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그리스도인의 배려

주전담백 主前淡白 2016. 6. 10. 15:30




이란 테헤란에서 택시를 이용한 후 "얼마요?"라고 물었을 뿐인데, “당신을 태워준 것 만으로 영광이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택시비를 주면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이질적인 풍경은 이란 '타로프(Taarof)' 문화의 흔적으로 상대 입장에서 배려하는 척하며 핵심은 빙 둘러 표현하는 관습인 것입니다. 이런 배려는 오히려 상대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변화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처음에 사도들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해가 되는 것이 몇 일전 까지만 해도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가던 사람이 바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믿어줄 사람을 찾았고 바나바의 중재로 사도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바울을 받아준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 후 바울은 고향 다소로 가서 3년간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사도들이 바울을 받아준 것 같았지만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도들이 바울을 진심으로 배려하여 받아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루살렘교회는 바울의 제안으로 안디옥교회 이전에 선교를 해서 흩어짐과 사도 야고보의 죽음을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진심이 없는 배려는 상대에게도 손해가 되지만, 나 자신에게도 결국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족, 지인, 성도들에게 당신은 진심을 다하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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