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소교리문답-21]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주전담백 主前淡白 2016. 12. 3. 17:33

27문 그리스도는 어떻게 낮아지셨습니까?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태어나, 비천한 환경에서 자라며, 율법에 복종하고, 세상의 온갖 고통과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임을 당하고, 무덤에 뭍히며, 잠시 동안 죽음의 세력 아래 계심으로 낮아지셨습니다.

 

1. 더글러스 웹스터의 "낮아짐"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품고, 하나님의 뜻 보다 우리의 노력과 의지를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하죠. 이러는 가운데 우리에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교묘한 자기자랑이 싹트고 있다고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 있는 제일장로교회 더글러스 웹스터 목사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2001년 그의 저서 "낮아짐"(규장)에서 이런 현상을 경계하며 신앙 성숙과 영적 부흥 이전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항복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훈련을 통해 우리 마음이 평온해지고 인생의 참된 의미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 성숙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질서는 "적자생존적 질서"입니다. 사람들의 사회 DNA 속에는 "무조건 이겨야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해"라는 말을 강요하지만, 그 열심은 목적 없는 열심이기에 공허한 결말을 맺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현실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것은, 세상의 [목적 없는 열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목적 있는 낮아짐]을 위한 "항복훈련"이 필요 한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낮아지심-1 "출생"

 

 예수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출생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사람은 지금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되기를 꿈꾸고 노력하고 이루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현재 모습보다도 낮은, 그것도 한참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지렁이가 된 것과 같은 상태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왕궁이나 로마귀족의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늘날로 말하면 주차장 같은 마구간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출생을 통한 낮아지심이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이유는 높아지려는 인간의 본성과 정 반대로 결정하고 움직이셨기 때문이고, 그 정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의 낮아지심-2 "생애"

 

예수님의 생애는 30년의 사적생애와 3년의 공적생애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적생애를 볼 때 오늘날 극빈자와 비교될 만큼의 비참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도 낙후된 나사렛에서 성장하셨는데, 할례 받으실 때 돈이 없어 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정도였습니다. 아버지의 목수일을 도왔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까지 했습니다. 유대사회 목수는 단순히 나무를 다루는 기술자 뿐 아니라 건축일을 하는 막노동꾼까지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막노동꾼으로 30년의 생애의 대부분은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3년간의 공적생애는 어떠했습니까? 메시아로써 사역을 시작한 다음에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지만, 40일을 금식하시고 밤낮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르치셨지만 여전히 머리둘 곳 없을 정도로 일정한 거쳐가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고향사람들과 가족들로 부터는 배척을 받다 못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셨으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다 못해 살해위협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을 3년간 따랐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직전, 예수님께서 가장 필요로 할 때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난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생애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관계적 아픔을 모두 겪으신 낮아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낮아지심-3 "십자가"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하이라이트는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는 고대로 부터 내려오는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으로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을 박아 피를 흘리게 하여 손과 발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 목마름의 고통, 호흡곤란의 고통 등을 3일가량 느끼다가 죽게되는 가장 참혹한 사형방법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십자가에 달릴 때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이나 큰길 가에 옷을 다 벗긴 채로 달아 놓아서 3~4일을 치욕 속에서 보내야 하는 정신적 고통도 당하는 사형방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고통도 평범하게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주무시지 못했고, 채찍을 너무 많이 맞아 피로와 출혈과 찰과상이 너무 심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이미 죽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셨고, 십자가를 더 이상 질 수 없어서 구레네 시몬이 대신 져 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겪으신 고통은 손목과 발등의 통증, 목마름의 고통, 치욕의 고통, 호흡곤란의 고통 보다 더 큰 고통을 겪으셨읍니다. 그것은 바로 성부 하나님과의 분리의 고통이었습니다. 창세 전부터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분리되어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저주를 짊어 지셨기 때문에 성부하나님으로 부터 잠시 동안 외면당하셨던 것입니다. 그 고통을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고통도 엄청난데 그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시면서까지 예수님께서 낮아지신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이심을 우리는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교훈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없는, 너무나도 파격적인 모습과 방법과 상황으로 낮아지심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은 지극히 높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었습니다.(히2:9~10)

 기독교는 세상과 전혀 다른 집단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려고만 하지만 기독교는 낮아지라고 가르침니다. 세상은 높아져야 이름이 드높혀 지지만, 기독교는 낮아져야만 높힘을 받게 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목사님들은 성도들은 직분이 높아지기를 원하고, 목사님들은 존경 받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건물과 재정이 커야 사회에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세상의 관습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본 받읍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얻으신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