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나눔의 기준

주전담백 主前淡白 2024. 5. 17. 20:26

 

요한복음 6:11에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모두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그만큼 제자들에게 중요한 사건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병이어 사건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셨다(요6:6)는 관점으로 보면 "제자를 훈련시키는 사건"이고, 한 아이가 보리떡5개 물고기 2마리를 드렸다(요6:9)는 것으로 보면 "헌신에 대한 교훈"이며, 5,000명을 먹이셨다는 것(요6:10)에 중심을 두면 "예수님의 신성"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요한복음 6:11 "원대로 주셨다"는 말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서에는 "나누어 주었다"고만 되어 있지 "원하는만큼 주었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오병이어 사건은 받는 사람이 흡족할 정도로 나눠준 사건이었고, 그래서 모두에게 기쁘고 감사한 사건으로 기억되었다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나눌 때 [내가 기준]이 되면 상대가 흡족해하기보다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나눔의 정신이 희석될 수도 있습니다. 나눔의 기준은 내가 되어선 안 되고 [상대방이 기준]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내가 기준이 되어 나의 만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만큼만 나누니까, 나누고서도 상대방이 고마워하지 않고 기쁨을 느끼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남편 아내 자녀 부모 형제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었는데도 고맙단 얘기를 듣지 못하는 것은, [내 기준]에서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기준]에서 나누어서 흡족함을 느끼게 하고 기뻐하게 하여서, 상대를 변화시키는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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