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10

[칼럼] 파레시아(παρρησία)

고대 그리스어에 ‘파레시아’(παρρησία)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든’을 뜻하는 ‘pan’과 ‘말’을 의미하는 ‘rhesis’가 결합된 합성어로 “남김없이 모두 다 이야기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염려하여, 마음 속 전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진실의 전체를 말하려는 주체의 의지에는 때로 생명을 거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까지 이끈 파레시아를 ‘대담한 저항(libera contumacia)’으로 요약하고 이는 그 영혼의 위대함에서 나왔다고 썼습니다. 이 담대하고 거침없는 파레시아의 외침을 ..

칼럼 2024.03.22

[칼럼] 설득과 납득

요나서 3:5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 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설득]은 "이해"를 시켜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니느웨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듣지도 않을 뿐더러, 요나 또한 적국인 앗수르에 가서 회개하게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나"도 납득되어 니느웨로 갔고, 니느웨 백성들도 납득되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납득하게 된 것일까요? 요나는 하나님께서 풍랑을 일으켜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 납득하게 하셨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움직여 납득하..

칼럼 2024.03.22

[칼럼] 긍휼의 복

마태복음 5:7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긍휼은 히브리어로 레헴(רֶחֶם)인데 여성의 "자궁"이라는 뜻입니다. 자궁 안에 있는 아이는 장단점 가리지 않고 엄마로부터 모든 것을 [수용]받고, 엄마로부터 모든 것을 [공유]받으며, 자궁에서의 삶이 아닌 자궁 밖에서의 [미래]를 준비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수용, 공유, 미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남편아내, 자녀, 이웃, 성도와 수용, 공유, 미래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 오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수용 대신 [배척]을, 공유 대신 시간, 물질, 도움의 [한계]를 정해놓고 섬기도록, 그리고 미래 대신 [과거]를 들먹여서 상대방을 과거에 머무르게 하고 관계 개선을..

칼럼 2024.03.22

[칼럼] 전도의 핵심

누가복음 10:36~37에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매를 맞고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 유대인 곁을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이 지나갔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신의 사정과 율법 때문에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 조건없이 강도 만나 죽을 위기에 있는 사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사랑하는자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칼럼 2024.03.22

[칼럼] 어리석음의 실체

시편 14:5에 "그들(어리석은 자)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어리석은 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지혜가 부족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의 히브리어는 나발(נָבֵל)인데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여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는 자가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찾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벌받지 않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부러워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는 "두려워하..

칼럼 2024.03.22

[칼럼] 소망을 보여 줍시다

사도행전 27:25에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겨울을 지내기 편한 뵈닉스 항구로 가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배가 표류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광풍을 만나기 전까지는 기분도 좋고 기대감에 가득찼었습니다. 그런데 광풍을 만나고 배가 표류하자 절망에 빠지고 좌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광풍 만나기 전이나 후나 똑같이 평안하고 기대감 속에 지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광풍을 만나 배가 표류하는데도 평온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무사히 로마에 이를 ..

칼럼 2024.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