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용은 원래 애국자였습니다.
그는 고종의 총애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 조선
대사관에서 일을 했고,
세자 순종과 미국 선교사 헐버트를
가르쳤으며,
독립문건설에도 앞장섰고,
독립협회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매국노가
되었을까요?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예상을 뒤엎고 1년 만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미국이 필리핀 점령을 보장받는 대가로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인정하는 [가쓰라데프트 조약]을 체결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이완용은,
조선의 국운이 다한 것과 미국의 배신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매국(賣國)의 길로 들어서서,
일본을 등에 업고 이토 히로부미를 도와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맺고,
5년 뒤 조선을 일본에게 넘겨준다는
[경술국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완용은 매국노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1926년 일본에게 받은 막대한 재산을 누리지도
못하고 사망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9:1~10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의 승리의 노래가 나옵니다. 이 때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옳은 행실의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6:3 말씀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점점 늘어가는 시대 속에서 신앙의 변절자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이완용처럼 한순간에 흔들려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옳은 행실을 지킬 때 승리의 노래는 바로 당신의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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