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출발
다들 고3 때가 가장 힘든다고 하는데, 저는 너무나 행복한 고3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우선 집에 가서 더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편했고, 학교 공부도 공부를 잘 하는 친구가 도와주어서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셨고, 저보다는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도해서 교회도 같이 출석하게 되어서 더 가까웠습니다. 밥도 같이 먹고, 놀러도 같이 다니고 목욕탕도 자주 가고 해서 정말 즐거운 고3생활을 보냈죠. 덕분에 힘든지도 모르고, 공부도 어느 정도 하고, 대학도 성적을 여유있게 해서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진학하기로 해 놔서 별 갈등도 없었습니다.
2. 자라고, 또 자라고.....
저의 대학생활은, 새로운 세상에 갖 태어난 아이에게 모든 것이 새롭듯이 그렇게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히며 보냈습니다. 학과 공부도 좋아하는 국어라서 재미있게 했고, 동아리 활동도 교회에서 어려서 부터 하던 SFC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예전 초등학교 시절의 활발한 성격을 되찻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저의 모난 성격을 고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SFC 활동을 하면서 저를 지도하던 형이 있었습니다. SFC에는 [알돌]이라는 1:1 양육제도가 있는데, 그 형이 저를 대리고 다니면서 밥도 같이 먹고 자기도 하고, 정말 친형처럼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실수하면 저를 타이르기도 하고 야단을 치기도 하면서 저를 잘 지도해주었죠. 다른 사람이 저의 모난 부분에 대해 지적했다면 화가 났을텐데, 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에 기억남는 일이라면 먼저 [국어교육과 활동]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원해서 오게 된 과이고, 공부도 재미 있고, 글쓰고 발표하는 것이 좋아 열심히 활동 했습니다. 술먹고, 주일 빠지고 행사 하는 것 빼고는 마찰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게 큰 영향을 주셨던 교수님이 계신데 김형철교수님이십니다. [우리말 연구회]라는 동아리를 지도하시면서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주신 고마운 분이셨습니다. 저를 굉장히 아껴 주셨고, 조언도 많이 해 주셔서 기회가 되면 꼭 찾아 뵙고 싶은 분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SFC]활동을 하면서 제 자신이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모든 일을 학생들이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스스로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만들고 붙히고, 장소섭외하고, 강사섭외하고 재정지출하는 이 모든 일을 배울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내에서 '컨닝안하기 운동' '수요전도' '목요 노방 찬양'등을 통해 사회 참여와 전도활동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1-2년을 보내면서 여름에 따가운 햇볕을 받으면서 쑥쑥 자라는 벼 이삭처럼, 점점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3. 또 다시 찾아 온 시련
대학생활을 힘들지만 의욕있게 배워가면서 보내고, 2학년 6월에 육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6월 15일에 의정부의 [306보충대]로 입대해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30사단 신병훈련소]에서 6주간의 훈련을 받고, '파주'에 있는 포병여단으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신병훈련소에 있을 때 까지는 모두 신병이고 함께 고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별로 힘든지 모르고 지냈는데, 자대에 배치를 받고 보니 여러가지 않좋은 상황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먼저 저는 155m 자주포 포수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우리 포가 3군단에 있는 포의 기준포반이었던 것입니다. 기준포반이란 쉽게 말하면 우리가 쏘는 방향 대로 모든 포가 쏘기 때문에 누구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쏘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등병 초기 부터 저보다는 높은 계급의 사람들과 훈련을 했습니다. 당연히 잘 못했죠. 그래서 매번 기합과 얼차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포반 포수를 하면서 이등병 때 부터 교회 군종병을 하게 되었는데, 주일마다 장비를 점검하고 수리하기 떄문에 주일에도 잘 쉬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인데, 저만 빠져 교회에 나가니 고참들의 눈치와 핍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잘못을 해도 다른 사람은 넘어가지만 저는 절대 넘어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야간보초를 나가면 어김없이 한두대 맞고 돌아오기가 다반사였죠. 이렇게 힘든 이등병 일병 생활을 보내면서 하나님 원망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일도 열심히 하고 부대에서도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왜 이런일이 생기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대들면서 예수님을 부인하려고 해 보기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다 이유가 있는 일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고참들이 이렇게 고집불통인 저를 밉게만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분명한 믿음직한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야간보초를 나갈때면 저와 근무를 짜는 고참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또 때리려나 보다 생각을 했는데, 근무를 서면서 자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 보다 군생활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사회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제가 아는 정도만 이야기 해 주었을 뿐인데 매우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부나 하사관들도 많이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제가 신병훈련소 시절에 글을 써서 1등하여 훈련소 마치자 마자 4박 5일 휴가 다녀온 것이 알려지자 정훈병까지 맡기게 되었습니다. 하는 일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인정받고 가치있게 여겨진다는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했었습니다.
아참!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는데, 이렇게 군생활 하는 가운데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저를 그렇게 핍박하시던 아버지께서 제가 군대에 가자 저를 돌봐줄 사람을 찾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신 것입니다. 고2 이후로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돌아서신 아버지께서 아세아방송과 국민일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바꿔 자시다가 결국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 나니 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어머니만 예수님 믿으면 된다는 생각에 어찌나 감사하고 기쁘던지....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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