범위 …………………………………………… 3
Ⅱ.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 …………………………………‥ 4
1. 절대의존감정(Absolute Dependance Feeling)………………… 4
1) 상반된 평가……………………………………………… 4
2) 절대의존감정을 전제로 한 신학방법론 ……………… 6
2.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 비판 …………………… 13
1) 하나님의 선물인 감정 ………………………………… 14
2) 감정의 역할……………………………………………… 16
3) 감정의 두 얼굴 ………………………………………… 18
4) 감정의 바른 쓰임 ……………………………………… 20
3. 감정 의존신앙과 특별계시 의존신앙 …………………… 21
1) 그리스도인의 의무……………………………………… 22
2) 슐라이어마허에게 미친 시대적 영향………………… 24
3) 21세기, 감정의 시대…………………………………… 26
4.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를 마치며 ……………… 27
Ⅲ.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 29
1. 상황(Context)………………………………………………… 30
1) 실존주의 철학과 틸리히 ……………………………… 30
2) 상황과 기독교…………………………………………… 32
3) 상황을 전제로 한 신학방법론………………………… 33
2.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 비판 …………………………… 46
1) 비(非) 기독교와 탈(脫) 기독교화의 위험성………… 46
2) 혼합주의의 위험성……………………………………… 49
3) 종교다원주의의 위험성………………………………… 50
3. 상황 의존신앙과 특별계시 의존신앙 …………………… 54
1) 특별계시 의존신앙의 필요성 ………………………… 54
2) 상황 의존신앙의 결과물 WCC ……………………… 56
3) 박윤선과 틸리히………………………………………… 60
4.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를 마치며 ……………………… 62
Ⅳ.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 64
1. 희망(Hope)…………………………………………………… 64
1)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 ………………………………… 64
2) 희망을 전제로 한 신학방법론………………………… 67
3) 긍정적인 평가…………………………………………… 74
4) 부정적인 평가…………………………………………… 75
2.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 비판 …………………………… 77
1) 몰트만의 희망, 유토피아……………………………… 77
2)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 ……………………………… 78
3) 단추를 잘못 끼운 몰트만……………………………… 80
3. 희망 의존신앙과 특별계시 의존신앙 …………………… 82
1) 몰트만 희망의 문제점 ………………………………… 82
2)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희망과 이머징교회운동 …… 82
3) 특별계시 의존신앙……………………………………… 87
4.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를 마치며 ……………………… 90
Ⅴ. 결론…………………………………………………………………… 91
참고문헌
국문요약
18세기 칸트 이전의 인식론적 전제의 주류는 특별계시였다. 그러나 칸트 이후 이성을 기반으로 한 인식론적 전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소고(小考)를 통해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 슐라이어마허, 폴 틸리히, 위르겐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를 비판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론적 전제들이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신학의 진정한 인식론적 전제는 성경, 즉 특별계시가 되어야 함을 논증하도록 하겠다.
첫째로 19세기 칸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 신학을 연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는 특별계시가 아닌, 절대의존감정, 즉 감정이다. 그리고 특별계시의 초이성적인 부분들은 합(合)이성적으로 재진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까? 우선 감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음을 말하고 싶다. 스위하트는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고, 에드워즈는 감정은 인간의 이해력을 강렬하게 표출해주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정은 사단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처럼 감정이 신앙생활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주신 지성, 특히 특별계시의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고 칼빈, 에드워즈, 스위하트, 김남준 목사 등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처럼 감정의존신앙이 아닌, 특별계시 의존신앙이 진정한 신앙생활의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감정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는 신앙의 흐름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특별계시보다 성령체험과 신비한 경험을 강조하는 순복음적인 신앙형태와 특별계시는 무시하고 감정과 체험을 강조하는 뜨레스띠아스, 레노바레, 관상기도 등과 같은 카톨릭 영성 프로그램이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둘째로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 후 일어난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폴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는 상황(Context)이다. 기독교의 특별계시만이 아닌 인류의 모든 말씀이 계시의 매개체가 될 수 있고, 실존과 관련되어야만 진정한 특별계시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은 틸리히의 신학은 첫째로 해방신학, 민중신학과 같은 비(非) 기독교화, 탈(脫) 기독교화의 위험성이 있고, 둘째로 기복신앙, 샤머니즘 같은 토착종교와의 융합의 위험성이 있을 수 있으며, 셋째로 타 종교와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종교다원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이와 같이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는 신앙의 흐름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인권, 평화, 해방을 위해 특별계시와 기본 교리도 무시한 채 일치운동을 하는 에큐메니컬 단체 W.C.C.를 통해 교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셋째로 20세기 초반 신자유주의 신학, 급진신학의 중심에 서 있는 위르겐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는 희망(Hope)이다. 특별계시는 종결된 것이 아니라 희망의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완성되어져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희망을 인식론적 전제로 한 몰트만의 신학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몰트만은 죄를 인간소외로 구원을 경제적 평등과 인간소외의 극복으로 보는 유토피아를, 죄를 불순종과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으로,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희망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는 신앙의 흐름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교회부흥이라는 교회의 본질적인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탈구도자 중심의 예배, 특별계시를 떠난 설교, 극장, 쇼핑몰화 되어 본질을 망각한 교회의 모습을 용인한 이머징 교회운동으로 이어져 교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메이첸은 자유주의신학을 카톨릭보다 더 기독교적이지 않은, 타종교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인식론적 전제들은 현대교회에도 이어져 카톨릭 영성운동, W.C.C.운동, 이머징교회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교회들은 점점 세력을 잃어가고 타락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교회들은 성도들에게 특별계시를 부지런히 가르치고, 현실 속에서 특별계시를 의존하여 판단하도록 훈련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유지될 것이다.
서론
문제제기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며 살아간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인식론 (Epistemology)’이라 부른다. 인식론이란 용어는 오래 전부터 사용된 용어가 아니고 19세기 부터 유럽의 철학사상가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왜냐하면 천년이 넘는 오랜 중세시대에는 모든 사조들이 전적으로 신 중심적이었고, 인간의 인식능력 또한 감성이나 이성이 아닌 신앙이 절대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신학적 형이상학에 대한 의혹과 질문들이 나타나게 되고, 급격하게 발전된 자연과학이 세상을 바꿔나가면서, 신앙과 성경중심적인 인식론에도 균열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칸트(Immanuel Kant)가 서 있었던 것이다.
칸트가 활동할 당시, 유럽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주된 인식론적 전제로 팽팽히 맞서고 있던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칸트는 기존의 관념을 뒤엎고, 진리란 ‘사물과 지성의 일치’라고 규정하고, 인간의 참된 사물 인식은 인식자의 인식 대상으로의 동일화로 해석해 오던 전통을 벗어나, 참된 인식은 존재자의 지성에의 합치로 인하여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인식론이 모두 외부 대상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했던 것과 반대로, 대상이 우리들의 인식에 따라야만 한다고 바꾼 것이다. 이로 인해 칸트는 인간을 자연법칙의 부여자의 반열, 신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칸트는 인간 이성을 모든 삼라만상의 주권자가 되게 했고, 스스로 파악하여 인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칸트의 사상 및 인식론적 전제는 이후 세속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19세기 인간중심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토대가 되게 되었다.
19세기 칸트 이후로 성경과 신앙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슐라이어마허였다. 그 후,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자유주의 신학이 수그러들자 20세기 신정통주의 신학이 오염된 신학의 인식론적 전제를 치유하는 듯 했으나, 오히려 더 급진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모태가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신정통주의 신학이 신학의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를 성경으로 회복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칼 바르트의 성경관이 오히려 성경은 무오하다는 인식을 파괴시켰고, 그로 인해 20세기 후반의 신학은 성경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는, 각자의 아이디어와 지혜에 근거한 인식론적 전제들이 난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논문을 통해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의 잘못된 인식론적 전제들을 찾아 비판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론적 전제들이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신학의 진정한 인식론적 전제는 성경, 즉 특별계시가 되어야 함을 논증하도록 하겠다.
연구방법 및 범위
연구방법은 슐라이어마허와 폴 틸리히, 위르겐 몰트만의 저서들을 중심으로 해서 자료들을 정독하고 연구하여 논문을 작성코자 한다.
연구범위는 19세기 슐라이어마허, 20세기 초반의 틸리히, 20세기 후반의 몰트만 등 근․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 자기만의 인식론적전제가 확연한 세 사람을 연구의 범위로 설정했다.
이 논문은 5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제Ⅰ장에서는 문제제기와 함께 연구방법 및 범위를 다룬다. 제Ⅱ장에서는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인 ‘절대의존감정’에 대해 소개하고, 절대의존감정을 인식론적 전제로 하여 펼친 마허의 신학방법론을 연구한 뒤, 마허의 인식론적 전제를 오늘날 ‘가톨릭 신비주의 영성운동’ 교회 유입과 관련하여 비판하고 특별계시 의존신앙이 개혁신학의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야 함을 논증한다. 제Ⅲ장에서는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인 ‘상황’에 대해 소개하고,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하여 펼친 틸리히의 신학방법론을 연구한 뒤,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를 오늘날 ‘W.C.C.운동’과 관련하여 비판하고 특별계시 의존신앙이 개혁신학의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야 함을 논증한다. 제Ⅳ장에서는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인 ‘희망’에 대해 소개하고, 희망을 인식론적 전제로 하여 펼친 몰트만의 신학방법론을 연구한 뒤,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를 오늘날 ‘이머징 교회운동’과 관련하여 비판하고 특별계시 의존신앙이 개혁신학의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야 함을 논증한다. 끝으로 제Ⅴ장에서는 이 연구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
인간의 이성에 절대성을 부여한 칸트의 영향을 첫 번째로 받은 신학자는 동시대를 살았던 슐라이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1834)였다.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 신학을 근대적 세계관으로 재해석한 최초의 신학자이다. 슐라이어마허는 특별계시와 교의(敎義)가 아닌 인간의 이성과 개인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기독교의 정통적 요소들을 희석시킨 자유주의신학의 출발점이 되는 인물인 것이다.
절대의존감정 (Absolute Dependance Feeling)
상반된 평가
‘현대신학의 아버지’로 불리 우는 슐라이어마허만큼 상반된 평가를 받는 신학자도 없을 것이다. 그는 19세기의 교부로, 또는 현대신학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신학자이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슐라이어마허는 단순히 하나의 학파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창조하였다고 말했다. 슐라이어마허는 근대 자유주의 신학파의 창시자일 뿐 아니라 ‘전체 현대신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슐라이어마허는 19세기의 대 이단자로도 비판받고 있다. 박형룡 박사는 슐라이어마허를 정통신학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라고 폄하했다. 박형룡 박사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을, 종교를 생활이라고 본 칸트와 종교를 사상이라고 본 헤겔의 사상을 접목하여, 종교를 감정으로 보았다고 평가하면서 신학적으로 볼 때 그는 희랍식 신학을 부활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슐라이어마허는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경건주의자들의 통찰력을 극단적으로 취해 종교는 오로지 감정과 경험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특별계시를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종교적 체험에 관한 기록으로 보았다.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종교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으로 말하면서, 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감정을 기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 감정이란 객관적 이해의 양식, 정서적 지각의 연쇄, 영적인 것의 각성 이었던 것이다.
위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는 특별계시가 아닌, 절대의존감정(Absolute Dependance Feeling), 즉 감정이다. 슐라이어마허가 감정을 전제로 하여 어떻게 신학을 풀어 가는지를 그의 저서 ‘종교론’과 ‘기독교 신앙(초판, 개정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가 왜 문제가 있는지를 논증하여, 개혁신학의 진정한 인식론적 전제는 특별계시가 되어야 함을 증명하도록 하겠다.
절대의존감정을 전제로 한 신학방법론
18세기 유럽은 과학적 경험주의(Scientific-Empiricism)와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Relativism)로 무장한 현대적인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 결과 성서의 역사적 확실성과 가치를 전제로 한 정통신학의 신학방법론은 집중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당시의 교회와 신학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혁신적 해결책을 내어 놓은 사람이 바로 슐라이어마허이다. 슐라이어마허가 선택한 신학 방법론은 특별계시가 아닌, 절대의존감정, 즉 감정이었다. 그의 신학방법론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슐라이어마허는 먼저, 종교의 본질을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파악하고 있다.직관에대한 슐라이어마허의 견해는 아래와 같다.
모든 직관은 직관되는 존재가 직관하는 존재에 끼치는 영향으로부터 출발하며, 직관하는 존재의 본성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종합되며 파악되는, 직관되는 존재의 근원적이고 독립적인 행위로부터 출발한다.
직관이란, 마음에 부딪치는 객체를 직접적으로 지각하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즉 직관의 주체는 객체가 아닌 직관하는 존재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직관에 대해 슐라이어마허는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종교도 이와 같다. 우주는 끊임없이 활동하며 매 순간 우리에게 계시된다. 우주가 산출하는 모든 형식, 삶의 충만에 따라 각별하게 현존하는 모든 존재자들, 우주가 그 충만하고 늘 풍성한 품에서 쏟아내는 모든 사건들, 이것이 곧 우리를 향한 우주의 행위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적인 직관을 우주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을 우주로 보고 있고, 그 하나님의 인식의 주체는 하나님의 계시하심이 아닌, 우리의 직관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 아니라 우주라는 유한한 존재로 이해하고 있고, 종교의 주체를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슐라이어마허는, 감정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인간이 직관을 동원해 우주를 이해할 때, 그 이해에 따른 개인적인 정서반응이 유발되는데 그것을 감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아래에 슐라이어마허의 글을 읽어보자.
유한자인 여러분의 내면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우주의 행위는 여러분의 심정 및 상태와 새롭게 관계한다. 우주를 직관하면서 여러분은 필경 갖가지 감정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슐라이어마허는 감정 중에서, 어떤 것을 종교적 감정(Gefühl)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우주를 직관하고 거기에서 우리의 자아를 되돌아보았다면, 우주와 비교해 볼 때 작은 것을 향해 무한히 사라져 버리는 우리의 자아는 어떠하며, 우리 같은 덧없는 존재에게 진정하고 꾸밈없는 겸손보다 더 근접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이 우주를 직관하면서 갖게 되는 첫 번째 종교적 감정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그에 대한 겸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우주를 직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느끼게 되고, 반대로 인간의 유한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사이에서 느끼는 종교적 감정에 대해 슐라이어마허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세계를 직관하는 가운데 우리의 형제를 알아본다면, 그리고 형제들 모두는 이러한 의미에서 아무런 구별 없이 우리와 같은 존재이며 인간성의 고유한 표현임이 분명하며, 각자의 현존에 대한 존중 없이 이 인간성을 직관하는 것을 절제해야만 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의식과 정신력의 구별 없이 내적인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형제를 포용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가?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두 번째 종교적 감정은 형제에 대한 사랑, 감사, 연민, 통회와 같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위로하며, 아픔은 함께 나누고자 하는 감정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의존감정에는 이러한 긍정적 요소의 종교적 감정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이 종교의 소유임을 슐라이어마허는 주장하고 있다.
이 모든 감정은 곧 종교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감정도 종교인데, 심정이 그 가운데서 움직이는 점들 가운데 하나는 우주가 차지하며 다른 점은 어떤 방식으로든 여러분의 고유한 자아가 차지한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경건을 이 모든 감정이라고 불렀으며 이 감정을 곧 바로 종교에 연관 지었던 것이다. 그들에게서 감정은 종교의 가장 고결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감정의 강도에 따라 종교의 정도가 결정된다고 슐라이어마허는 말한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는 이 직관과 감정의 관계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슐라이어마허는 “여러분은 종교의 보편적 형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직관이 그 본성상 감정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즉, 인간이 무언가를 인식할 때에는 반드시 감정적 표현이 동반됨에 착안하여, 절대의존감정이 완성되려면 직관과 함께 반드시 감정의 표출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슐라이어마허는 직관이 감정을 앞서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종교에서는 직관과 감정 사이에 색다르고 더 확고한 관계가 생겨날 뿐, 감정이 소멸될 정도로 직관이 우위를 점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슐라이어마허는 자기의식의 객관적 측면인 직관과 주관적 측면인 감정이 결합되어 절대의존감정을 형성할 때, 비로소 인간은 종교를 탐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이러한 신학방법론을 바탕으로 하나님, 예수님, 죄, 구속 등의 여러 가지 신학적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 하나님은 아래의 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절대의존감정으로 의존을 느끼는 분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신에게 부여하는 모든 속성은 신 안에 있는 특별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절대의존감정을 신에게 관계시키는 방식에 나타나는 어떤 특별한 것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을 인간의 절대의존감정으로 인식되어지는 만큼의 유한한 존재로 타락시켜 버린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새로운 공통적인 삶의 자아 활동이 구원자(The Redeemer)에게 독창적이고 그로부터만 나온다면, 개인으로서 그는 동시에 원형이다. 원형이 그 안에서 완전히 역사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이 역사적인 것의 각 계기는 그 안에서 원형적인 것이 된다.
슐라이어마허는 예수님을 원형적인 인간, 즉 두 번째 아담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슐라이어마허는, 예수님은 신적 능력을 지닌 구세주가 아니라 죄가 없는 상태에서 절대의존감정을 가장 풍부하게 느낀 유일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는 죄에 대해서, 절대의존감정이 인간의 감각적 본성에 억눌림 당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차적인 의식이 이러한 감각적 의식의 전개를 자기화 할 수 없으며, 그 결과 고차적인 의식은 이 감각적인 의식 가운데서 동의하는 방식으로 고요하게 전제될 수 없는 척도에서 죄인 것이다.
다시 말해 죄란 하나님의 법칙을 범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기를 원하는 인간의 저급한 본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슐라이어마허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의 신앙과 경건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의존하는 감정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속에 대해 슐라이어마허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그 자신 안에서 신 의식에 대한 힘을 내포하고 발전시키는 전체의 새로운 창조를 품고 있는 한에서, 그분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그리고 이 세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중재한 분이라고 말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구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절대의존감정의 회복으로 보았다. 절대의존감정을 가장 완벽하고 충만하게 느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그 절대의존감정을 나눠주셔서 그와 같이 절대의존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을 구속으로 본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죄에서 인간을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의 능력을 나눠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진정한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야 할 특별계시에 대해서, 슐라이어마허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슐라이어마허는 특별계시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의 계시는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일 수 없으며 전적으로 초이성적인 것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슐라이어마허는 이성을 중시하는 신학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난 초이성적인 사건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특별계시 속에서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부분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 슐라이어마허의 계시관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속에서 초이성적 요소와 이성적 요소가 부딪힐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러나 이러한 연관 가운데 초이성적 요소가 이성적인 것과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면, 초이성적 요소는 자신의 속성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의 초이성적 요소들을 이성적으로 이해되도록 다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성경을 합이성적으로 재진술해야 한다고 슐라이어마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진정한 특별계시란 무엇일까?
계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시는 우주에 대한 근원적이며 새로운 직관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근원적이며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최선으로 알아야 한다. 만약 다른 이에게 근원적이던 것에 의해 여러분들에게도 여전히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의 계시는 여러분에게도 계시인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 계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정일웅 교수는 슐라이어마허의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경험에 의한 기록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의 영감도 성경의 기록에 역사하기 보다 기록한 사람들의 인물에 있다고 주장한다고 정일웅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특별계시를 우주의 근원, 즉 하나님에 대해 개인이 절대의존감정으로 느끼는 느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난 특별계시는 종교적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신에 직관과 감정에 의해 형성된 절대의존감정이야 말로 종교의 본질이며, 진정한 신학방법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 비판
슐라이어마허는 현대 세계관을 수용하고 그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진리를 재 진술한 최초의 신학자이다. 앞의 글에서 지적했듯이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는 특별계시가 아니라 직관과 감정이 결합된 절대의존감정이다. 이 절대의존감정으로 느끼는 분이 하나님이고, 절대의존감정을 가장 충만히 느낀 분이 예수님이며, 죄란 절대의존감정에 의지하지 않고 죄 된 본성에 의지하는 것으로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절대의존감정을 회복할 때 우리는 구속함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이 절대의존감정을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할 때만이 종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슐라이어마허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신학방법론의 근거를 특별계시가 아닌 감정에 두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인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감정
그렇다고 감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필립 J. 스위하트(Philip J. Swihart)는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 것에 대해 성경은 직접 말해주지는 않고 있으나 창세기 1장 26절을 근거로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주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다양한 감정과 더불어 사는 정서적인 존재로 창조된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에 이해력과 감정을 주셨는데, 인간의 마음속에서 활동적이고 강렬하게 움직이는 그것을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이 이해력을 표출하는 강렬한 수단이 감정이라는 것이다. 에드워즈도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임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 속에는 감정에 대한 기록이 풍성하게 나타나 있다. 특별히 시편은 ‘감정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느끼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 드린 것이 시편인 것이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도 감정의 사람들이었고, 감정에 솔직한 인물들이었다. 인간에게 감정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좋은 일이 있어도 기뻐하지 못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 못하며, 화가 나도 화를 내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위의 글을 바탕으로 볼 때, 감정을 바라보는 슐라이어마허, 스위하트, 에드워즈의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먼저 세 사람의 공통된 인식은, 감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좋은 것이라는 점이다. 즉,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임에 대해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와 스위하트의 공통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와 에드워즈의 공통점은 인간에게는 이해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직관과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슐라이어마허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정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잘못 되었던 것이다.
감정의 역할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그러나 감정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이것을 넘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는 감정의 역할을 더 상향조정하고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지성, 즉 직관이 감정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경건하다는 것이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이다. ‘절대의존감정을 통해 느끼는 하나님’, 그것을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 충만한 이가 예수요 교회는 성도들이 절대의존감정을 풍성이 가지도록 그것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이와 정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칼빈은 아담이 처음에는 바른 지성을 충분히 소유했고, 그 지성으로 감정을 복속시켜 조절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감정은 철저히 하나님이 주신 지성에 종속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칼빈의 견해 인 것이다. 그래서 감정이 지성에 종속될 때, 비로소 바른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김남준 목사도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김남준 목사는 신자의 삶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지성과 감정이라고 했다. 지성을 통해 사물을 식별하고 감정을 통해 그것에 대한 좋고 싫음에 대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지성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추구하려 할 때 감정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지성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그렇게 지성의 지배를 받는 감정이야 말로 바른 역할을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이 감정을 주신 이유를 로마서 12장 11절, 신명기 6장 4-5절, 신명기10장 12절, 신명기 30장 6절 등을 근거로 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감정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지 하나님을 판단하는 기준, 신앙의 기준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스위하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감정을 인간이 가지고 있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자녀가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었을 때,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듯이, 삶 속에서 인간이 감정을 사용하면서 무한하신 하나님 또한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정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뿐, 하나님을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수단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감정의 역할에 대한 규정에서 인식이 명확히 나눠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감정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감정의 두 얼굴
감정이 신앙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감정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인간을 바르게 이끌 수도 있고,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슐라이어마허도 이점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종교의 본질을 감성적 감정이 아닌 종교적 감정, 즉 절대의존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의 글 어디에서도 감성적인 감정과 종교적인 감정사이의 명확한 한계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모든 감정이 종교의 소유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슐라이어마허는 감정을 ‘종교가 서 있는 토대’라고 생각하여, 감정이 종교의 전부인 것 같이 강조한 결과, 종교적인 감정과 감성적인 감정을 명확히 구획 지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에드워즈는 감정의 두 얼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영적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거짓 영적 감정)으로 나눈다. 에드워즈는, 인간의 감정이 성령의 감동 속에 있을 때는 긍정적인 감정으로서 좋은 역할을 감당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간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감정은 결코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이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스위하트는 감정이 두 얼굴을 지니게 된 궁극적인 원인을 인간의 죄성(罪性)을 틈타고 들어온 사단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위하트는 인격적 존재인 사단이 정서의 영역을 공격하여 우리의 감정을 뒤틀어 놓으려 한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인간에게 생긴 걱정, 염려, 죄의식 등의 불편하고 비참한 감정들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반역한 결과로 생긴 감정이라고 스위하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죄성으로 인해 언제든지 사단에 의해 점령당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와 신앙의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김남준 목사는 감정이 지성에 통제를 받을 때는 은혜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감정이 죄의 지배를 받게 될 때, 신자는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의 지도를 받으며 지성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는데 그 결과 나타나게 되는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신자가 감정의 잘못된 쓰임으로 인해 죄를 범하게 될 때 결국 죄의 지배를 받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김남준 목사는 말하고 있다.
감정의 바른 쓰임
그렇다면 감정이 하나님이 주신 원래대로,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하는 통로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절대적인 기준인 특별계시에 의존한 감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정에 의존한 신앙이 아닌, 특별계시에 의존한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인간이 긍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15장 14절, 요한일서 3장 3, 7절, 고린도전서 6장 9-10절을 근거로 말씀에 지배를 받아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순종의 삶을 살 때 가능하다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감정이 올바르게 사용되려면 특별계시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하트 또한 감정은 특별계시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감정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잘 사용하려면 솔직함을 배워 한다고 스위하트는 말한다. 특히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 솔직해 지는 것이야 말로 감정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스위하트는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 솔직해 지는 것이야 말로 감정을 다스림에 있어 그리스도인들만이 지닌 힘이라고 스위하트는 강조하고 있다. 즉, 감정이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 말씀의 묵상을 통해 감정이 다스려질 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감정이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되고, 감정은 특별계시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남준 목사 또한 감정이 바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으로 특별계시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남준 목사는 성령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가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성령께서 특별계시를 사용하여 신자의 감정에 붙어 있는 죄의 세력들을 죽이실 때 죄의 지배 상태가 아닌 은혜의 지배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남준 목사도 감정이 자기 자리와 자기 모습을 회복하는 길은 특별계시를 통해 회복되는 길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 의존신앙과 특별계시 의존신앙
앞의 글에서 밝혔듯이 감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스위하트는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고, 에드워즈는 감정은 인간의 이해력을 강렬하게 표출해주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정은 사단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처럼 감정이 신앙생활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주신 지성, 특히 특별계시의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고 칼빈, 에드워즈, 스위하트, 김남준 목사 등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처럼 감정의존신앙이 아닌, 특별계시 의존신앙이 진정한 신앙생활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의무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 1895-1987)은 현재의 일반계시만으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창조주로 바르게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별계시에 의하지 않고서는 이 자연이 무엇인지, 즉 창조되었는지, 섭리되고 있는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지 등에 관해서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계시에서 계시하신 대로 사물을 관찰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반틸은 주장한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특별계시인 성경을 안경(쓰지 않으면 안 보인다), 실(성경을 잡아야 빠져나온다), 학교(성경에서만 배워야 한다) 등에 비유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특별계시에 의존한 신앙생활을 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아래의 글을 통해 특별계시에 대한 칼빈의 분명한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참된 종교의 빛을 받기 위하여는, 마땅히 하늘의 교리에서 그 시초를 찾아야 하며, 그리고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않고는 아무도 참되고 건전한 교리를 극히 일부분이라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신에 대하여 증거 하고자 하신 것을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참된 이해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Ⅰ.6,2)
앞의 칼빈의 글과 관련해 반틸은, 과학이 다루는 자연적 지식과 역사적 사실들의 영역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 의해서는 바르게 해석될 수 없다고 까지 말했다.
박형룡 박사(1897-1978)는 신학의 유일한 원천, 원리를 특별계시로 보았다. 원천이란 기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학의 원리에는 존재의 원리와 인식의 원리가 있다. 존재의 원리란 하나님의 지식은 스스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식의 원리란 그 하나님의 지식을 외적으로는 특별계시를 통해 인식할 수 있고, 내적인식으로는 믿음, 성령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첫 번째 길은 특별계시인 것이다.
죄로 타락한 인간에게 일반계시는 참된 지식이 되지 못한다. 감정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다 확실하고 직접적 방법으로 특별계시를 주신 것이다. 즉 일반계시는 불충분하나, 특별계시는 충분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일반적 특별계시로 가르치시는 것이다.
이처럼 특별계시에 의존해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요,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사람의 유일한 인식론적인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슐라이어마허는 왜 감정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아 감정의존적인 학문과 신앙생활을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가 처한 시대와 환경의 영향 때문이었다.
슐라이어마허에게 미친 시대적 영향
슐라이어마허의 종교적 배경은 바로 모라비안(Moravian)의 경건주의(Pietism)였다. 슐라이어마허는 모라비안 공동체를 통해 신앙의 각성을 체험했고, 1783년 니스키(Niesky)에 있는 모라비안 교단의 학교에 입학해 경건훈련을 통한 종교적 감화를 받았다. 니스키에서 학생으로서의 슐라이어마허는 세 가지를 경험하게 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 거의 광적으로 헌신에 참여하는 것, 둘째로 젊은 친구들과 공동 연구에 참여하여 행복을 경험하는 것, 셋째로 인본주의교육 등 이었다. 슐라이어마허는 니스키에서 경건생활과, 교우관계, 교회활동 등을 경험한 후, 1785년 발비(Barby)에 있는 모라비아 신학교에 입학한다. 이 신학교는 모라비안 공동체의 신학자들과 교사들을 양성하는 곳이었는데, 신학생들을 전형적인 경건주의적인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론교육 보다 종교적 경건성을 강화시키는 것을 주안점을 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여기에서 2년을 머물게 된다. 이를 통해 종교의 정서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종교의 본질을 감정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의 철학적 배경은 칸트철학이었다. 슐라이어마허는 1787년 할레대학(Halle Universitaet)에 들어가 칸트를 접하면서, 신학계와 철학계를 지배하던이성주의(Rationalism)와회의주의(Skepticism)의 도피처를 칸트의 실천이성(Praktische Vernunft)에서 찾게 된다. 슐라이어마허는 당시 할레대학의 철학교수였던 에베르하르트(Johann August Eberhart)에게서 칸트의 철학 체계와 칸트에 대한 비평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고, 그 결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도 번역하게 된다. 그리하여 슐라이어마허는 할레대학에서 칸트철학과 희랍철학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 결과 슐라이어마허는 계시나 종교적 전통에 근거하지 않고, 칸트와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아 경험의 한 부분인 감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적 배경은 낭만주의(Romanticism)이다. 그는 1796년부터 시작된 베를린자선병원(Berliner Charite) 원목 시절 낭만파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이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상상력과 직관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1797년에 유명한 낭만주의자 프레드릭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이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그와 교제하였고, 그 결과 ‘종교론’(Reden Uber die Religion, 1799)과 ‘독어록’(Monologrn, 1800)을 저술하게 된다. 특히 그의 책, ‘종교론’을 읽어보면, 낭만주의적인 언어와 문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가 특별계시의존신앙이 아닌 감정의존신앙을 형성하게 된 것은 환경의 영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슐라이어마허가 특별계시의존신앙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는 개혁주의 목회자나 스승, 주변인의 영향을 받았다면, 현대신학의 판도는 자유주의가 아닌, 개혁주의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처럼 환경의 영향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21세기, 감정의 시대
오늘날은 슐라이어마허가 생활했을 때 보다 더 감정적인 사회이다. 절대 기준이 없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사회인 데다가, 이성보다 감정이 우선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둘째 치고, 교회 또한 감정에 물들어 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교회정치제도는 장로교가 우세했지만, 신앙형태는 순복음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별계시의 원리에 대한 탐구와 실천보다, 성령체험으로 대표되는 감정적인 뜨거운 체험과 신유, 방언과 같은 신비한 경험을 강조하는 순복음적인 신앙형태는, 감정에 치우친 20세기 한국교회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00년을 전후로 해서, 순복음의 영성에 시달린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이번에는 시대에 편승(便乘)해 부흥(?)하고 있는 가톨릭교회(The Roman Catholic Church)의 ‘뜨레스띠아스’(Tres Dias), ‘레노바레’(Renovare), ‘관상기도’(Contemplation pray) 등과 같은 카톨릭 영성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를 통해 신유, 축복 등으로 순복음화 된 교회를 차분히 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운동의 공통점이자 문제점은 특별계시보다 감정과 체험을 우선시 한다는 점이다. ‘뜨레스띠아스’는 상징(象徵), 성상(聖像) 등은 사용하나 특별계시인 성경은 사용하지 않는다. 설교는 없고, 강의나 간증만 있다. 강의나 간증도 목회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가 한다. 왜냐하면 이 운동의 태동 자체가 사제들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평신도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레노바레’, ‘관상기도’ 또한,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감정과 체험에 치우쳐 중보자 없이 직통계시(直通啓示)를 통한 신행합일(神行合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유는,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특별계시를 통한 성도들의 변화와 성장을 신뢰하기보다, 교회 부흥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감정과 체험으로 성도들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정이 우선하는 시대에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특별계시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전제를 마치며
감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소중한 정신작용이다. 그러나 이 감정이 신앙생활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오직 특별계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감정이 우선하는 사회와 교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성도들과 믿음의 자녀들을 특별계시 의존신앙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슐라이어마허의 경우를 반성적으로 적용해 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먼저 목회자부터 특별계시 의존신앙을 인식론적 전제로 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여러 환경과 인간관계 속에서 특별계시가 전제와 기준이 되는 경험과 기회들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평소 규칙적으로 말씀읽기와 묵상의 훈련을 하게하고, 대화 속에서 특별계시를 인용하며, 판단의 기준을 특별계시에 두게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불완전한 감정에 기대어 살아가는 비(非) 그리스도인들과 많은 그리스도인들과는 다른, 든든한 반석 위에서 살아가는 평안과 능력을 구비한 개혁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으로 특별계시로부터 멀어진 교회와 신학의 분위기는 쉽게 수습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낙관론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것은 정통신학의 승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찾아온 패배주의와 좌절감 때문이었다.
폴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
1차세계대전(1914-1919)은19세기자유주의신학(:Liberal Theology)과 관념론적인 철학자들에게 재앙과 같은 일이었다. 전쟁의 참상으로 인해, 그동안 가져왔던 낙관적인 인간론과 진보적 세계관이 포기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선함과 과학의 발전을 통해 지상 유토피아(Utopia)를 건설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편승해,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들고, 칼 바르트(Karl Barth)를 중심으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등의 학자들의 신정통주의 신학(Neo-Orthodoxy Theology)이 탄생하게 되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초월적인 하나님은 부정하고 내재적인 하나님만을 강조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만 인정하고 신성은 부인했다. 이에 대해 신정통주의 신학은 자유주의신학의 비관적인 인간론과 구원론을 비판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기독론을 부활시켜, 그로 인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회복을 꾀했다. 그리고 신정통주의 신학과같은시기에실존주의철학(Existentialism)의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자적 시각에서 기독교를 재해석하려는 죄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과 같은 신학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들과 흐름을 같이 하면서 실존적 상황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하려고 했던 신학자가 바로 폴 틸리히 인 것이다.
상황 (Context)
실존주의 철학과 폴 틸리히
폴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독일의 브란덴부르크지방의 스타르체델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루터교의 목사였으며 그는 주로 쉔플리스 뉴왁과 퀙닉스 빌크뉴왁이라는 중세풍의 도시에서 자랐다. 이런 환경은 그의 마음에 낭만적, 신비스러운 특성으로 남아 과거에 대한 예리한 감각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길러 주었다. 1904년-1909년 사이에 그는 베를린, 튀빙겐, 할레의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수학하고 1912년 셸링의 연구로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는 그 후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거기에서 1923년-1929년까지 철학교수로 있었던 하이데거를 통하여 실존주의를 접하게 된다.
틸리히는 실존주의 철학으로 기독교의 신학을 해명하려고 했다. 그 결과 틸리히가 밝히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철학적인 존재론적 추리의 결론으로서의 하나님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 소외의 해결을 위한 새 존재로 이해함으로 역사적인 예수에는 별 의미를 두고 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틸리히의 시도가 현대인의 철학적 고민 속에서 신학적 해답을 주려고 시도한 변증적 동기라는 점은 인정하겠으나, 결과적으로 그가 현대인에게 소개한 기독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믿었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실존주의의 옷을 입힌 한갓 철학적 관념론에 그치고 만 것이다.
틸리히는 결국,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정통주의 신학을 거부한 결과, 토마스 알타이저(Thomas J. J. Altizer)를 대표로 하는 사신신학(Theology of Death of God)을 낳는 산파(産婆)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사신신학의 대표자인 알타이저가 바로 틸리히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알타이저는 틸리히의 신학적 업적을 “20세기의 신학자들 중에서 오늘의 사고방식으로 현대 신학을 수립한 유일한 신학자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틸리히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 1968년 10월 알타이저가 틸리히가 가르치고 있던 시카고대학교(Chicago University) 신학대학의 초청을 받아, 그 때 한창이던 ‘사신신학’을 강의했다. 그 강의를 듣고 알타이저의 극단적인 사상에 놀란 틸리히는 알타이저를 불러, 어떻게 그런 무신론(Atheism)적 결론에 이르게 되었느냐고 묻자, 알타이저는 “당신이 가르친 신학 때문이었습니다(You fathered me).”라고 대답 했다고 한다. 틸리히가 알타이저의 강의를 듣고 놀란 이유는, 틸리히는 무신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루터교(The Lutheran Church) 목사의 아들로 자랐고, 루터파 신학자로서 결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이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한 구원(Salvation by Grace Through Faith)’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틸리히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신론자가 아닌 틸리히가 사신신학의 산파역할을 하게 된 것은, 특별계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 상황에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상황과 기독교
기독교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초대교부였던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 같은 이는 “아덴이 예루살렘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상황을 고려하는 것 자체를 죄악 시, 대립 시 했다. 반면에 B.C. 2-3세기에 존재했던 알렉산드리아학파(Schola Alexandrina)는 상황신학의 모델 케이스가 될 정도로 상황을 신학에 많이 고려하였다. 상황은 기독교 내에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폴 틸리히(Paul J. Tillich: 1886-1965)의 신학을 통해 그 중요성을 자리잡아가기 시작하더니, 해방신학, 민중신학과 같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고려한 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교적 측면에서도 크게 강조되기 시작했는데, 1972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의 신학교육기금(Theological Education Fund)에서 ‘상황 속의 사역’(Ministry in Context)이란 보고서를 내 놓게 되었고, 그 후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어 상황을 고려한 선교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황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히버트(Paul Hiebert)는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로 ‘상황과 기독교를 대립적으로 보는 경우’인데, 기독교는 모든 인간 상황으로부터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기독교와 상황을 구별해야 하는데, 이것에 실패함으로써 기독교가 전파될 때 서양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견해는 기독교는 상황과 관계없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는 경우’인데, 기독교가 상황과 구별된 것이라 해도 상황 안에서 표현되므로 상황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와 상징, 형식으로부터 분리된 기독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상황 안에서 재탄생해야 한다는 것이 이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는 ‘기독교가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보는 경우’인데, 상황이란 기독교의 계시가 구체화 된 것이므로 기독교의 계시를 통해 판단하고 바꾸기 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견해들 중, 틸리히의 견해는 두 번째,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는 경우’이다.
상황을 전제로 한 신학방법론
틸리히는 기독교 진리를 삶의 상황과 연결시켜 재해석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틸리히는 20세기 최대의 철학적 신학자, 문화 신학자의 자리를 얻게 되었다. 틸리히가 현대인의 철학적 고민 속에서 신학적 해답을 주려고 한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현대인에게 소개한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산 신앙이 아니라, 관념적인 하나님을 믿는 죽은 신앙인 것이다.
이렇게 틸리히의 신학이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되게 된 이유는 ‘두 주인을 꼭 같이 존중하고 섬기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진리’와 ‘상황’이라는 두 가지 대상을 만족시키려 한 결과, 결국 기독교 진리가 상황에 의해 재해석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틸리히는 그의 대표작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서론에서 신학의 기능과 정통신학의 문제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신학체계는 다음과 같은 교회의 두 가지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독교 메시지의 진리를 진술하는 일과 이 진리를 모든 새로운 세대를 위해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 유럽 정통주의 신학(Theological Orthodoxy)과 미국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과거의 상황으로부터 말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과 접촉할 수 없다.
틸리히는 ‘기독교 진리’와 ‘상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유럽의 정통신학과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이 '변화하지 않는 진리'(Kerygma)를 너무 강조하여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신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루터가 신학 교리를 형성할 때 그의 유명론적인 지식과 멜랑히톤의 인본주의적인 지식을 사용하였음을 인용하면서 상황은 신학작업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칼 바르트가 상황의 빛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수정한 것은 긍정적인 업적이지만 여전히 정통신학에 매여 있었던 케리그마 신학자였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틸리히가 말하는 ‘상황’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상황은 우리가 처해있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현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틸리히의 상황이란 ‘해석된’ 상황이며, ‘총체적인’ 상황을 뜻한다. 해석된 상황이란, 객관적으로 제시된 상황이 아니라 개인이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경험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총체적 상황이라는 뜻은 철학뿐만 아니라 시, 드라마, 소설, 치료심리학, 사회학 등 우리가 속한 시대의 전체에 대한 상황을 말한다. 그래서 폴 틸리히를 한편으로는 ‘문화 신학자’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실존적으로 해석된 상황과 총체적 상황에 대한 질문에 대해 교회는 대답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틸리히의 주장이다.
틸리히가 기독교 진리와 상황을 연결시켜 세상에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한 신학방법론은 ‘상관관계의 방법(The Method of Correlation)’이다. 상관관계의 방법에 대해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조직신학은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해 전개된다. 조직신학은 인간의 상황을 분석하여 실존적인 물음을 제시하고, 기독교의 메시지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상징이 이 물음에 대한 대답임을 논증한다.
틸리히는 ‘상관관계의 방법’에 의거해 철학과 신학을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종합했다. 다시 말해 철학은 인간이 실존적 상황 속에서 물어야 할 물음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신학은 우리로 하여금 실존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준비케 한다는 것이다. 틸리히는 이런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한 신학자로 칼빈을 지목한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 1권 1장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을 연관시킬 때, 인간 자체의 교리나 하나님 자신의 교리로 설명하고 있지 않고, 실존적 차원에서의 인간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영광의 상관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칼빈은 그의 신학체계 첫 문장에서 상관관계의 방법의 본질을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틸리히는 이 상관관계의 방법을 바탕으로 신학체계의 구조를 수립하고 있다. 그의 신학체계는 아래와 같다.
나의 신학체계는 제5부로 구성되어 있다. 몇 가지 이유로 볼 때, 신론보다 인식론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의 인식의 합리성을 분석하고, 이성의 유한성, 자기소외, 모호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들을 분석한 후에 이에 대한 대답이 계시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1부는 인간의 본질적 본성과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물음들을 분석한 후에, 이에 대한 대답이 하나님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제2부는 인간의 실존적인 자기 소외와 이런 상황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 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답이 그리스도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제3부는 인간의 삶과 삶의 모호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답이 성령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역사적 실존을 분석하고, 역사의 모호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들을 분석한 후에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하나님 나라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의 ‘조직신학’은 모두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성과 계시’, ‘존재와 하나님’, ‘실존과 그리스도’, ‘생명과 성령’,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의 다섯 가지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는 계시와 상황을 상관 관계적으로 연결시킨 그의 신학방법론을 정확하게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관관계의 방법을 적용해 다섯 가지의 질문에 대해, 기독교적인 답변을 내리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틸리히는 1권 전반부에서 ‘이성과 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틸리히는 이성을 존재적 이성과 기술적 이성으로 나눈다. 존재적 이성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이성이해로, 이성을 세계 구성의 원리, 운형의 원리인 로고스(Logos)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적 이성은 영국의 경험론의 등장 이후로 생긴 이성의 종류로, 세계를 분석하고 통제하여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과학적인 인간의 인식능력을 뜻한다고 말한다. 원래는 존재론적 이성 밖에 없었으나, 근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기술적 이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종교를 미신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존재적 이성과 기술적 이성은 함께 사용해야 적절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고 틸리히는 지적한다. 틸리히의 이성에 대한 견해는 주로 존재론적 이성에 대한 사유로 집중된다. 존재론적 이성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계시와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틸리히는 존재론적 이성은 시공간에 나타날 때 유한해져서 ‘현실적 이성’이 된다고 말한다. 틸리히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정신과 실재의 구조로서의 이성의 존재와 실존과 삶의 과정을 통해서 현실적이 것이 된다. 여기서 존재는 유한한 것이고, 실존은 자기 모순적인 것이며, 삶은 모호한 것이다. 현실적인 이성은 실재의 이러한 특징들에 참여한 이성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이성은 유한한 범주와 자기 파괴적인 갈등과 모호성에 종속되어 있는 이성이며 또한 이러한 종속으로 인해서 모호하지 않은 것, 갈등을 넘어서 있는 것, 범주에 대한 예속을 초월해 있는 것을 요청하고 있는 이성이다.
틸리히는 존재적 이성이 실존적인 시공간 속에서 현실적 이성이 된다는 것은 자기모순과 모호함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모순과 모호함이란 실존적 조건들에 예속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긴장과 갈등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긴장과 갈등으로 분열 왜곡된 현실적 이성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방법이 바로 계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시에 대한 틸리히의 이해는 어떠한가? 틸리히의 계시에 대한 이해는 아래와 같다.
계시는 감추어져 있는 어떤 것이 그 베일을 특별하고 비범한 방식으로 벗는 특별하고도 비범한 현현이다. 여기서 감추어져 있음은 자주 ‘신비’라는 말로 일컬어져 왔는데 이 말 또한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의 넓은 의미는 고등수학의 신비와 성공의 신비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이야기들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반면에 이 말의 좁은 의미는 본질적으로 신비한 것, 곧 만일 그것이 그의 신비한 성격을 상실하면 그 자신의 본질을 상실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지시하고 있다.
틸리히는 계시를 ‘신비의 드러남’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 정보의 드러남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곳에 있는 존재의 궁극적 관심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신비의 드러남을 통해 현실적 이성은 치유되고 구원 받게 된다는 것이 틸리히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틸리히가 말하는 계시와 기독교의 특별계시는 같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래에 틸리히의 글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계시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도 아니고 심지어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도 아니다. 계시는 종교적인 영역 밖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종교 속에는 계시가 아닌 것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계시는 종교와 비종교를 똑같이 심판한다. 또한 계시는 지금까지 발생했던 모든 계시들의 역사도 아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계시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오직 계시적인 사건과의 실존적인 관계의 토대 위에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인류의 모든 말씀들이 계시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통교회가 특별계시만을 계시로 인정하는 것에서 확장된 견해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틸리히의 계시관은 실존과 관련되어야만 진정한 계시가 되기 때문에 기독교의 특별계시만이 진정한 계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틸리히는 실존, 상황 의존적 신학자임이 명백해진 것이다.
다음으로,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정의하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틸리히는 하나님에 대해 사람들에게 답변하기 위해 철학에서 사용하는 존재론적인 질문 ‘왜 무엇이 존재하는가?’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의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영원을 그리워하며 무로 돌아가게 되는 불안정한 존재가 있고, 둘째로 그것에 속하지 않는 존재 자체인 궁극적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궁극적 존재, 존재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틸리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신’은인간의유한성이안고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즉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에 대한 이름이다.(Heis the name for that which concerns man ultimately).
틸리히는 신이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의 대상, 존재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주장한다거나 신에 대해 궁극적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궁극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존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틸리히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불안정한 존재인 우리를 위협하는 비존재에게서 저항할 힘을 주어서 치유하고 구원하는 역할을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시기 때문에 불안정한 존재들이 지니는 인격을 지닐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으로 표현한 것은 인간이 인격적인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그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틸리히는 하나님을 존재 자체라고 하지만 결국 물질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 또한 그의 신학에 희생되어 불가능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정의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틸리히는 불안정한 존재 중 하나인 인간이 비존재들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실존적 상황을 질문으로 던지면서 그에 대한 해답으로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고 있다. 먼저 틸리히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틸리히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한다. 아래의 틸리히의 글을 읽어보자.
기독론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의 이름을 우선적으로 가이사라 빌립보 이야기의 빛 속에서 해석하는 일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성과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그것은 AD.1년에서 30년 사이에 나사렛에서 살았던 어떤 사람의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칭호의 결합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만 한다.
틸리히는 예수는 팔레스타인에 태어난 인간 예언자를 말하고, 그리스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예수와 그리스도가 비존재의 위협 속에서 고난당하는 실존적인 인간들에 의해 인간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될 때, 예수 그리스도는 비로소 메시아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틸리히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기보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로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틸리히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스도는 일생동안 불완전한 존재들이 겪는 소외와 위협을 겪지 않고 하나님과 연합하신 실존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인간이 겪는 불신앙, 오만, 정욕의 위협들을 다 겪으셨으나 그것에 의해 소외되지 않으시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그렇게 하나님과 연합된 완전한 실존이자, 소외의 위협 속에서도 소외되지 않은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이고, 팔레스타인에 나타난 예수가 그리스도로 인식되고 그분을 실존들이 고백하게 되어질 때 기독교는 출발되고 구원은 이뤄진다고 틸리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틸리히의 견해는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와 다르게 인간의 육신에 임한 하나님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와 맥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틸리히의 구원관은 확실하다. 틸리히는 루터파 신학자로서 은혜를 통한 구원, 즉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생기고,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아래의 틸리히의 글을 읽어보자.
은혜는 우리가 가장 큰 고뇌와 불안 속에 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외침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 합니다. ‘너를 용납하신다. 너를 용납하신다는 것은 너보다 위대한 자가 너를 용납하신다는 말이다. 너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아직은 그의 이름을 묻지 말라. 어쩌면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아무것도 하려고 애쓰지 마라. 머지않아 더 많은 것을 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우리는 은혜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은혜는 죄를 극복했으며 화해는 분리된 심연에 다리를 놓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에는 종교적 전제도, 도덕적, 이성적 전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용납의 경험인 은혜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중보자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틸리히는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틸리히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속죄주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틸리히는 속죄를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소외의 상태 속에서 새 존재에 의해서 사로잡히게 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효과”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죄의 해소가 속죄가 아니라,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와 같은 새로운 존재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그리스도는 비존재의 위협에도 오염되거나 소외되지 않은 완전한 새로운 존재일 뿐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속죄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케 하는 매개체로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성경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개인적 사유에서 나온 철학적 결과물일 뿐인 것이다.
다음으로,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정의하는 성령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틸리히는 성령을 “영적현존(성령)은 인간의 영을 모호하지 않은 생명의 초월적인 결합 안으로 상승시켜 하나님과 재결합의 직접적인 확실성을 주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틸리히는 모든 생명현상이 모호성에 감춰져 있다고 말하면서, 그 모호성을 극복하고 온전한 생명으로 승화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틸리히는 생명을 단순히 호흡하는 존재만을 말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나타난 모든 존재들로 확장시키고 있는데, 바위, 산, 강, 바다 등은 무기적 차원의 생명으로, 식물, 동물 등은 유기적 차원의 생명, 그리고 인간은 역사적 차원의 생명으로 본다. 이 생명에는 모호성이 존재하는데 틸리히가 말하는 모호성이란 단순히 불명확하고 애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생명 안 존재하는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신적인 것과 마성적인 것, 생명과 죽음 등의 공존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호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모호성은 영적 현존, 즉 성령의 임재 속에서 극복되고 승화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성령의 특징, 말씀을 깨닫게 하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역할과는 거리가 먼 이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가 교회 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일어난다고 말한다. 틸리히의 견해에 따르면 영적 공동체는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현존인 성령의 임재를 통해 모호성이 극복된 곳 또한 영적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틸리히는 영적 공동체를 교회를 넘어 타종교, 문화, 조직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범신론적인 견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정의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틸리히는 먼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 갖는 역사의 의미를 살핀 다음, 하나님 나라는 그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모호성을 극복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역사의 종말이 곧 하나님 나라라고 답하고 있다. 틸리히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내재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인격적으로 생명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나라로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내재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성취의 초월적 요소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 비판
앞의 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틸리히는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하여 철학적인 질문들을 신학적으로 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으로 정의된 하나님은 존재 자체로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분이 아닌 물질로 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실존적 소외와 위협을 겪지 않은 실존의 완성으로 이해하여 구속주가 아닌 모범으로 이해하고 있고, 영지주의적인 그리스도관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성령은 말씀을 깨닫게 하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분이 아닌 생명현상의 모호성을 극복케 하는 존재로 이해하고 있고 성령의 임재는 교회 밖에서도 이뤄진다고 주장하면서 범신론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틸리히의 신학이 변질되게 된 것은 특별계시를 무시한 채 상황을 기독교의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비(非) 기독교∙탈(脫) 기독교화의 위험성
상황이 기독교의 인식론적 전제가 될 때, 기독교는 비 기독교화, 탈 기독교화 되게 된다.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아 기독교 아닌 기독교, 기독교에서 벗어난 기독교가 되고 만 경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바로 시대적 상황을 전제로 신학을 재편한 1950년대 남미의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과 1970년대 한국의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신학’이란 남미대륙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신학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이른바 ‘제3세계’라고 불리는 여러 국가들은, 국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세력으로 부각되었다. 그들은 식민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실질적이고 전체적인 해방을 추구하면서, 기존 강대국 중심의 질서에 대해 근본적인 재편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와 같은 경향은 특히 외국의 경제적 침략과 정치적 간섭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혁명적 엘리트들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제3세계의 사회정의, 가난, 인권 등의 정치 경제적 문제를 복음에 어떻게 상관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해방신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해방신학의 문제점은 현실적 부정의를 철폐하고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자는 실천사상(Praxis)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아, 전통신학을 재해석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신학의 문제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로 전통신학이 현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통신학은 배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점이고 둘째로, 성경은 보조적 역할만 하지 결정적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신학자들은 성경이 아닌 막스주의적 사회분석방법론을 활용해 사회를 분석한 후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 신학’은 해방신학이 70년대 초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생긴 것이다. 한국교회가 점차 중산층화 되면서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보수신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태동된 신학인 것이다. 민중신학은 1960년대 이 후 진행된 근대화 작업으로 야기된 산업화, 도시화로 변화된 상황 속에서 교회의 선교적 과제를 안고 씨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한국의 상황 신학이다. 민중 신학의 문제점은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성경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상황을 동일선상, 혹은 상황을 우위에 놓고 해석하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성경의 해석을 정치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예수를 사회운동가로, 기독교를 가난한 대중들의 사회운동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결국 신학을 신학으로써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황과 목적에 맞는 이데올로기로 변용시켜 사용한 것이다.
해방신학, 민중신학과 같이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아, 상황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고, 전통신학을 재해석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 기독교에서 벗어난 기독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틸리히의 신학사상에는 비 기독교화, 탈(脫) 기독교화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틸리히의 신론에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통신학과 완전히 관계없는 교리인 것이다. 틸리히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적인 하나님도 아니고, 우리와 사귐이 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도 아닌 비 기독교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틸리히가 고안한 존재론에 기초해 ‘존재 자체’라는 표현을 빌어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범신론 사상과 같은, 탈 기독교적인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혼합주의(Syncretism)의 위험성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을 때 일어나는 두 번째 위험성은, 기독교가 토착 종교사상들과 혼합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기독교의 혼합주의화이다.
한국 기독교는 ‘유교화된 기독교’, ‘기복적 기독교’, ‘샤머니즘적 기독교’의 혼합주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윤성범 교수 등의 ‘삼위일체와 단군신화의 삼일신존’의 혼합사상, 변선환 교수 등의 기독교 밖의 타종교와의 대화 등 또한 한국 기독교의 혼합주의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변선환 교수는 ‘새로운 우주관, 인간론, 종말론을 겨레 앞에 제시하는 게 기독교 근대화의 시급한 과제’라고 말하면서 특히 한국 기독교는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을 오염시키고 인간을 파괴한 서구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된다고 원광대 학술강연회에서 밝힌 바도 있다. 변교수의 혼합주의적인 사상의 위험성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리 개신교만이 기독교의 참신앙이라고 고집하고 타종교를 비신앙이라고 규정해 버린다면, 기독교는 고립되고 말 것이다. 칼 바르트는 ‘예수의 이름이 없는 곳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했는데, 과연 오늘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예수의 이름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 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진언종과 기독교는 삼위일체의 교리 등 유사성이 아주 많다.
한국 기독교의 혼합주의화는 기독교가 상황을 성경과 동일선상에 놓고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틸리히의 신학에서도 혼합주의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틸리히가 1960년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 여행에서 일본 불교를 접하게 되었는데, 틸리히는 일본 불교의 신비주의와 기독교의 신비주의의 관련성 인식하고는 자신의 조직신학을 다시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나 그의 당시 나이가 74세였던 관계로 포기했었다고 한다. 이처럼 상황중심적인 그의 신학적 사고는 새로운 상황을 만나 약간의 공통점만 발견하게 되면 거리낌 없이 융합하려는 혼합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결과 기독교를 오염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의 위험성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는 모더니즘을 탈피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로 진입했다. 절대적 기준을 무시하고 모두가 기준이 된다는 상대주의적 개념이 인정되는 이 상황을 고려해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타 종교와 진지한 대화를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종교다원주의신학이 싹트게 되었다. 힉(John Hick)의 성육신의 신화, 파니카(R. Panikkar)의 보편적 기독론, 니터(Paul Knitter)의 관계적 유일회성 등이 종교다원주의신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힉은 1980년에 발표한 ‘God Has Many Names’를 통해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힉은 원래 개혁교회의 복음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신학자였다. 그런데 그가 사는 버밍햄 근처의 이슬람교, 시크교, 힌두교 및 유대교 공동체 속에서 그들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점차 그들에게 다가가게 되었고, 그는 여전히 예수를 그의 주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상황 속에서 그의 신학은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의 재편된 신학의 단면을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기독교는 역사적 체험의 내용과 사상, 영성에 있어서 각기 독특한 형태를 지닌 종교적 삶의 다양한 흐름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하나이자 유일한 것으로서가 아닌, 여러 가지 것 중의 하나로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수용한다.
힉은 세계의 종교가 다양하지만 궁극적인 실재는 하나라고 보았다. 단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르게 구현되었을 뿐이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구원은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파니카는 출생부터가 남달랐다. 스페인의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가톨릭 사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란 파니카는 모든 종교 안의 신비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을 아래의 글을 통해 살펴보자.
정상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길들이 사라진다면 정상 그 자체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정상은 어떤 의미에서 그에 이르는 경사진 길들의 결과일 뿐이다. 이름을 떠나서 실재가 별도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이 이러한 실재(궁극적 신비)가 많은 이름들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실재는 많은 이름들이고, 각각의 이름은 각각 새로운 측면들이다.
위의 글처럼 파니카는 전통종교들이 자신의 종교가 모든 종교를 대표하는 것을 독점하는 듯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결정적 규범성에 대한 전통적 이해에 도전했다. 파니카에 의하면 신의 구원의 길은 예수라는 인물 속에서도 계시되고 있고 타종교의 여러 위대한 성인들을 통해서도 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보편적인 기독론인 것이다.
니터는 예수 그리스도 구원사역의 유일회성을 거부한 신학자이다. 예수의 역사는 수많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의 역사 중 하나일 뿐이지 그 역사만이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의 역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연구해 보면 예수의 메시지의 초점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즉 신 중심적 메시지였는데, 초대교회가 이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한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는 사도행전 4장 2절이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고백적 언어일 뿐이라고 한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압도된 신자들이 고백했던 고백적 언어일 뿐이지 그것을 절대화해서 보편적 진리로 확대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 종교의 경전 속에 절대성을 나타내는 표현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기초로 해서 보편적 진리로 확대하는 것은 종교적 언어의 표현 양식을 모르는데서 기인된 잘못된 귀결이라는 것이다.
위 세 명의 종교다원주의신학자의 공통점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현 시대 상황에 편승해 타종교와의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상황을 비중 있게 다루게 될 때 기독교는 상대주의화 되어 지고 기독교 신학은 타 종교의 사상과 연관되어 재편되게 되며, 결국 다원주의로 흐르게 되고,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틸리히의 기독론을 살펴보면 종교다원주의적 요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틸리히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나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구세주가 아니라, 인간이지만 인격적 존재가 겪는 소외나 왜곡을 겪지 않으신 새로운 존재이고 우리의 모범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틸리히의 기독론에 대해 타바드(G. H. Tavard)는 이렇게 비판했다.
힌두교인이나 불교도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물탄 맛 잃은 기독론이다. 그들은 예수 자신만이 그리스도라는 사실만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틸리히의 이론 중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형룡 박사는 “틸리히의 방법을 부처나 공자를 묵상하는데 적용하여 동일한 구원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한 틸리히로 인하여 많은 후대 신학자들, 목회자들, 성도들은 기독론과 구원론에 적잖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상황 의존신앙과 특별계시 의존신앙
우리는 앞의 글에서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할 때 나타나는 위험성 들을 살펴보았다. 첫째로 해방신학, 민중신학과 같은 비(非) 기독교화, 탈(脫) 기독교화의 위험성이 있고, 둘째로 기복신앙, 샤머니즘 같은 토착종교와의 융합의 위험성이 있을 수 있으며, 셋째로 타 종교와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종교다원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틸리히의 신학을 개혁신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특별계시 의존신앙의 필요성
박형룡 박사는 틸리히의 신학을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해설한 기괴한 이론”이라고 비평했다. 틸리히의 신학은 성경의 주요 사상들과 용어들을 취해 자기중심적인 철학적 개념들과 표현들로 풀이해 놓은 비성경적 신학이고, 자유주의 중에서도 과격한 자유주의 신학이므로 그를 미국으로 초청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도 틸리히의 신학을 비평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형룡 박사는 틸리히가 강조한 상황에 대해서도 원칙이 아닌 실존적인 실재를 너무 강조한 그릇된 행위라고 평가했다. 원칙이 없이 실재를 강조하면 평가의 기준을 상실하게 되고, 평가의 기준이 상실될 때 사회는 도덕적으로 봐서도 무질서 하게 된다는 것이 박형룡 박사의 주장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의 교훈에서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상황을 위해 이따금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거슬러 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상황을 기준으로 하여 생기는 여러 가지 신학적,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성경을 절대기준으로 삼는 것이라고 박형룡 박사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서철원 교수는 철학과 신학의 긴밀함을 통해 실존의 문제들에 대해 답을 제시하려는 것은 좋았으나, 하나님을 하이덱거의 존재철학에 기반하여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존재의 지반, 존재의 자체로 본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동일하게 실존의 조건에 종속된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큰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틸은 틸리히를 “자신의 자충족적 방법으로 기독교와 개혁신학을 재해석 하려한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방법으로 성경적 사고를 삼켜 새로운 체계를 산출해 버렸다고 틸리히의 신학을 비평하면서, 틸리히를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빠져 현대인에게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복음의 내용을 포기한 신학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틸리히는 자연인이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잘 분석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는 그가 제시하는 질문에 답하는 필요만을 갖는다고 생각했다고 반틸은 지적한다. 이러한 틸리히의 신학적 접근방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말씀이 의원되어 상황을 진단하고 다스리게 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상황 의존신앙의 결과물 W.C.C.
그러나 애석하게도 21세기는 점점 상황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아 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현대교회운동이 에큐메니칼 교회일치운동인 WCC운동인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창립되어, 현재 120개국의 349개 교단에 속한 5억6천만의 회원들을 두고 있는 초대형 단체이다. 한국교회에서는 대한 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기독교 대한 감리회가 가입되어 있다. W.C.C.운동의 핵심은 사회적 책임, 개발과 발전, 정치, 사회적 해방운동, 정의, 평화, 창조의 보존을 추구하는 사회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르크스주의적 해방신학, 민중신학을 수용하여 인종차별, 남녀불평등, 인권운동, 산업선교, 정치적, 경제적 지배와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해 왔다.
W.C.C.의 문제점들 중 가장 큰 문제점은 포스트모더니즘 상황 속에서 상대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1961년 3차 뉴델리 대회에서 부터 타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5년 뱅쿠버 총회에서는 타 종교 지도자 15명이 참석했고, 그 중 5명이 주제강연을 했으며 타종교와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리고 1991년 7차 캔버라 총회에서는 전형경의 초혼제를 비롯해서 온갖 영들을 불러들이는 굿을 하였다. 원래 W.C.C.도 타종교를 ‘죽은 신앙’이라 불렀는데 1970년대부터 ‘살아있는 신앙’(Living Faith)이라 부르다가 결국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양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W.C.C.계열의 신학자들의 주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니터는 아예 그리스도 밖에 구원의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면서 기독교는 구원에 이르는 많은 길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둘째로,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셋째로, 한국 감리교신학대학 교수 변선환은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태도이며, 구원의 길은 여럿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W.C.C.의 문제점은 그리스도를 떠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것이다. 최근 W.C.C.의 문건을 보면 성도의 교제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보지 않고 말씀과의 만남으로 보고 있다.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교회는 자신들이 말씀과 만남으로써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면 자신들의 성실한 답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교제이다. 그것은 성도들의 교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W.C.C.의 기독론적 이해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W.C.C.는 우리가 받은 성령이 그리스도께서 인성 가운데 받은 성령과 동일하다는 측면에서만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인간이나 성령 받은 그리스도나 다를 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W.C.C.의 교회 일치는 그리스도가 빠진 교회일치가 되는 것이고, 이는 결국 기독교를 포기한 기독교 일치운동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세 번째로 W.C.C.운동이 가지는 큰 문제점은 성경을 비판하는 태도이다. W.C.C.에서는 노골적으로 ‘우리는 성경을 비판하며 심판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이 통합의 힘이 되기도 하지만 교리적 문제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게 한 원인이 되기 때문에 비판받고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지 그 자체만이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는 도구일 뿐이지, 무오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신정통주의의 실존주의적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문병호 교수는 2010년 열린 ‘미래목회포럼’에서 발표를 맺는 글에서 W.C.C.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개혁교회는 역사상 하나의 분파가 아니라 오직 성경의 반석 위에 서 있는 유일한 교회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성경적 현실주의(Biblical Realism)라는 이름으로 진리를 정황(상황)에 종속시킬 수 없다. 어찌 개혁교회의 진리를 로마 가톨릭의 진리의 계층질서(Hierachy of Truths)에 편입하겠는가? 어찌 진주를 돼지에게 줄 것인가? 어찌 극상품 포도나무를 주셨는데 들포도를 구하고자 하는가? 성경적 에큐메니즘, 초대교회 이후 교리사상 전개된 진정한 에큐메니즘은 성경의 참 진리를 수립하고자 추구되었다. 교리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단지 모이기만을 추구하는 W.C.C.는 성경의 진리를 떠나 있으며 교회의 정통 교리를 벗어나 있다. W.C.C.의 그럼에도 불구하고(Quamvis)의 신학은 자체로 헛되다. 성경은 헛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 여긴다.
문병호 교수의 지적처럼 교회는 성경이라는 전제를 떠나서는 일치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런데 W.C.C.는 상황에 성경을 종속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보다 상황을 우선시 하는 W.C.C. 10차 총회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게 된다고 한다. 만일 이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한국 기독교는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는 W.C.C.의 신학에 오염되고 말 것이다.
박윤선과 틸리히
박윤선 박사는 1938년 표준성경주석 ‘고린도후서’를 집필하기 시작해, 1979년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를 내 놓음으로써 40년간의 노력을 통해 한국교회에 성경주석을 선물했다. 박윤선 박사가 쉬지 않고 40년간을 주석편찬에 매진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교회에 있어서 바른 말씀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박윤선 박사는 한권, 한권 주석을 해 나갈 때 마다 성경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대항하여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고 변증하는 간략한 글을 서문에 남겼다. 그 이유 또한 상황에 밀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성경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성경은 무오한 것이며 교회 뿐 아니라 인류 사회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이요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박윤선 박사는 ‘개혁주의 성경 해석 원칙’에서 성경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복종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 박윤선 박사는 성경해석의 최후 심판자는 성경 자체이고 개혁주의는 성경계시의 필연성, 완전성, 충족성, 명백성을 믿으며, 성경은 인간의 자의대로 억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철저히 복종해 온 결과, 세 개의 신학교를 직․간접적으로 세워 가르쳤고, 수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배출했으며, 한국 보수 신학자들 중 제일 먼저 박사학위 논문을 위한 연구대상이 되는 영예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많은 성도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의 최고의 목회자요, 신학자요, 성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윤선 박사와 틸리히의 생애를 비교해 볼 때 어떤 인상을 받게 되는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지만, 박윤선 박사는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가 아닌 오직 성경에 인식론적 전제를 둔 신학을 했고, 틸리히는 권위적인 루터파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자연철학자 셀링의 영향, 지울 수 없었던 군목시절의 충격적인 절망감으로 인해 상황을 인식론적 전제로 둔 신학을 했다. 그 결과, 틸리히 자신도 의도하지 않았던 사신신학이 나오게 되었고, 틸리히를 미국으로 초대한 니버에게까지 비판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단편적으로 두 신학자의 인생만 비교해 보아도 무엇을 우리 신앙의 인식론적 전제로 두어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각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틸리히가 너무나 냉혹한 시절을 보냈기에 그렇지 않느냐고 동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윤선 박사 또한 일제시대, 신사참배강요, 한국전쟁, 한국장로교회 분열 등의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박윤선 박사는 오히려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 또한 성경을 유일한 기준이요,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작은 시대적 상황 앞에 흔들리지 않고, 성경을 절대 진리요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로 삼을 때, 박윤선 박사와 같이 인정받는 신앙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틸리히의 인식론적 전제를 마치며
틸리히는 정통신학이 지닌 한계, 즉 현실과 동떨어진 모순된 신앙양태를 개선하고자 노력한 신학자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개선의 수준을 넘어 기존의 신학적 질서와 체계를 붕괴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그 이유는 쉽게 변하는 상황을 자신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기준은 변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땅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한국사회 1970년대 가족정책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가 진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둥이 가정(아이를 셋 이상 나은 가정)이 진리가 되었다. 이처럼 세상에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할 수도 없다. 특별계시의 권위를 무시한 채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라는 현실적 상황에 편승한 W.C.C. 운동 또한 상황에 의존해 기독교의 본질을 흐려 놓는 운동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단 말인가? 아니다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특별계시인 것이다. 변함이 없는 특별계시야 말로 기독교의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세상도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정형화 된 제도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상황을 전제로 삼으려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순수성을 훼손시키려는 사단의 계략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이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생활에 반대되게 움직인다 하여도 절대 특별계시의 그늘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 신정통주의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이 특별계시에 의해 유지되어 온 기독교의 순수성을 훼손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후배 신학자들은 그것은 인식하지 못하고 더 급진적으로 특별계시를 부정하는 신학에 매진하게 된다.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
20세기 초, 바르트를 중심으로 한 신정통주의 신학이 개신교 신학 전반에 걸쳐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 한 이후, 20세기 후반에는 각 지역별로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으로 다양한 신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세속화신학’ 혹은 ‘사신신학’이 일어났다. 또 미국에서는 ‘과정신학’이 일어났다. 이러한 새로운 신학운동을 클라스 루니아(Klaas Runia) 교수는 ‘신자유주의신학(Neo-Liberalism Theology)이라고 이름하였다. 이 신학들은 모두 실존적인 차원을 중심으로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정통주의 계시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신학의 조류들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학의 역사 속에서도 확인되는 것은, 성경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을 때, 신학은 각자의 이성적 사고에 의해 변질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판넨베르크의 역사신학과 흐름을 같이 하면서 등장한 신학이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이다.
희망 (Hope)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 )은 1926년 함부르크에서 출생했다. 몰트만은 제2차 대전에 참전하였다가 1945-1948년까지 3년간 벨기에와 영국에서 전쟁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의미심장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읽은 성서를 통해 기독교의 희망을 찾은 그는, 포로생활을 끝낸 뒤 신학을 전공해, 1952년에 괴팅겐대학(University of Göttingen)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8년까지 6년 동안 부레멘의 복음교회에서 목사 일을 하게 된다. 그 뒤 1963년까지 뷔페르탈(Wuppertal)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의 교수로 봉사한 다음 1964-1967년 본대학(University of Bonn)에서 교수생활을 한 후, 1968년부터 튀빙겐대학(University of Tübingen)에서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
몰트만은 1964년 ‘희망의 신학’(Theology of Hope)을 출판함으로써 현대 신학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몰트만의 이 ‘희망의 신학’은 기독교의 새로운 해석이다. 이것은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의 초월주의와 키에르케고르의 변증법적 신학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론적인 신학접근에서 벗어나 형이하학적이고 실재론적인 역사와 사회를 신학의 전제로 삼고 있는 대 변환인 것이다.
몰트만의 신학에 있어서 희망은 신학적 사고의 토대, 동기, 출발점, 인식론적 전제가 된다. 그 희망을 통해 신학의 모든 항목들을 조망하려고 한다. 그 희망을 담아내기 위해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기독교 종말론이다. 몰트만은 종말론을 마지막 날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는 것은, 종말론을 한갓 신학의 부록으로 또는 여타의 것과는 상관없는 조직신학의 마지막 장으로 삼는 일이라 하며 불평했다. 아래의 글을 보면 그의 확고한 의지를 알 수 있다.
종말론은 기독교 희망론을 의미한다. 종말론은 기대된 것과 그것에 의해서 움직여진 희망을 포함한다. 기독교는 다만 하나의 부록이 아니라, 전적으로 종말론이며, 희망이고, 앞을 향한 전망과 성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현재의 혁신과 변화이다. 종말론적인 것은 기독교에 관한 어떤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매개체이며 신앙에 있어서 모든 것이 그것에 의해서 조화되어 있는 원음이며, 여기서 모든 것이 그 속에 잠겨 있는 기대된 새로운 날의 서광의 빛이다...... 종말론은 엄밀히 말해서 결코 기독교의 가르침의 한 부분일 수가 없다. 오히려 모든 기독교의 선교, 모든 기독교의 실존, 아니 전 교회의 성격이 종말론적으로 지배되어 있다.
몰트만은 종말론을 신학의 중심에 놓으려고 애쓴 신학자이다. 몰트만의 종말론은 하나님의 계시를 약속으로서,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거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적은 정의에 대한 희망 실현과 인류를 화목하게 하여 모든 창조물을 평화를 유지시키는데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몰트만은 미래에 희망을 두고 현재의 사회를 변혁시키는데 힘을 쓴 신학자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희망을 전제로 현재의 사회정의와 평화유지에 강조점을 두다 보니 개인적, 인격적, 영적 구원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몰트만 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희망을 전제로 한 신학방법론
몰트만은 현대 신학자들 중, 바르트, 본회퍼, 판넨베르크와 더불어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을 강하게 받고 있는 신학자 중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몰트만의 신학이 비판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그의 인식론적 전제가 특별계시이라기보다 희망이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희망을 인식론적 전제로 하여 신학의 모든 항목들을 해명하려고 한다. 몰트만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확신으로 만들고, 이 희망은 고통과 죽음의 경험적 현실을 넘어서게 한다고 칼빈의 말을 인용해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세상도피나 체념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하나님의 평화는 약속된 미래를 성취하기 위한 세상과의 투쟁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표적인 모습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몰트만은 말하고 있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둔 사람은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고 현실에서 고난을 당하고 현실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세상과의 투쟁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약속된 미래의 날카로운 가시가 아직 성취되지 않은 모든 현재 생활 속에서 냉혹하게 찌르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희망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주지 못하거나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서, 기독교 종말론은 희망을 세상적 사고 속으로 가져오고, 사고를 신앙의 희망 속으로 가져와 현실적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몰트만의 사고는 피동적인 기다림이 아닌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한다. 이러한 사고는 매우 급진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희망의 인식론적 전제가 그대로 투영되어, 몰트만은 하나님 나라가 정치와 혁명으로 지상에 현실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신학이 칼빈주의적인 역동적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고 해도 정통신학이 지향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한 자들의 하나님 나라가 아니기에 그의 신학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희망을 인식론적 전제로 한 그의 신학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로 몰트만은 계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몰트만은 계시를 하나님의 희망찬 종말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계시를 로고스의 차원으로 이해하기보다, 실재적인 역사 속에서의 언어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성서에서 증언된 하나님의 계시가 ‘영원한 현재의 나타남’(Epiphanie)으로 이해되는 때, 결국 그것은 희랍적 사고와 탐구의 영향이다. 그것은 엑소더스와 부활의 하나님보다는 파르메니데스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계시는 이 영원한 현재의 에피파니의 형태가 아니고 진리의 약속된 미래의 묵시로서의 이해에 필요하다. 약속에서 분명한 진리의 이 미래에 의해서 인간은 그 가능성들과 위험들에서 현실을 역사로서 경험한다.
그리고 이 계시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새 지평을 향해 돌진하는 역사로 경험하게 된다고 몰트만은 말한다. 다시 말해 계시의 역사는 순환하는 역사가 아니라 약속되고 성취되는 희망찬 미래로 향하는 일직선적인 종말론적 역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인 계시관은 바르트의 초월적 계시관과 반대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 속에서 파악되고 실현되어져야하다고 몰트만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몰트만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기본적인 점은 칼빈과 바르트와 같다. 하나님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알려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일반적이고 이론적이며 객관적 진리로 이해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몰트만은 하나님은 오직 인간이 자기 실존을 동원해 파악할 때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르트와도 차이가 나는 점은, 몰트만은 인간 실존은 역사적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역사성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도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몰트만은 하나님을 역사라는 시간의 과정 속에서 만 파악할 수 있고, 역사라는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부만 계시된 상태여서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래를 그의 본질로 가지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인식되어지는 분이라는 것이 몰트만의 견해이다. 아래의 글을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해 보자.
하나님은 역사의 종말에서 비로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고 열려있고 약속들의 행위에 따라서 역사 한 가운데서 인식된다....하나님의 인식은 하나님의 미래에 참여하는 지식이요, 하나님의 약속들을 통해서 생명이 주어지는 희망들에 의해 확증되는 하나님의 진실의 인식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하나님은 초세계적인 존재도 아니고, 세계의 전체를 뜻하는 대재적 존재도 아니며, 우리 위에 혹은 우리 안에 계신 분도 아닌, 우리 앞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 주시며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치 주인이 애완견을 먹이로 유인하듯이 계시를 던져 주시고 인간이 그 계시와 약속에 순종하면 답례로 자신을 보여주시는 그런 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정통신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성육신하시고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하신 분으로 이해하고 있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견해는 정통신학자의 견해와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믿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에게서 예수는 시대의 진보와 함께 항상 까마득한 역사적 과거로 가라앉은 역사적 인물이 된다. 예수를 이와 같이 역사로 환원하는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슬람교와의 차이는 단지 한 발자국일 뿐이다. ‘하나님은 믿는다, 하지만 예수는 믿지 않는다’라는 태도는 그리스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이해에 자신의 희망의 인식론적 전제를 가미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실존들의 미래의 실재를 보여주는 인간의 희망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실존들이 희망하는 미래의 실재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동일성이 그것으로써 요구되고 지시되는 그리스도의 칭호는, 동시에 부활자의 아직 나타나지 않은 모든 미래를 예기한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세계와 죽음의 시련을 통해서 신앙을 유지해 나가는 희망은 여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 몰트만은 예수의 존재가치 또한 부활에 있다고 말한다. 나사렛 예수의 생애, 사역, 선포, 수난의 실제성이 인정받는 이유가 부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행위로 인해 인정받게 되는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부모가 부모노릇을 해야만 부모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과율적인 접근에 지나지 않는다.
끝으로 몰트만은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19세기 이후 교회는 공중예배(Cultus Publicus)의 성격을 잃고 사적예배(Cultus Privatus)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교회가 공적이고 사회적인 의무로부터 벗어나 사사로움, 내면성, 경건을 중심하는 종교성으로 변질되게 되었다고 몰트만은 말한다. 그렇다면 몰트만은 교회의 존재 목적을 무엇이라 말하고 있을까? 교회는 단순히 영혼의 구원,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개인의 구원, 아픈 양심의 위로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 해 보자.
교회에 고유한 기대의 지평에는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 장차 실현될 정의, 장차 올 평화, 인간의 장차 이루어질 자유와 품위의 기대의 지평 등이다. 기독교는 세계가 그 현재의 모습대로 있든지 그 모습대로 존속할 것이라는 것으로써 인류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장래를 향하여 약속된 것으로 변화되고 그것이 되는 것으로써 인류를 섬겨야 한다.
몰트만은 교회가 미래의 희망찬 완전한 하나님 나라 도래를 위해 세상을 섬기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적인 세 가지 직분, 즉 예언자적 직분, 제사장적 직분, 왕의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로 예수의 예언자적 직분을 본받아 교회는 해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개를 통해 영혼과 몸에 대한 자유와 해방을 이룰 뿐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 자신의 삶의 방식과 사회적인 제도까지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몰트만의 주장이다. 둘째로 예수의 제사장적 직분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죽음으로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켰고, 권력의 우상들로부터 해방시키셨으며, 하나님께 버림 받음으로부터 해방시키셨다고 몰트만은 말한다. 그래서 교회도 예수를 본받아 제사장 직분에 참여하여 가난한 자, 약한 자, 사회가 거부하는 자, 잡힌 자, 핍박 받는 자들에게 십자가의 그늘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셋째로 예수의 왕의 직분을 수행하는 교회는 해방된 자의 공동체로서 오직 한 주와 한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특권과 권력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의 다스림 밑에서 모두 공평하게 해방의 기쁨과 축제를 누리는 곳이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메시야적인 역할을 수행해 감에 있어 교회는 그리스도의 해방자 되심을 본받아 경제 착취에서의 해방, 정치적 압박에서 인간의 존엄성의 회복을 이루는 해방, 문화적 차원에서 소외당한 인간에 대한 해방, 절망의 상태에 있는 인간의 해방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몰트만은 교회를 세상에서 압박 받는 자에게 구원을 이룩하는 도구로 보고 있고 세상의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이루기 위해 몰트만은 사회주의자나 휴머니스트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여기에서 몰트만은 교회의 해방운동을 사회 운동의 차원으로 확대시켰다. 그 결과 그의 해방활동은 영혼구원보다는 사회와 육체 구원에 치우치게 된 것이다.
긍정적인 평가
김영한 교수는 몰트만을 칼빈의 신학과 구(舊) 개혁주의적 전통을 나타내는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 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김의환 교수 또한 몰트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몰트만은 불트만의 비신화화 된 실존주의적 종말론과 현세를 외면하는 개인주의적인 종말론을 비판하고 현재적 의미의 종말론을 강조함으로 종말론의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지상교회가 세상에 보냄을 받은 출애굽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깨닫게 해준 장본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몰트만의 신학은 현대 신학자들 중에서 그래도 정통신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의 비신화화 신학의 영향으로 약화되었던 예수의 부활에 대한 확고한 그의 주장은, 세속신학에 의해 죽어가던 하나님에 대한 논의를 재개시킨 위대한 공헌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리고 희망을 강조하면서,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현실 속에서 실질적으로 감당해야 할 교회의 역할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점점 게토(ghetto)화 되고 있던 시절에, 교회를 고립이 아닌, 사회적 정의 실현의 선봉장으로 인식시켜 준 몰트만의 신학은, 정교분리사상으로 인해 사회의 불의를 외면할 수밖에 없어 갈등하고 있었던 많은 젊은 지성인들에게 도전의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부정적인 평가
그러나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박형룡 박사는 몰트만의 신학은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많은 문제점들을 보이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몰트만은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영원불멸의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희망이라는 자신의 인식론적 전제로 하나님을 해석하기 위해 미래에만 존재하시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만 존재하는 분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간하배 교수 또한 몰트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서의 부활로 보기보다, 미래의 희망으로서의 부활로 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박아론 교수도 몰트만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의 급진성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블로흐의 ‘미래적 인간론’으로 기독교 종말론을 변질 시킨 것으로 교회의 정치활동을 선교로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인간의 경제적 평등을 구원으로 가르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하면서 현재, 과거, 미래의 역사적 3차원을 창조 주관,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추방시킨 절망의 신학자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상원 교수는 몰트만을 성부수난설자, 범신론자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몰트만이 경제적, 정치적인 사회정치적 의미에 집중한 나머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지니는 독특성을 희생시켰다고 말하면서 몰트만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성도들 안에 현존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받는 자들 가운데 임재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위의 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몰트만의 신학에는 부정적인 면들이 더 많다. 첫째로 하나님을 시간에 종속된 불완전한 분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을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로서의 존재로 생각할 뿐, 오직 확실한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 뿐이라는 것이 몰트만의 주장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활을 자신의 미래의 희망 의존적인 인식론적 전제에 끼워 맞추기 위해 마지막 부활의 시작이요, 진리의 보장이며 첫 열매라는 막연한 기대감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된 신학인 것이다. 셋째로 신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종말에 대한 희망을 인식론적 전제로 놓고 수립한 것 또한 잘못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대망도 아니고 공산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유토피아 건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론도 아닌 종말론을 중심으로 모든 신학을 다시 수립한 몰트만의 신학은 분명 잘못된 신학인 것이다.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 비판
몰트만의 희망, 유토피아 (Utopia)
몰트만 신학적 뼈대는 아주 건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자.’가 그의 신학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있어서 ‘더 나은 미래의 희망’에 대한 이해와 ‘무엇’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싶다. 몰트만은 미래의 희망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어 의에 이르게 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 아니라, 경제 착취에서의 해방, 정치적 압박에서의 해방, 소외에서의 해방에 집중했고, 이를 위해 사회주의자(Socialist), 휴머니스트(Humanist)들과 연대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루고 싶어 했던 미래의 희망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이루고 싶어 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향이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몰트만의 신학에 대해 박형룡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몰트만의 종말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 그리스도 안에서 오신다는 성경적 중심을 잃었다. 그의 종말론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형적 재림이 발견되지 않고 인생이 미래를 내다보는 인생중심의 체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몰트만의 사상은 종말론이기보다도 미래론(Futurology)이며, 그의 미래의 최종 목표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충만한 나타나심이 아니고 지상에 건설될 이상향이다.
박형룡 박사가 지적했듯이, 미래의 희망에 대한 몰트만의 준비는 인본주의적인 사고와 방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세상의 미래 준비와 결론은 다르다 할지라도 내용적으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어 'ou'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os’를 조합시킨 합성어로서, 토머스 모어가 그의 저서에서 가상한 자복의 섬의 나라의 명칭을 라틴어화 시켜서 사용하고 나서부터 ‘이상향’ ‘이상국가’ ‘이상사회’를 표현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소극적으로는 구제와 봉사 나눔 등의 인도주의적 차원의 행동들과 의학, 과학, 농업 등의 기술문명 차원의 발전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집단행동을 통해 사회제도와 불합리를 개선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무력을 동원해 권력구조나 국가체제의 변혁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몰트만이 미래에 희망 했던 것이 바로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
그렇다면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가 동일할 수 있을까? 현대신학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 사상을 유토피아와 일치시키려고 하는 여러 가지 시도가 있어왔다. 리츨(Albrecht Ritschl)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츨은 두 개의 중심점을 갖는 타원형으로서 기독교를 설명하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하나님 나라였다. 리츨은 후자를 사랑에 의하여 영감된 행동을 통한 인류의 도덕적 기관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인간의 도덕적 이상인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를 등식관계에 놓은 사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하르낙(Adolf von Harnack)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예수의 메시지 중에는 미래적 사건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나라의 도래는 내면적이며 어느 순간에 이미 현재적인 것이 된 그 무엇이 보인다.”고 하여 하나님 나라에 유토피아적 요소가 있음을 말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몰트만에게도 이어져, 미래에 희망찬 유토피아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증삼아 오늘 이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희망의 신학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는 다르다는 것이다. 첫째로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가 추구하는 1차적인 목표는 고통을 주는 근본적 원인의 제거일 것이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는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소외, 이를 통한 동질성의 상실, 이를 통한 비인간화로 본다. 다시 말해 유토피아에서는 인간소외로 인한 비인간화를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 죄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의 고통의 근본적 원인은 내부적 원인으로서의 불순종, 교만,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려는 마음, 즉 죄인 것이다. 그러므로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는 출발부터 같을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가 추구하는 2차적인 목표는 고통의 해결을 넘어 행복추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유토피아에서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이 땅에서, 경제적 평등과 인간소외의 극복을 바탕으로 하여 자아를 성취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 죄가 씻어 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과 동행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성취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는 2차 목적을 이루는 방법과 장소에 완전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절대 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는 근원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데, 몰트만은 이 둘을 합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단추를 잘못 끼운 몰트만
몰트만이 근원적으로 다른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를 합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한 공산주의 철학자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막시스트인 블로흐(Ernst Bloch)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이 나오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희망의 신학의 동기는 처음에는 나의 개인적 체험에서 온 것이고, 그 후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에서 자극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한 것은 희망의 신학이었다.
최홍석 교수는 몰트만의 소망의 신학은 기독교 신앙과 헤겔, 마르크스, 블로흐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철학의 융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몰트만은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을 가지고 기독교 신학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철학 사상에 기독교 신학을 끼워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흰 셔츠에 별모양의 빨간색 단추를 끼듯이 기독교 신학에 어울리지 않는 철학 사상을 끼워 넣어 변질된 기독교 신학을 만들어 내고 만 것이다.
몰트만은 자신의 신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성경의 권위도 무참히 짓밟아 버린다. 몰트만은 기독교 성경에 있는 이 세상의 종말에 관한 기록 또는 해설을 역사적으로 수락하는 정통적 종말론은 현실도피와 염세사상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관심을 현세에서 내세로 전환시킴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기독교는 인간에게 현실을 잊게 하는 아편이다.’라는 혹평을 정당화 시킨다고 말했다. 이처럼 몰트만은 공산주의 철학에 근거한 잘못된 인식론적 전제를 가지고 신학을 연구했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의 변질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희망 의존신앙과 특별계시 의존신앙
몰트만의 희망의 문제점
몰트만은 희망을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신앙적인 기대”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신앙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고 희망은 그것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는 기다림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초는 희망이 되고 희망이 신앙을 살찌우고 꽃피우게 된다고 몰트만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몰트만의 신학이 내세우는 표면적 외침은 아주 신선하고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희망의 신학의 인식론적 전제가 특별계시에 의존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말씀에 근거한 종말론적인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대망이다. 그런데 몰트만의 희망은 공산주의 철학자 블로흐의 사상에 근거하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소외와 경제적 착취가 없는 평화의 공동체 건설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기에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희망과 이머징교회운동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을 품은 교회의 사명을 사회적 책임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몰트만의 사회적 관심은 그의 교회관에서 더욱 분명히 들어나는데, 교회는 희망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미래를 단순한 개인 구원의 차원에서 벗어나 실제적 변화와 사회적 개혁을 통해 이뤄 나가는 무리라고 규정했다.
김길성 교수는 몰트만의 교회관이 현대 교회에 녹아져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몰트만이 복음전파, 예배, 봉사 등과 같은 본질적인 사명보다 기독교인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했듯이, 오늘날 교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자체를 강조하기 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회의 변화나 선교적 필요 등과 같은 문제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교회의 본질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현대 교회의 문제점이라고 김길성 교수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김길성 교수의 지적처럼 현대 교회는 더 이상 특별계시의 테두리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되고, 포스트모더니즘, 심리학, 실용주의, 마케팅 등의 다양한 방법을 소극적으로 고려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원해 불신자들에게 접근해야 하고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배, 기도, 성경공부, 전도의 영적인 부분 보다도, 문화, 정치, 복지 등의 사회적 책임에 더욱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일어나게 된 하나의 운동이 있는데 그것이 이머징교회운동(Emerging Church Movement)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이머징교회운동 논란으로 뜨겁다. 이머징교회란 ‘새로이 떠오르는 교회’ ‘신흥교회’ ‘신생교회’라는 뜻이다. 이 운동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교회의 시대적 한계를 타파하고자 2003년 샌디에고에서 첫 모임을 가짐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아직 정해진 틀이나 조직이 없다. 단지 교회부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표면적이든 이면적이든 찰스 피니(Charles Grsndison Finney)로부터 시작된 인위적 부흥관에 동의하면서, 미국의 새들백교회, 윌로우크릭교회, 레이크우드교회, 노스포인트교회, 펠로십교회들이 보여주는 인위적 방법론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이머징교회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머징교회운동에 찬성하시는 분들은 이머징교회의 장점들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로,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교회 부흥운동의 대안이라고 말한다. 이머징교회운동은 우리 주위를 둘러싼 문화를 읽어 내고 그런 해석이 우리의 복음 증거, 신학에 대한 이해, 목회자 직분, 심지어 우리의 자기 이해에 대해 갖는 함의를 충분히 생각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성도와 불신자의 적극적 참여와 경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고 말한다. 20세기 중반까지는 ‘국가의 시대’, 20세기 후반은 ‘기업의 시대’, 21세기는 ‘개인의 시대’라고 어떤 일간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현 시대는 ‘개인’의 가치가 어떤 이념과 기업의 이윤 창출 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의 철학, 누구의 이윤 창출의 이용도구나 소모품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더는 원치 않는다. 나의 개성, 나의 가치, 나의 개성, 나의 경험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의 자유로운 표출이 중요하다. 인터넷 상에서의 ‘싸이 월드’ ‘트위터’ ‘블로그’ 등에 적혀 있는 수많은 생각과 철학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참여와 체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부흥운동이 이머징교회운동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예배를 보는 입장이 아니라 참여하는 입장으로 드리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예배를 보고 들을 뿐 아니라 맛보고 냄새 맡으며,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도입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노래, 침묵, 설교, 예술, 표현에 대한 훨씬 더 큰 스펙트럼으로의 이동을 포함할 수 있음을 말한다. 공연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뜨겁게 노래하며 박수치며 호흡하는 찬양, 토크쇼 연극 등을 접목한 설교 등은 참여에 목마른 청중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머징교회운동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위험한 운동이다. 첫째로 이머징교회운동은 예배의 주 대상을 구도자가 아닌 탈구도자 중심으로 맞췄다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예배의 기본이념인데, 부흥에 목말라 있는 현대 목회자들이 탈구도자들의 구미에 맞춰 예배드림으로 예배의 본질 자체를 흐려 놓아 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설교를 우리의 인생이라도 걸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배 모임에서의 경험의 일부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설교자는 현대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진리를 나눠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 취사선택은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이머징교회의 큰 문제점이다. 셋째로, 교회를 예배와 성경교육의 공간이 아닌 극장과 쇼핑몰로 변질시켜 버렸다. 초대교회 이후 전통적으로 교회를 지을 때는 예수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십자가 형태로 지었다. 교회 내부는 항상 엄숙하고 경건했으며, 예배와 성경공부, 기도, 그리고 식사를 통한 친교 외에는 다른 세상적인 요소들은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머징교회운동을 하는 목사들의 실용적 사고는 탈구도자들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종교적 상징물들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탈구도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물건들과 시설들을 설치하였다. 새로 지어지는 교회 중 십자가 형태의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쇼핑몰과 극장과 같은 형태의 교회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신비감과 경이감을 불러일으키는 교회는 없어진 것이다. 이것이 장사함으로 예수님께 책망 받은 예루살렘 성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러한 이머징교회운동의 출발배경에는 부흥이라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 이제는 성경을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할 수 없고, 마케팅, 실용주의, 심리학, 신비주의 등을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암묵적인 합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머징교회운동으로 인해 양산(?)된 성도들은 함량미달의 성도들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함량미달의 성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흥이라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 성경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고 세상의 철학과 방법을 전제로 삼아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만 열을 올린 교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한국에는 가나안을 찾아 떠도는 가나안 성도들이 많다고 한다. ‘가나안 성도’란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은 지니고 있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찾아 다녔듯 새로운 교회를 찾아 떠도는 이들을 뜻한다. 가나안 성도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주위에서 교회 이탈자들을 종종 볼 수 있는 만큼, 적지 않은 수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원규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교회의 위기와 희망’에서 2004년 한국갤럽의 조사를 분석, “1984년부터 20년간 개신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숫자가 198만명, 개신교인에서 무종교인이 된 숫자가 560만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개신교인이었다가 교회를 떠난 인구가 무려 758만명에 이른다”며 “특히 교회를 이탈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남성, 젊은 층, 높은 교육수준의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2005년 ‘한국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독교인 중 11.6%가 스스로 신자라고 여기면서도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고 있다. 이 조사에서 성도들의 교회 이전 경험률은 57.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나안 성도는 몰트만과 같이 희망을 추구하기 위해 성경이 아닌, 세상의 방법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은 한국교회가 나은 변질된 성도의 무리인 것이다. 이처럼 교회와 성도가 성경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성도, 하나님이 예배 받지 않으시는 교회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별계시 의존신앙
헤르만 바빙크는 특별계시는 인류를 낙원에서부터 십자가까지 인도했고, 십자가에서 하늘 영광까지 인도할 안내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지식의 출처와 자원이 되는 특별계시를 의존하지 않고서는 계속되는 추측과 억측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바빙크는 특별계시와 미래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재 사회적으로 기독교와 기독교의 특별계시가 문화와 미래의 발전에 중요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바빙크는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성과 판단, 방법 등으로 미래의 발전을 꾀한 진화론자, 사회주의자, 문화인 등 수 많은 개혁자들 또한 인간의 마음과 영혼의 욕구를 충족 시켜주지 못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고 바빙크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바벨론,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화처럼 현대사회와 미래의 문화가 황폐화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래는 세계를 지배하고 관장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계시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계시의 광채가 십자가의 복음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비춰줄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생명의 왕국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박윤선 박사는 그의 저서 ‘성경신학’에서 인간은 자기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게 된다고 특별계시 의존적 사색을 강조했다. 그 증거로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27절을 인용하고 있다. 첫째로 25절에서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니 절대적인 신이시고, 그분께서 지혜를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낸다 하셨으니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어린아이처럼 겸손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27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계시 의존적인 사색만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박윤선 박사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몰트만은 분명 세상의 지혜를 가진 슬기로운 신학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신학 하고자 하는 자세가 없었다. 그 결과 성경이 아닌 공산주의 철학사상에 의존하게 되었고, 잘못된 신학을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일은 우리들에게도 얼마든지 연출되어 질 수 있다. 자신의 지혜와 슬기, 학문적 성과만을 믿고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한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결국 사탄의 전리품으로 빼앗기게 되고 말 것이다. 신학 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성경을 대하는 시간과 열정, 순종의 마음 또한 깊어져, 성경을 인식론적 전제로 하는 자세를 유지할 때, 우리의 모든 노력은 결국 하늘의 상급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몰트만의 인식론적 전제를 마치며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준비하자는 몰트만의 의도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의도를 주장으로 담아내기 위해 특별계시를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고 막시스트의 이론을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하여 극단적인 행동신학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잘못된 방법으로 실행되면 원래의 의도를 잃게 되어 있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제시하고자 했던 몰트만의 의도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천동설(天動說)이 이해하기는 쉬워도 진리는 지동설(地動說)이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과 전제라고 해도 그것이 진리라면 끝까지 고수해야 하는 것이다. 희망을 제시하고 실천하게 하기 위해 공산주의 사상을 인식론적 전제로 삼은 몰트만은 어쩌면 쉬운 길을 선택한 어리석은 신학자라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무시하고 배척하기 까지 해도 변함없는 진리인 특별계시를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로 삼을 때, 주님 앞에 서는 진정한 마지막에 승리하는 승리자들이 될 것이다.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특별계시를 인식론적 전제로 사용하지 않고, 개개인의 판단과 이성에 근거한 인식론적 전제를 가진 근,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신학방법론을 비판하면서 오늘날 그러한 인식론적 전제가 이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살펴보았다. 17-18세기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전으로 금이 간 특별계시 의존적인 인식론적 전제는 칸트에 의해 무너졌고, 슐라이어마허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특별계시의 권위를 재정립 시키려던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 한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오히려 성경의 무오를 부정하는 것을 기정사실화 해 버렸고, 그 영향으로 19-20세기에는 각자의 인식론적 전제를 바탕으로 한 여러 종류의 급진적인 자유주의 신학들이 나타나고 말았다.
서철원 교수는 19세기 신학은 칸트의 철학으로 조성되고 표현된 신학이고, 20세기의 신학은 칸트의 철학에서 실존주의의 철학으로 신학이 표현된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20세기 신학은 19세기 신학의 연장선상이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두 시대가 동일하게 성경의 초자연적인 것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초자연적 현상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특별계시를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고 선택과목 정도로 취급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목회한 교회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교인들은 떠나고 교회는 유지할 비용이 없어 문을 닫거나 다른 용도로 변경이 되어 팔려 버리고, 심지어는 이슬람 사원, 힌두교 사원으로 바뀌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별계시를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은 교회들이 이렇게 몰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요한복음 14장 21절 말씀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고, 지키는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예수님이 나타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계시를 인식론적 전제로 삼지 않는 교회들은 하나님의 사랑도 받지 못하게 되었고, 예수님도 나타나지 않는 교회가 되었으니 당연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계시만이 기독교의 유일한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메이첸은 자유주의신학을 카톨릭보다 더 기독교적이지 않은, 타종교에 가깝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정통신학은 특별계시를 중심으로 특별계시의 초자연 현상을 인정하는 전제를 가지나, 자유주의신학은 이성을 중심으로 초자연 현상을 불인정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라기보다 헬라철학의 아류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칸트에 의해 넓어진 이성의 영역은 헤겔에 의해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포이엘 바하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존재가 되었고,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정통주의 신학에 의해 진리인 특별계시는 세상에서 실종되고 실존이 경험한 주관적 판단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눈이 빠져 앞을 보지 못하는 삼손과 같이 된 교회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해 과거보다 더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인 삼손처럼 특별계시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가 심판의 때 주님 앞에까지 무사히 안착(安着)하게 될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환경적인 요인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 환경적인 요인들 중 자신의 이성적 판단과 지혜에 근거하고, 철학적 논리를 사용하여 그것이 인식론적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인식론적 전제는 언젠가 무너질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진리가 없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과 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특별계시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과 특별계시는 진리가 된다. 이 진리를 우리의 인식론적 전제로 삼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계시가 인간에게 100%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성도들은 특별계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TV 뉴스와 이웃 사람의 조언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먼저 특별계시를 중요시 하고 자주 접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나 세상적 판단과 특별계시의 견해가 부딪힐 때, 성도들이 특별계시를 의존하여 판단하도록 훈련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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