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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개요] "벧전3:13-17" 설교개요, 설교문 |

주전담백 主前淡白 2008. 1. 31. 06:53

 

 

 

 

2. 설교개요

 

1) 주제

(1) 석의 주제
초대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 앞에 당당한 자들이 되야 한다

(2) 설교 주제
혜광교회 대학청년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 앞에 당당한 자가 되야 한다

2) 목표

혜광교회 대학청년들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 앞에 당당한 자가 되게 하자.

3) 개요작성

1. 도입
현대사회가 보이는 말세지말의 모습 중 하나 : 공개적으로 교회를 비난하고 핍박함

[T.Q.]
어떻게 하면 고난 앞에서 당당한 한국교회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

2. 본문

(1) 원래 열심히 선을 행하면 해하지 않았다 (3:13)
(2) 지금은 선을 행하여도 고난을 받는다. (3:14)
(3) 세상 앞에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모습 (3:15-16)
   
ⓛ 자신의 신앙을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② 고난 속에서도 즐거워하는 소망의 이유 설명 해야
   
③ 세상의 비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선한 양심을 유지해야

3. 맺음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3:17)


4) 청중연구

(1) 설교시간 : 주일 오후 대학청년부 예배 (14:00)
(2) 청중의 설교 청취 목적 : 말씀 깨달음을 얻고 은혜받으려고
(3) 청중의 이해 수준 : 대학 졸업 수준
(4) 청중 수 : 20~30명
(5) 청중의 남녀 비율 : 5 대 5
(6) 청중의 연령 구성 : 20~30대
(7) 청중의 지역적 특성 : 대부분 경기도, 인천지역 출신
(8) 청중의 지위, 경력 : 학생, 낮은 경력, 지위의 직장인들
(9) 이번 설교에서 청중 가운데 고려해야 할 인물 : 신입생
(10) 특히 주의해야 할 점 :
딱딱하지 않게 준비해야겠다.

 

3. 설교문

                         세상앞에 당당한 그리스도인

  •베드로전서 3:13-17

1. 도입

(1) 공개적으로 교회를 비난하고 핍박하는 현대사회

2007년도도 이제 2개월 남짓만 지나면 끝나게 됩니다. 한해를 마무리할 때, 꼭 하는 것 중에 하나가 “00년도를 뜨겁게 달군 10대 뉴스” 라는 것이지요. 2007년도를 뜨겁게 달군 사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 중 한 가지를 꼽는다면, “공개적으로 비난당한 한국교회”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한국교회가 공개적이고도 전국적으로 비난을 당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9년도 [옷로비사건]일 것입니다. 옷로비사건은, 1999년 5월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가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로부터 1998년 말 고급 옷을 선물 받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기독교회는 사회의 따가운 눈총과 함께 비난의 도마에 오른 적이 있지요. 하지만, 1999년도의 사건과 2007년도의 사건들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1999년도에는 정말 잘못한 일 때문에 치탄을 받은 것이었다면, 2007년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은 비난 받지 않아도 될 사건을 기독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한 사건들이었다는 점입니다.

2007년도에 기독교와 관련해서 어떤 사건들이 있었습니까? 먼저 [E-land 대량해고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업의 이미지와 다르게 급격한 M&A 성장을 매우기 위한 방법으로 비정규직을 대량해고 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간 E-land의 정직성과 사회봉사활동 등의 긍정적인 모습은 모두 묻혀 버린 일방적인 비난의 모습만을 보인 사건이었습니다. 둘째로 지난 7월 19일에 피납되어 42일 만에 풀려난 [샘물교회선교단 아프칸피납사건]도 그러합니다. 이들이 위험한 지역에서 조심성 없이 활동한 것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순수한 의도와 목적으로 활동한 것 까지 싸잡아 비난하면서 교회를 일방적으로 매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신정아 학력위조사건]에서도 신정아씨가 가끔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헌금을 낸 것을 가지고, ‘신정아! 알고 보니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언론이 보도하여서 세상 사람들이 또 한번 교회를 비난할 여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1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노방전도 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기독교의 독선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내어 보내었습니다. 노방전도는 하루 이틀의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번에 촬영, 편성하여 내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는 지금, 기독교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을 방영하면 시청률이 오를 것이라는 얄팍한 의도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2007년도는 선을 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게 된 원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비난의 중심에 한국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할까요? 누구 말처럼 비난의 댓글을 올린 누리꾼을 I.P.추척을 통해 찾아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야 할까요? 다른 종파의 숨겨진 비리도 폭로해야 할까요? 그동안 사회를 위해 베풀었던 모든 선행과 봉사를 거둬들여야 할까요? 이런 식의 발상은 매우 세상적인 발상이고, 비성경적인 보복성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아 할까요? [T.Q.] 어떻게 하면 고난 앞에서 당당한 한국교회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요?

(2) 설교개요 소개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세상 앞에 당당한 그리스도인”이란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과거 기독교와 세상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둘째로 [오늘날 기독교와 세상과의 관계]를 살펴본 후, 마지막으로 [세상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 가져야할 세가지 모습]에 대해,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전개

1) 과거 기독교와 세상과의 관계 : “열심히 선을 행하면 해하지 않았다.” (3:13)

먼저, 과거 기독교와 세상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오늘 본문 3:13에 “또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는 말씀처럼, 한국교회도 본래는, 비난 받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조선 말기 기독교의 전파 이후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기독교는, 사회적 지도층이자 국가를 위해 충성적으로 봉사하는 조직체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지도층은 기독교인들이 포진하게 되었고 그들은 성경에서 배운 이타주의(利他主義)정신과 박애(博愛)정신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신 독제, 군사 독제시절에 군부와 결탁한 잘못을 범하기는 했지만, 1970-80년대 경제 개발 당시에 수도권으로 몰려든 많은 사람들의 영적 안식처로, 농터와 일터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가족 같은 부양자로, 가족과형제를잃고 거리를 방황하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부모가 되어 사회를 섬겼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선한 종교’ ‘칭찬 받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과거 담배를 피던 사람도 교회 앞을 지날 때만이라도 담배를 끈다고 할 정도로 교회는 사람들의 행실의 바로미터(barometer)였고, MBC “칭찬합시다.”라는 프로의 칭찬대상자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일 정도로 기독교인들은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2) 오늘날 기독교와 세상과의 관계 : “선을 행하여도 고난을 받는다.” (3:14)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와 세상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유 없이, 오해로 인해, 선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비난과 박해를 받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2007년 한해에 일어났던 기독교 관련 사건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부정적인 요인들 보다 긍정적인 요인들이 더 많은 대상을 부정적인 요인들 몇 가지로 비난한 사건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이제는 인터넷 상에 기독교인 누군가가 좋은 일을 했다는 기사가 나도, 댓글에는 교회를 비난하는 말들이 50-100개 정도는 줄을 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선을 행하건, 잘못이 없건 간에 기독교라고 하면 무조건 비판하라는 사단의 공작이 빠진 사회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의연(毅然)할 것을 주문합니다. 14절에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은 선을 행하더라도 고난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의를 위한 고난’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본문을 당하더라도 두려워 말고 소동치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단어 fovbon은 ‘두려움’ ‘공포’라고 보통 번역 하지만, NASB, NIV의 난하주, 공동번역에 보면 “공포심을 불어 넣는 것”으로 나옵니다. 즉, 세상이 고난을 통해 공포심을 불어 넣으려 하더라도 두려워 말고, 소동치 말라고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앞에 나와 있는데, 그것은 선을 행하는데도 받는 의의 고난은 곧 복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복은 이 세상에서의 복이라기보다 천국에서의 상급을 말합니다. 즉, 이 땅에서는 고난이 임할런지 몰라도 영원히 살게 되는 천국에서는 복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다가올 박해를 소극적으로 맞을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박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영광스러운 것이요, 그 상급으로 영생 복락을 맞이하게 되는 축복임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에게 한없는 힘과 위안을 제공 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를 ‘격려의 서신’ 또는 ‘소망의 서신’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고난의 두려움을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당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세상 앞에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모습 (3:15-16)

(1) 첫째로, 자신의 신앙을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 전반부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원문에 직역하여 다시 번역 해 보면 “여러분들 마음속에 기름부음을 받아 세워진 주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번역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따르는 주님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한번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한다 해도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세우신 메시야로 믿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며 그분을 따르는 기본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개역 한글판]에는 ‘거룩하게 하고....’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미 거룩하신 주님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이미 거룩하신 주님의 거룩함을 인정하고 그분의 거룩을 쫓아 본받는 내적인 실천의 모습을 자신에게 갖추는 것이 세상 앞에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찬들이, 예수님을 메시야, 구주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권위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서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취하고 있습니까? 그분이 진정 메시야요, 구세주라면, 먼저 자기 자신이 예수님의 권위를,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세워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함을 인정하면서 그분의 거룩이 나의 거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앞에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먼저 자신을 돌아보시고 새롭게 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고난 속에서도 즐거워하는 소망의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15절 하반부에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교회를 비방하는 말들이 터져 나올 때,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자는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냥 우리들끼리는 원통해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정작 세상 사람들이 물어오면, 그냥 웃고 넘기거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시끄럽지 않기 위해 잘못했다고 말하고 넘기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이는 복음과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요, 자신의 체면만을 생각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당당해야 합니다. 나서서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지만, 물어오는 자들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온유’는 ‘부드럽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공경’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내가 잘못이 없고, 정당한 근거들이 있지만 태도는 공경과 공손으로, 말은 온유함으로 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세상의 물음 앞에 자신의 대답을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자신의 믿음과 자세를 바르게 세우기 위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에 결코 설득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그러한 모습들은 마귀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그들을 설득하려고 하기보다, 우리는 세상의 핍박의 본질과 내용을 잘 알고, 우리의 입장을 바르게 정리하여, 마귀의 의도를 파악하고 감정을 절제하여 대응하기 위해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세상의 물음 앞에 감정적으로만 대응하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위축되어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리십니까? 우리는 당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답을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내 신앙과 믿음을 위해! 그리하여 언제나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세째로, 세상의 비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한양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본문 15절 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에서 ‘가지라’라는 e[conte"는 ‘소유하다, 고수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세상의 어이없는 비난과 핍박 속에서도 결코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께서 보이신 거룩의 모습을 쫓아 선한 양심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세상과 동화되면 쉬울 것을, 어렵게 어렵게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양심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즉, 세상 끝날에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백성들이 있게 될 것인데,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선한 양심을 유지해야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끄러움이란 전쟁에서 패배한 패자들의 부끄러움과 같은 부끄러움을 말합니다. 비록 승자의 긍휼로 목숨을 부지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의 부끄러움을 안겨주겠다고 주님은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곧, 승자들을 위한 배려요, 끝까지 선한 양심으로 견딘 자들을 위한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비난과 핍박 앞에 당당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만큼의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여러 가지 면류관들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무시하고 비난하던 자들 앞에서 우리를 존귀케 하시고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이런 날이 오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않고 우리의 모습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세상 앞에 당당하기 위해 우리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선한 양심을 끝까지 지켜 나가는 혜광교회 대학 청년부 회원들 되기를 바랍니다.


3. 맺음말

(1)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3:17)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17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끝까지 선을 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삼단논법으로 풀어 다시 써보면 좀 더 이해하기가 쉬워 집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선을 행하나 악을 행하나 고난은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한다.”라고 풀어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로 타락한 이 세상의 삶은 어짜피 고난의 연속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성공하고 돈 벌고 호위호식해도 그 삶 속에는 영혼의 공허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고난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라고 해서 세상의 비난과 핍박을 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시대 속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고난을 피해 살아라.” 하신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난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것을, 고난 앞에 당당한 대답을 준비할 것을, 고난 앞에서 선한 양심을 끝까지 지킬 것을 명령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명령은 이 땅에서 과연 지켜지는 것일까요? 너무나도 이상적이어서 지켜질 수 없는 명령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명령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 완수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분에게 악이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분을 핍박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거룩하셨고, 언제나 질문해 오는 자들에게 당당하게 대답하셨고,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까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선한 양심을 유지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승리를 자축하던 마귀를 부끄럽게 하셨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를 세우심으로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모습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유 없이 억울하게 비난한다 하여 원통해 있지만 말고, 마귀의 술책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고, 대답을 준비하며, 선한 양심을 유지하여 결국에 승리하게 해 주실 주님의 큰 뜻을 신뢰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승리자들이 되어 주님의 기쁜 잔치에 면류관을 쓰고, 승리의 함성을 지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세지말의 시대, 젊은이들이 이 세상을 성경대로 살기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결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부분부터라도 실천해 나갈 때, 그 작은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더 큰 것들을 할 수 있는 담력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세기고 세상을 능히 이기는 우리 혜광교회 대학 청년부 회원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

 

참고자료

1) 엑스포지터스 성경연구주석 “약, 벧전후, 요한1,2,3, 유, 계” 기독지혜사 (2002)
2)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베드로전서.베드로후서” 제자원 (2004)
3) World Biblical Commentary “베드로전서” 솔로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