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 에큐메니칼 운동은 필수조건인가?
에큐메니칼 운동! 과연 안 하면 안 될, 꼭 이룩해야 만 하는 필수적인 사명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통교회, 바른 교회, 복음의 순수성과 하나님 나라를 지켜나갈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형태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어느 공동체를 가든지, 하나의 공동체가 있으면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작은 공동체가 있기 마련이다. 그 작은 공동체들은 전체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자기만의 특징을 가지기 마련이다. 만약 작은 공동체들이 없다면, 큰 공동체는 구성원 개개인에게 돌봄과 연락과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 개개인도 자신들의 권익을 건의할 때에 매우 불편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가면 ‘구역’이 있고, 대학 청년부에 가면 ‘조’가 있으며, 학교에 가면 ‘학년’과 ‘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의 차원에서 교회가 나눠진 상황을 이해한다면 현 상태가 그렇게 나쁘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한국의 교회들이 분열되어질 때에, 아주 심각한 교리적 논쟁의 결과로 이뤄 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 감정적 대립 때문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갈라진 교회가 합해지는 교회일치를 부르짖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신앙고백이 다르지 않은 교단들의 단일화는 이뤄져야 한다. 분열 당시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신앙고백적으로 일치하는 점을 먼저 신학적으로 확인하고 서로의 ‘삶의 세계’를 이해, 존중하면서 신학, 교리, 생활 이 같은 교회들끼리 합하고 그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1) 이런 연합 외에 극명한 신학적, 신앙고백적 차이를 보이는 교회가 연합을 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하는 바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복음∙개혁주의입장에서 에큐메니칼운동을 비판해 보겠다.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한 교회 침체의 사례를 든 후, 끝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이상과 현실을 분석해 보겠다.
2. 본론
1)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이해
(1) 에큐메니칼 연합교회의 탄생
지난 2006년 4월 24일부터 25일까지 경기도 파주에서 전국의 에큐메니칼 활동가들과 복음주의권 활동가들이 모여서 제2회 기독교사회포럼을 가졌다. 이 기독교사회포럼 행사에서 한국에큐메니칼연합교회ꡑ(이하 연합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이들은 한국교회 대부분은 수구보수 쪽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진보 진영이라고 알려진 NCC(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미 현장 활동가들에게 외면 당한 지도 오래라고 한탄하면서, 지금 이대로의 교회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세계 안의 의미 있는 흐름과 시대적 요청에 맞는 새로운 교회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2)
(2) 에큐메니칼 용어 정리와 성격 및 동향3)
'에큐메니즘'이라는 용어는 '오이쿠메네'(oikoumene :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와 '오이코스'(oikos : '집')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기원은 예수의 명령․약속․기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말하고 있는데, 에큐메니즘 운동은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한 초대교회의 사도 의식을 회복하려 하며,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적인 교회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개신교회에서는 이 용어를 1910년 에든버러에서 국제선교대회가 열린 뒤에 선교․복음전도․봉사․연합세력 등의 모임을 표현하는 데 쓰기 시작했다. 카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진행 기간과 폐회 이후 로마카톨릭교도들은 교회 전반의 삶을 쇄신하여 '갈라져나간 교회들'에 대해서 더욱 책임을 지고 세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가리키는 데 이 용어를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8․15해방 후 현대 에큐메니즘 신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나아가 단순한 교회연합사업이 아닌 신학적 배경을 가진 일치운동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1948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0세기 에큐메니컬 운동의 본산인 WCC 창립총회가 개최됨에 따라 한국대표단이 참석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한국 교회에서는 8․15해방 후 교파 환원작업과 함께 1946년 한국기독교연합회(NCC)의 조직 작업이 추진되었고, 이어 1946년 9월 장로교․감리교․성결교․구세군 등의 교파와 선교회 및 연합기관이 여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2) 복음∙개혁주의 입장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비판
(1) 전도와 선교의 의미 변질
에큐메니칼 운동이 가져오는 문제들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은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선교사역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차적인 정신은 ‘타협’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 교회들 간에 전도를 중지한다.’는 법칙을 만들어 놓았다. 이 말은 곧,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 든 종교집단에는 전도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구원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가 틀리다 할지라도 이 원칙은 적용되게 된다. 그리고 ‘선교’에 대한 개념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기아, 억압, 착취에서 해방시키는 ‘사회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이런 법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이상 이 땅에 복음 전파는 없다는 말이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져야 주님이 오신다는 말씀이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단지 인류가 해방되어 행복만 누리면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어찌 교회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화론자, 무신론자의 주장과 같은 것이다.
(2) 종교다원주의에 잠식당한 에큐메니칼운동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에큐메니칼 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모든 종교가 다른 길을 거쳐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어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각 종교의 배후에는 궁극적 신적 실재가 있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각 종교는 자기의 고유한 것을 유지하면서 타종교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인 김경재 박사의 “등정로 이론”, 로마 카톨릭 교회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의 ‘익명의 그리스도론’, 스페인 출신 로마카톨릭교회 사제이면세 W.C.C.(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의 ‘보편적 그리스도론’ 등에 잘 나타난다.4)
이와 같은 종교다원주의의 이론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그대로 투영되어, 그리스도 아래서의 일치를 주장하지만,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단지 그리스도는 윤리적, 해방자적 모델로만 보고 있고, 구원의 길은 각 종파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운동이 어떻게 기독교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교회 일치가 교회에게 남겨진 유일한 시대적 사명인줄 알고, 목숨을 걸던 외국 교회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모습을 통해, 에큐메니칼 운동이 필수조건이 아님을 확인해 보도록 하자.
3)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한 교회 침체의 사례
(1)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한 영국 감리교회의 쇠퇴5)
영국 감리교회 목회자인 ‘클리브 마쉬(Clive Marsh)와 제인 크래스크(Jane Craske)는 [감리교회와 미래](Methodism and the Future, 1999)에서 “영국 감리교회는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1960년 실질적 감리교인의 숫자는 78만명이었고 교회는 1만개에 달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최근 통계에는 약 40만명의 교인과 7천개의 교회로 급감했다. 이런 교인 감소추세는 다른 교파에도 들어났는데, 유독 감리교회에만 두드러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국 감리교회의 가장 큰 맹점은 분명한 메시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교회가 글로벌 사회에서, 복합적인 종교∙문화적 배경에서 어떻게 다른 종교와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에 있었다. 그래서 감리교회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위해 기독교 메시지의 독특성을 스스로 거세(去勢)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감리교회는 다른 종교와의 화해로 인한 사회적 인정은 받았을지 몰라도, 교회의 생명력을 잃게 된 것이다.
(2) 미국 주류 교회들의 쇠퇴6)
미국 동북부의 회중교회(UCCC)는 관용과 폭넓음을 자랑하고 신학다원주의를 수용한 결과로 대부분의 교회들이 폐쇄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회중교회만 쇠락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기독교를 수용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에 초점을 둔 미국의 주류 프로테스탄트교회들도 황폐화되고 있다. 이는 신학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역사적인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를 아우르는 포용주의 다원주의를 지향한 나머지 정체성을 잃게 된 것이다.
미국 북장로교회(UPCUSA)도 1983년 남장로교회(PCUS)와 합동했는데, 교인수가 절반 가량 줄었다. 그 이유에 대해 디인 호게(Dean Hoge)는 다원주의 문화를 추종하여 교단 정책의 정체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tm코틀랜드 장로교회, 미국연합감리교회, 독일루터파교회, 영국국교회, 캐나다연합교회, 호주장로교회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의 원인은 다름 아닌 에큐메니칼 운동 때문인 것이다.
3. 결론
1) 에큐메니칼 운동의 이상과 현실
기독교회의 하나됨을 주장하는 것을 생각없이 들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요한복음 17:11에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서,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예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이상을 추구하고자 에큐메니칼 운동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해 나타난 현실은 참혹하다는 것 또한 앞에서 살펴보았다.
공산주의 사상이 모든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투쟁했던 많은 사람들이 70년 만에 자신들의 신념을 포기한 것 보다 더 빠르게,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점이 외국의 사례를 통해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들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교회는 교회 스스로가 교회문을 닫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 속에서 교회는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세속주의와 감성주의에 의해, 교회는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교회는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시키려 하기 보다, 세상의 공격 속에서 교회를 보호하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사회참여’라는 기독교 활동의 일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포기하게 된다면, 개신교회는 결국 자멸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반대하는 것이다. 근본이 다른 종파, 신학과 구원의 방법이 다른 교회와의 연합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학적, 삶의 정황적으로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해도, 다양성 속에서 교류를 통해 교제 나누면 될 일이지 굳이 행정∙기구적 통합을 이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그대학에 게시판에 95개 조항을 내걸어 종교개혁을 실시한지 489년이 지났다. 종교개혁가들이 말씀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고, 유지시키려 흘렸던 피와 땀이 우리 개신교회에는 스며져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힘써 지키고자 한 것을 우리들이 쉽게 내어주어서야 되겠는가? 세상의 인정은 받지 못해도, 교세는 확장되지 못하고, 영향력은 줄어든다 하여도, 바른 교회, 건강한 교회, 말씀과 성례와 권징에 바탕을 둔 교회를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강력하게 배격해야 할 것이다.
-끝-
<참고문헌>
1. 구영재 “에큐메니즘의 이상과 우상” 안티오크 (1995)
2. 박상증 “한국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대한기독교서회. (1992)
3. 정강길 “한국교회의 새로운 일치를 위한 시도” [뉴스앤조이] 2006. 04. 30.
4. 최덕성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본문과 현장사이 (2005)
5. 크리스찬 아카데미. [그리스도는 자유케 하시며.....]. 대한기독교서회. (1975)
6.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에큐메니즘”
7. 허순길 “한국장로교회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출판국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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