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용서받을 수 있는 자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3. 6. 9. 15:18

마태복음 18:21~22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3번까지는 용서해 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7번까지 용서해 주면 넉넉히 용서해 준 것이 아니냐며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베드로는 [많은 용서]를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7번씩 70번까지라도 용서하라시는 [끝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6조원에 달하는 1만달란트 빚진 사람이 용서를 받았는데, 1천만원에 달하는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용서 받으려면 먼저 용서해 주어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늦어도 괜찮고 남은 늦으면 안되고, 나는 실수해도 괜찮고 남은 완벽해야 하며, 나는 힘들어서 못한 건데 남은 꼭 해야 된다는 대로 "내로남불" 사고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도 우리를 향한 자비와 보호를 취소하시어, 사울왕처럼 마귀의 먹잇감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을 용납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용납해주는 것을 뜻합니다. 용서를 베풀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권]을 주십니다. 내가 실수했을 때 상대방이 나를 용서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내 용서권을 바탕으로 다른사람, 다른 상황서라도 반드시 용서 받을 수 있게끔 해주십니다. 우리 모두 '내로남불'이 아니라 '춘풍추상'(春風秋霜,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내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겁게 하라)을 실천하여, 용서를 통해 야단 들을까봐 긴장하는 삶에서 자유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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