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90

[칼럼] 만남의 연속성

요한복음 3:9~10에 "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유대인 중에 부자요 권력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만남입니까? 그런데 이 만남에서 니고데모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니고데모의 사람을 만나는 태도가, "자기 중심적"이고 "일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태도로 예수님을 만났으니, 예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변화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불신자들에 비해 부드럽고 공감하고 수용적인 만남의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

칼럼 2024.12.06

[칼럼] 확신 있는 신앙

마태복음 28:6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그 누구보다도 [확신있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확신 있는 신앙]은 어떻게 갖게 되는 것일까요? 첫째는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자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로부터 안식일이 지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확신은 행동을 하다 보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서 확신이 생긴 여인들처럼, 확신이 있어서 움직이는..

칼럼 2024.12.06

[칼럼] 고난과 영광

베드로전서 4:13에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고난 중에 즐거워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유익이다"라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고난 중에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다는 말씀일까요?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공부한 학생은 합격의 소중함을 알고, 땀 흘려 일한 일꾼은 월급의 소중함을 알며, 한 경기 한 경기 이겨가며 메달을 딴 운동선수는 승리에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고난 속에서 이룬 결과물은 영광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영광과 기쁨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첫째는 그냥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칼럼 2024.12.06

[칼럼] 악을 선으로바꾸려면

창세기 45:5에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은 악한 형들의 계략에 빠져 종으로 팔려 왔습니다. 그런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어 권력으로도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복수하면 똑같은 악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악을 선으로 바꾸어 온 가족이 살고 큰 민족이 되게 하는 놀라운 일을 행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은혜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에게 실망과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는 "우리 가족을 구..

칼럼 2024.12.06

[칼럼] 악을 없애려면

요한삼서 3:11에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잘못을 한 사람에게 야단을 치고 벌을 주고 감옥에 가둔다고 해서 잘못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을 본받게 할 때 잘못이 줄어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잘못을 야단을 치고 벌을 줘야 줄이고 그만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실지로는 그 벌과 야단은 [면죄부]가 되고 "벌을 받았으니 또 잘못을 해도 된다"는식의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잘못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돌고 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악을 없앨 수 있을까요? ..

칼럼 2024.12.06

[칼럼] 나눔의 향연

라틴어로 ‘콘비비오’(Convivio)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 뜻은 ‘함께 마신다’ ‘함께 먹다’ 의미인데 우리 말로는 “향연”으로 번역 됩니다. 이탈리아에는 ‘콘비비오’라는 말이 들어간 식당들이 많이 있는데 “가까운 이들과 함께 모이는 소박하고 정겨운 음식을 나누는 식당”이라는 의미에서 이 말을 쓴다고 합니다. 콘비비오에 가장 알맞은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차려놓고, 불평하는 사람 없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콘비비오를 항상 실천해야 하지만, 특별히 기억하고 강조해야 할 때가 있는데, 바로 성탄의 달, 12월입니다. 마태복음 19:16에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

칼럼 2024.11.29

[칼럼] 큰 사람

고린도후서 2:7에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문제들을 지도하고 책망했던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지만 바울은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우리를 근심하게 한 그 사람은 이미 벌을 받아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위로해야만 그 사람이 근심에 잠기지 않게 된다"라고 오히려 걱정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큰 자]가 [작은 자]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평소에 관계가 좋던 사람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는 괜찮다"라고 말하고, "그 사람도 얼마나 괴롭겠냐?"라고 말하며, 그..

칼럼 2024.11.29