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담대한 사랑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6. 2. 13. 18:57

 

예전에는 남녀 간에 교제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사랑하는 사이라는 말보다 좋아하는 사이라는 말을 편하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썸타는 사이라는 말을 쓰다가, “플러팅하는 사이라는 말로 남녀 간의 교제에 대한 표현이 바뀌고 있습니다. “사랑-좋아함--플러팅으로 교제에 대한 표현이 바뀌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교제하는 남녀사이의 관계를 점점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남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에, 적극적인 교제를 하기에는 경제적인 형편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표현하지 못해 교제하는 단계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여차하면 교제를 그만두려고 하며,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소극적인 사랑이 일상화 된 세상에서 담대한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가서 8:6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담대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한 것임을 알고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로 사랑은 도장 같이 마음에 새기는 것임을 알고 확신있게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로 사랑은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한 것임을 알고 한사람만 사랑해야 합니다. 넷째로 사랑은 여호와의 불과 같은 것임을 알고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확신있게 사랑하고, 한사람만 변함없이 사랑할 때, 우리는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원리는 남녀 간의 사랑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지인 간의 사랑, 성도 간의 사랑에도 해당 됩니다. 부모 자식 간에 지인 성도 간에 표현하지 않는 사랑, 쉽게 깨어지는 사랑을 하는 이유는 적극적이고 확신있게 사랑하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셨듯이, 주변 사람들을 적극적이고 확신 있고 변함없이 사랑하여 담대한 사랑 나누시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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