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느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선교사님의 교회에 신실한 믿음을 가진 한족 부부가 등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부부가 급하게 선교사님을 찾아와 “선교사님 저희 집 돼지 6마리가 남의 집 무를 다 뽑아 먹어 버려서 이 지역 법에 의해 돼지들을 무밭 주인에게 다 줘야하게 생겼어요. 선교사님께서 3마리에 합의 볼 수 있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때 선교사님은 “예수 그렇게 믿는 거 아닙니다. 다 주세요”라고 권면했고, 그 부부는 순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번에는 무 밭 주인의 소 2마리가 자기네 배추를 다 먹었는데 한 마리만 받으면 되겠냐고 질문해 왔답니다. 그때도 선교사님은 “예수 그렇게 믿는 거 아닙니다. 받지 마세요.”라고 권면해서 순종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용서하고 희생만 한 대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무 밭의 주인은 물론,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이 선교사님 교회로 찾아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용서하는 것은 어렵지만 용서는 가장 어려운 사람을 변화시켜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베드로는 잘못한 사람에 대해 일곱 번 용서하면 잘 하는 것이지 않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일곱 번 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상대에게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정적인 용서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지만, 상대를 변화시킬 마음으로 제한을 두지 않고 끝까지 행하는 용서의 대가는 사람의 변화라는 큰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가족, 성도, 지인을 용서할 때, 내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용서하고 계십니까? 아님 변화를 위해 용서하고 계십니까?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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