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2에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후반부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때, 각각 다른 방법으로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빌립은 예수님이 직접 만나서 부르셨고,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는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고 해서 되었습니다. 셋째로 베드로는 안드레의 형으로 안드레가 인도하였는데 베드로가 열심당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예수님께 정착하는 의미로 "게바"(반석)라는 이름을 지어 주시며 제자로 삼았습니다. 가장 어렵게 제자를 삼은 사람은 나다나엘인데, 예수님이 그를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제자로 부르시지 아니하시고 빌립의 추천과 나다나엘에 대한 칭찬을 통하여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제자를 부르신 이유는, 제자들을 배려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배려하여 제자들을 부르셨기에 제자들 또한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헌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배려해야만 그 사람도 나에게 배려하고 나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소아마비 환자로 대통령이 되어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배려하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기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주었고, 그 사람이 대접 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배려해 주었더니, 몸이 불편한 루즈벨트 대통령을 잘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남편 아내 자녀 부모 형제 성도들과 같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배려하지 못해, 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많은 돈이나 큰 힘들이지 않고서도 작은 배려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따뜻한 인사 한마디, 문을 잡아주는 작은 배려를 통해, 상대를 행복하게 하고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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