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감동의 한계

주전담백 主前淡白 2015. 12. 12. 17:18




20세기 모더니즘의 동력이 규칙과 통제였다면, 21세기포스트모더니즘의 동력은 감동을 통한 설득입니다. 그래서 예능,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같은 TV매체에서 감동코드를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고, 정치에서도 논리와 투쟁보다 약자코스프레 같은 감정터치가 성행하고 있으며, 경제에서도 감동을 주는 메시지를 통해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도 앞 다투어 감동을 주제로 삼아 교회를 짓고, 목회계획을 짜고,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과연 감동이 만병 통치약일까요?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 앞에 모인 2만여명은 자신들의 저녁식사를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해결해 주신 기적의 메시아에게 감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계속 감동시킬 마음이 없으셨던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며 자신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 감동받았던 2만명은 모두 떠나가고 제자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왜 남게 된 것일까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베드로는 남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감동은 사람을 눈물 흘리게 할 수는 있어도, 피 흘리는 결단 까지는 이끌지 못합니다. 감동은 머물게 할 수는 있어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감동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빠른 시일 내에 믿음으로 열매 맺지 않으면, 그 신앙은 온전할 수 없음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