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선행]을 이야기 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한 율법교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영생]에 대한 질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선행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영생은 행위로 얻을 수 있다는 천주교회의 행위구원설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는 강도 만난 사람 외에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공통점은 강도만난 사람을 돕지 않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것은 그 일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여행길이 지체되고 예상치 못한 비용도 지출해야 하지만 돕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에게 전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영생은 자신의 생각의 한계를 넘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 가치관대로만 살면 그 사람은 그 이상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내 가치관의 한계를 넘어야만 새롭고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의 틀에 갇혀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내 생각에 맞는 말씀만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요?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게는 영생 뿐 아니라 그 어떤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생각의 한계 너머에 있는 예수님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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